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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험가 Jun 05. 2020

든든한 우리 집 둘째

죽은 나의 개를 기억하는 방법. #5

  비니가 집에 온 이후 퇴근이 더욱 기다려졌다. 직장인에게 퇴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와도 같지만, 퇴근한다고 해서 바로 귀가한다는 것은 아니다. 남자들에게 집은 편히 쉴 수 있는 곳만은 아니지 않은가? 육아와 살림을 어느 정도 분담해야 하는 게 덕목인 시대에 살고 있어서 일을 핑계로 잠잘 시간이 되어야 들어가곤 했던 나였다. 


  물론 회사 업무를 보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다른 일을 도모하는 비중이 더 높았다.     


  그러나 비니가 온 이후에는 집에 일찍 들어가고 싶어 졌다. 집에서 나에게 기다리는 모든 상황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즐겼던 것은 아니다. 새벽에 비니의 잠투정을 온몸으로 받아줘야 했으며, 그 잠투정을 달래기 위해 새벽 산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말 산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그 모든 것이 내 임무가 되어 버렸다. 


  언제부턴가 비니는 나만 보면 산책이 연상되는지 현관에 서서 빤히 나를 쳐다보거나, 목줄과 산책 용품이 보관되어있는 신발장을 발로 긁고는 했다. 힘들기도 했지만, 함께 하는 산책에서 나도 삶의 활력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모든 반려견의 통과의례인 배변 훈련과 복종 훈련 담당도 나였다. 입양 초기에는 아가였기에 부담을 주면서까지 배변 훈련을 시키지 않았지만, 함께 살아갈 날이 길었기에 끈기를 가지고 꾸준히 하였다.   

   

  똥오줌 치우고 락스 청소하느라 내 손에 주부습진이 생길 무렵, 비니는 똥오줌을 완벽하게 가렸다. 베란다에 펴 놓은 패드 정중앙에 정확히 누었는데, 그 똥오줌 형상이 세상의 어떤 예술작품보다 아름다웠다. 배변 가리기는 함께 사느냐 못 사느냐를 가릴 수도 있는 가장 중요한 통과의례다. 그것을 멋지게 수료한 비니는 똥오줌을 눌 때마다 온 식구에게 잘했지? 라며 자랑을 해댔고, 그에 걸맞은 상을 달라고 궁둥이를 마구 흔들어 댔다.     

  이때쯤 비니의 배변 통과의례 수료를 기념하여 우리 네 식구는 파티하며 사진을 찍었었는데 도통 찾을 수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여담이지만 예전 폰으로 찍은 사진들 백업을 잘해야 했는데 비니가 없는 요즘 어릴 때 모습이 그리워도 볼 수 없는 게 안타깝다.     


  그러나 복종 훈련은 갈 길이 멀었다. 아주 못하지는 않았지만 좀 애매했다.  

    

  기다려. 먹어. 엎드려, 빵! 정도는 어렵지 않게 했으나, 반려견과 산책할 때 옆에서 보조를 맞추며 걷는 ‘각측보행’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비니가 산책을 주도한 것이다. 내가 데리고 다니는 것이 아닌 비니가 나를 끌고 다니는 형국이었다. 방송과 인터넷에도 나온 방법들을 써 봐도 소용없었다.     


  가끔은 말을 잘 듣는 거 같아서 목줄을 풀어주면 탄천길을 냅다 뛰어가서 다시 잡느라 고생을 하곤 했다. 그때 전 주인이 했던 얘기가 생각났다.     


  산책할 때는 줄을 꼭 매시고, 꼭 잡고 계시고요···.    

  

  아, 그래서···. 다시는 목줄을 풀지 않았다. 그런데 아내와 산책하러 나가면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훈련이 잘 된 멋진 강아지 코스프레를 하곤 했다. 각측보행은 물론 목줄을 풀어줘도 멀리 가지 않고 아내가 부르면 엉덩이를 흔들며 다시 오는 것이 아닌가. 여자 마음이 알기 어렵다지만 강아지 마음은 더 알기 어려운 듯하다.     


