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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험가 Jun 12. 2020

화려한 데뷔 무대는 공원에서

죽은 나의 개를 기억하는 방법 #6

   비니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개는 산책을 좋아할 것이다. 가족과 함께 하는 산책. 반려견과 즐거운 산책은 많은 사람이 꿈꾸겠지만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다.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었고 때와 장소에 맞는 트렌드가 있었다. 한때는 즐거운 행사이지만 어느 순간 의무가 된다. 의무가 되는 순간 노동이 된다. 그래도 생각해보니 행복한 기억이 더 많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개판(?)에서 자랐다. 주택에 살던 어린 시절에는 항상 개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기억하는 첫 개는 ‘해피’라는 스피츠 암놈이다. 나와 같은 나이로 무척 하얗고 자애롭고 용맹스럽던 기억이 난다. 아주 어릴 적 단편적인 기억이지만 강아지를 많이 낳아서 가족들에게 웃음을 주었고, 대낮에 마당의 빨래를 훔치려던 좀도둑을 쫓아버려서 가족들이 대견해 했었다. 해피가 동네에서 가장 사나웠지만 나와 가족들에게는 충성 그 자체였다.     


  그때 살던 수유리 집의 장미가 있던 정원은 해피와 그의 아이들 그리고 나의 즐거운 놀이터였다. 멀리 가봐야 집 앞 골목이었다. 해피는 집 멀리 가지는 않았지만 가끔은 멀리 다녀오는 듯했다. 그 후에 해피는 강아지를 낳았다. 녀석을 닮은 하얀 강아지도 있었지만 얼룩이나 검둥이도 있었다. 그 아이들이 젖을 뗄 무렵이면 이웃집으로 보냈기 때문에 걔들이 보고 싶어 마실을 다녔던 기억이 난다.     


  서교동의 더 큰 주택으로 이사 갔을 때는 해피와 강아지들 그리고 이래저래 우리 집에서 살게 된 떠돌이 개들까지 포함해서 꽤 많은 개와 함께 살았다. 그들이 먹어대는 밥도 엄청났고 싸대는 똥도 수북했다. 어머니께서는 잔디밭과 꽃나무들을 무척 아끼셨지만 그들의 배설물들을 치우며 예뻐 하셨다. 이런 대접을 아끼지 않으니 떠돌이지만 정착한 아이들도 있었고 밥때만 되면 오는 동네 개들도 많이 있었다.      


  당시에 개들은 밥만 주면 알아서 잘 살았다. 강아지도 낳고 키우고 또 그렇게 또. 가끔 풀어 놓은 쥐약을 먹거나 차에 치이지만 않는다면 대체로 잘들 살아갔다. 예방접종은커녕 동물병원이 있다는 것도 몰랐지만 다들 건강하게 살다 가다 했다.     


  그런데 비니가 가족이 되었을 즈음 동물 프로그램에서 개를 키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의사항이 있음을 알려 주었다. 강아지들은 필수 예방접종을 해야 건강하게 자란다고 했고, 그 접종을 마친 후에나 동네 산책하러 가라고 권장하였다. 그래서 비니가 오자마자 나머지 필수접종을 하고 정식 산책을 준비했다.   

  

  그럼 그동안 했던 산책은? 물론 하긴 했다. 아파트 주변만 살짝. 새벽에.

  다만 로망으로 꿈꿔왔던 반려견과의 산책은 아직이었다.     


  일본 만화나 영화를 보면 ‘공원데뷔’라는 통과의례가 있다. 엄마와 아가가 함께하는 첫 공원 산책을 의미한다. 예쁘게 차려 입히고 물론 엄마도 멋지게 차려입고, 유명 브랜드 유모차에 태우고 나가는 첫 산책. 공원에는 선배 엄마들과 아가들이 심사위원처럼 쳐다보며 갓 데뷔한 신인 엄마 아가를 맞이하는. 그 설레는 첫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 엄마들은 출산 못지않은 긴장 속에 준비한다고 하는.     


  나도 그런 마음으로 공원데뷔를 준비했던 것 같다. 미용하고 적당히 털이 자라 오르게 기다리고, 그루밍에 그루밍을 하고. 예쁜 목줄, 비니의 갈색 털과 어울리는 빨강 목줄을 하고 탄천으로 나가서 동네의 모든 애견인과 어울리는 그런 그림을 그렸었다.     


