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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갱보 강대호 Jun 19. 2020

아픈 건 인간만이 아니다

내가 죽은 나의 개를 기억하는 방법 #7

  비니의 삶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예방접종이나 소소한 질병으로 동물병원에 가는 거 외에도 큰 위기 세 번을 견뎌 내었다. 첫 번째는 한 살이 되기 전에 받은 중성화 수술이다. 이거야 실내에서 인간들과 살아가야 하는 수컷들에게는 피하지 못할 숙명이라 하겠다. 비니도 때가 왔고 신호가 왔고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 수술 후 눈에 띄게 풀이 죽어 있는 비니의 눈망울이 지금도 생각난다.     


  두 번째 수술은 5살 겨울 즈음이었다. 어느 날 비니가 계속 토하고 설사를 하는 것이다. 심상치 않아 동네 동물병원에 가니 장이 꼬였다고 곧장 응급수술을 받았다. 수술 예후는 좋았지만 생각지 못한 복병이 나타났다. 다음날 오전에 문병차 병원에 가니 수의사가 좀 좋지 않다는 말을 하였다.     


  “지혈되지 않는 거 같아요. 배를 보세요.”     


  비니의 배가 온통 피멍으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수술 부위에서 지혈이 되지 않아 배 전체로 피멍이 들어가고 빈혈도 심해진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를 보고도 고개를 들지 않는다.    

 

  “무척 어지러워합니다. 이렇게 두면 위험합니다.”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동물병원도 1차 병원이 있고 2, 3차 병원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이 병원에서는 안 되는지 물어보고, 고민하는 모습이니 수의사가 한마디 했다.     


  “개들이 살고 죽는 건 주인의 의지에 달렸어요. 지금 비니에게 동네병원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그러더니 진료의뢰서를 써 주고는 가장 가까운 2차 병원을 알려주었다. 마침 서현역 인근에 있는 H 동물병원이었다. 비니를 안고 의뢰서를 보여주니 카운터에 있던 수의사가 눈꺼풀과 잇몸을 뒤집어 보고는 서두는 모습으로 처치실로 안내를 해 주었다.     


  “빈혈이 매우 심합니다. 우선 혈액검사 등 기초검사부터 해야겠습니다.”     


  피에서 혈소판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백혈구가 혈소판을 적으로 생각해서 잡아먹고 있다는 설명이다. ‘혈소판 감소증’ 내지는 ‘면역 매개 질환’이 의심된다고 했다.     


  “긴급 수혈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앞뒤 잴 필요 없이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수혈을 위해서 또 검사가 필요했다. 개에게도 혈액형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의 피를 받는 것일까?      


  “아, 공혈견이 있습니다.”     


  공혈견이 있다고? 참으로 기특하고 고마운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지, 주인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수의사가 몇 가지 서류를 내놓으며 서명을 부탁했다. ‘수혈동의서’, ‘CPR 동의서’ 등 몇몇 서류들이 있었는데 유사시 의사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류도 있었다.     


  “그만큼 비니의 상태가 위중해서 최선의 시도를 하려는 겁니다.”     


  고민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잠시 후 비니는 수혈을 받게 되었고 H 병원 의료진들의 집중 치료를 받았다. 하루가 지나도 혈소판 수치가 위험수치라 예상보다 많은 피를 수혈해야 했다. 3일쯤 되니 수치가 정상으로 올라오고 있고 조금은 안정 상태로 들어섰다고 했다. 비니에게 피를 준 공혈견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인사를 하고 싶었다.     


  “아, 공혈견이요···. 강릉에 있는 전문회사에 많이 있습니다.” 

    

  공혈견들이 회사에 있다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다음 말들 때문에 더 물어보지 못했다.     


  “비니의 혈액 수치가 정상으로 올라오면 면역 매개 치료를 병행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 약은 사람도 먹는 항암제로 먹으면 치사율이 50% 이하로 떨어진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물론 개에게도 먹일 수 있습니다. 이 약들은 사람들에게 쓰는 백혈병 치료제로, 좀 비싼 약은 싼 약에 비교해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또 이 약은…….”     


  동네 동물병원 원장이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개가 죽고 사는 건 주인 의지에 달렸다는. 그러나 그 상황에서 앞뒤 재며 경제적인 치료를 계산할 수는 없었다. 병원의 계산과 나의 의지에 맞는 선에서 치료 방향이 결정되었다.     


  크리스마스 즈음이었다. 가족들은 연말연시를 오롯이 비니 문병을 하며 지냈다. 오전엔 아내가, 오후엔 중학생이 된 아들이, 저녁엔 내가. 수혈 치료를 마치고 본격적 치료가 들어갈 즈음에는 비니가 기력도 없고 가족들을 봐도 반응이 없었는데, 말일쯤 되니 기력을 차리고 우리에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의료진들은 가족들이 올 때마다 고영양 통조림을 주면서 치료에 도움이 되니 먹여 달라고 했다. 비니는 패드를 깐 무릎 위에 엎드려 손으로 먹여주는 먹이를 조금씩 꾸준히 받아먹었다.      


  새해가 되니 비니도 많이 회복되었다. 그러나 일어서지를 못하고 있었다. 의료진들은 기력이 회복되면 일어설 것이라 했지만 우리는 걱정이었다. 혹시나 누워서 지낼까 봐. 가족들이 방문할 때마다 비니는 끙끙대며 앞발로만 기어 왔다. 엉덩이 흔들면서 뛰어오는 모습을 이제는 못 보는 것인가?     

 

  퇴원 전날에도 비니는 일어서지 못했다. 가족들은 만약을 대비해서 서로의 마음을 다잡는 대화를 했다. 동물 방송을 보니 보조기도 많고 재활치료 프로그램도 다양하더라는 덕담으로 서로의 불안감을 달랬다.  

   

  퇴원일 오전에 집에서 먹을 약들과 통원치료 계획을 상담하는데 담당 수의사가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비니의 회복이 늦어진 것은 경련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뇌전증 발작이라고 보면 되죠. 예전에 그런 경험이 없었다지만 뒤늦게 발생할 수도 있고, 아마도 평생 겪어야 할 겁니다.”     


  경련? 평생? 혼란스러운 와중에 진료실 밖에서 아내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비니! 너 걷니?”     


  비니가 걸어서 아내와 아들에게 온 것이다. 물론 예전처럼 걷는 것은 아니지만 네 다리로 일어서서 걸은 것이다. 그래 그러면 되었다.     


  치료 정산서를 보니 각오는 했지만, 예상보다 많이 나왔다. 당연하게도 문병 왔을 때 먹인 통조림과 패드도 정확히 계산되었다.      


  그래도 일어선 비니에게 고마웠다. 





그림은 플랑드르 화가 얀 피트(Jan Fijt)의

<Big Dog, Dwarf and Boy>이다.


커다란 개와 왜소증 남자와 남자 아이가 있다.

작은 사람들 때문일까 

큰 개 때문일까

큰 개는 더 커다랗게 보이고 남자와 아이는 더 작게 보인다.


비니가 아팠을때 녀석의 존재감도 저렇게 컸었다.

들썩이는 분위기의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우리 가족은 오롯이 비니를 돌보며 지냈다.


아픈 가족을 향한 마음은

동물에게나 사람에게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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