  이런 비니에게서 새로운 면을 본 적이 있었다. 우리와 함께 산 지 몇 달 후 나는 약 일주일간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그 날 이후 비니는 아침만 되면 내 다리에 매달려 출근길을 막고는 했다. 왜 그러나? 했는데 아내의 얘기를 들으니 이해가 되었다.


  내가 없는 동안 비니는 나를 기다렸다고 했다. 내가 집을 비운 첫날밤에 아내가 불을 끄고 자러 들어가는데 비니가 당황스러운 몸짓을 하며 쳐다보더란다. 그러고는 현관 앞에서 한참 동안 서 있었고 아침에 나와 보니 현관 바닥에 엎드려 있더라는. 그 행동을 내가 돌아오는 날까지 했단다. 그래서 그랬나? 출장에서 두 손 가득 돌아오니 아내와 아들보다는 비니가 온몸으로 환영을 해줬다. 녀석 선물을 사 오지 않은 게 미안할 정도의 요란한 환영이었다. 오줌을 살짝 지리긴 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집에 안 들어오는 내가 불안했었나 보다. 그래서 그렇게 밤새 기다리고 그래도 안 들어오니 불안이 커지고. 그날 이후 출근할 때면 나를 붙잡고 퇴근하면 환영하고 하는 행사가 비니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되었다. 기특한 녀석이었다. 의리도 있고. 개는 다 그런가?     


  당시 우리 집은 아파트 25층, 옥상 바로 아래층이었다. 나 어릴 적 아파트 옥상은 친구들과 농땡이를 치거나 어른 흉내를 내보는 곳이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가끔 옥상에서 요란스럽게 뛰어다니는 소리가 나기도 했고 그런 날은 현관 밖 엘리베이터 입구도 덩달아 시끄러웠다.     

 

  그날도 옥상에서 발소리가 크게 났고 층계참이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벨소리가 울렸다. 아마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니까 장난으로 벨을 누르고 도망가려 한 것이었으리라. 그런데 나는 마침 현관 렌즈를 통해 밖을 보고 있었고, 바로 문을 열고 호통을 쳤다.      


  학생들은 벨을 누르자마자 문이 벌컥 열려 무척 놀란 듯했다. 그런데 그들을 더욱 식겁하게 만든 게 있었으니, 비니가 거세게 짖으며 달려드려 한 것이다. 나도 당황해서 비니를 꽉 붙잡았지만, 그들을 향해서 이를 크게 드러내며 더욱 거칠게 짖어댔다. 아이들은 야단치는 나보다 비니를 더 무서워하며 혼비백산 사과를 하고는 내려갔다.      


  그 해프닝 이후 문을 닫으니 비니가 나에게 뛰어오르며 내 얼굴을 마구 핥았다. 그 가슴이 콩닥콩닥 빠르게 뛰고 있었다. 내가 위험에 빠진 줄로 알았나 보다.      


  그들이 나를 공격하려 한 줄 알았을까? 그래서 나를 도와주려고? 아니면 보호하려고? 대견한 놈. 하여튼 그 날 이후 옥상은 조용해졌다.     


  비니가 떠난 지금 그의 일생을 생각해봐도 그날처럼 거칠고 크게 짖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생각해보니 작은 소리로도 짖지 못하게 한 듯하다. 복종 훈련을 하며 ‘짖어!’라는 명령에만 반응하도록 길들였기 때문이다. 개들의 본성인데. 얼마나 답답했을까.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로만 생각했는데 그 날 이후로는 든든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우리는 단짝이 되어 갔다. 이때의 사진은 몇 장 있는데 대개 비니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진이다. 나의 시선 또한 비니를 따스하게 쳐다보고 있다. 어느덧 우리 집 둘째가 되어 간 것이다.      


  그 단짝을 짖지도 뛰지도 못하게 했구나.





그림은 초기 인상주의 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 (Gustave Caillebotte)'의

'Richard Gallo and his Dog at Petit Gennevilliers' 이다.


검은 정장을 한 신사와 그의 개가 걷고 있다.

앞서 걷는 개의 발이 가벼워 보인다.


비니와 나도 산책을 자주 했는데

저 모습처럼 비니가 항상 앞서 걸었다.

차이가 있다면 목줄을 했다는 거.


지금 난 홀로 산책을 한다.

목줄 없는 손이 아직 어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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