  대망의 산책 전날, 불금임에도 불구하고 빈틈없는 데뷔를 위하여 일찍 들어왔다. 모든 준비사항과 비니의 상태 그리고 예상 시나리오를 점검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긴장에 잠을 설쳤다. 비니는 평소처럼 먹고 싸고 놀다 잠들었지만.      


  내일 잘 해야 할 텐데.    

 

  토요일 오전 탄천 산책로는 개들의 천국이었다. 말티즈, 시추, 요크셔테리어 등 조그만 종들과 리트리버, 허스키 등 큰 종들까지 온갖 종류의 개들이 가족들과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어두운 새벽에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는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서 그랬는지 비니는 주변 모든 사물과 생물체에 반응하며 이리저리 다녔다. 물론 엉덩이를 멀미가 날 정도로 흔들어 대었다.     


  만화나 영화에서나 접했던 공원데뷔 광경이 눈앞에서 그대로 재연되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안면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개들로 인해 인사를 나누고 잠깐이지만 대화도 나누게 되었다. 물론 깊은 대화는 아니고 개에 대한 가벼운 얘기들이었다.      


  그래도 핵심은, 내가 당신 개를 칭찬했으니 이제 내 개도 칭찬해야 옳지 않겠는가였다.      


  그래. 내가 꿈꾸던 주말은 이런 거였어.      

  사랑스러운 강아지와 여유롭게 산책을. 

  지나가는 웃는 얼굴들과 안부를. 

  내 개를 보고 꺄르르 꺄르르 하며 지나가는 아이들. 

  혹은 꺄아 하며 뛰어오는 여학생들.      

  지금 생각해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일상이었다.     


  물론 아름다운 광경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래 걷다 보면 장운동이 활발해지는 건 개도 마찬가지다. 공원데뷔 전 새벽에 산책하러 나갔을 때 오래지 않아 똥을 누어버렸다. 아무 생각 없이 빈손으로 나간 바람에 빈 봉지를 구하는 데 곤란을 겪었던 기억이 큰 교훈을 주었다.    

  

  비니는 산책 때마다 똥을 누었다. 똥은 식사량과 몸 크기에 비례하는가 보다. 비니의 몸이 커가면서 응가도 함께 커갔다. 굳이 표현하자면 크리넥스 4장으로 한 손을 이용하여 한 번에 처리하기 어려운 크기였다. 과장하자면 두 손으로 떠야 했었다. 치와와 등 몸집 작은 아이들은 손가락 크기다. 상상해보라 한 손가락과 두 손 가득. 그래도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니 교양 있는 개 주인이 감당해야 할 수고였다.     


  코카 스패니얼은 사냥개로 분류한다. 그것도 새 사냥을 하는. 정확히는 새를 직접 잡는 게 아니라, 덮쳐 놀라게 해서 하늘로 날아오르게 해 주인이 총을 쏴 잡은 후 떨어뜨리면 물어오게 하는 사냥. 비니는 그런 조상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탄천에는 비둘기들이 많은데 항상 비니의 호기심을 자아내었다. 비둘기 떼만 보면 나를 근처로 끌고 가곤 했다. 나중에 줄이 길게 나오는 목줄로 교체했을 때는 비둘기 떼에게 달려가서 덮치는 행동을 많이 했다. 내가 줄을 미리 잡지 않았다면 몇 마리는 잡아서 엉덩이를 흔들며 물고 왔을 것이다.  

    

  그리고 쥐를 잡은 일도 있었다. 다행히 물지는 않고 앞발로 눌러 제압을 한 것이다. 어떻게 잡았지? 내가 깜짝 놀라 소리치니 살짝 놓아주었다. 잡힌 쥐가 어수룩한 건지 비니가 훌륭한 사냥개인지는 모르겠지만 산책길에 넋 놓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해프닝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오래전부터 탄천 길을 걸었구나···. 

 비니가 없는 지금도 걷고 있는데···. 




그림은 러시아 화가 Alexi Waitsev 의

'Way to Home'이다.


비니는 아마도 제일 행복했던 순간을

가족들과 공원에 산책간 거였다고 기억할 것이다.


집에서의 비니도 행복해 보였지만

공원에서의 비니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비니가 옆에 없는 지금 아쉽기만 하다.

그렇게 좋아 하던 공원 산책을 더 시켜줄 걸 그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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