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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험가 Aug 21. 2020

그날 오후

죽은 나의 개를 기억하는 방법 #11

 비니의 심장이 멈추자 수의사의 사망 선언이 있었다.      


  ‘이렇게 쉽게 가는구나······.’     


  누워있는 비니는 편해 보였다. 이렇게 빨리 끝나는데 좀 더 일찍 보내줘야 했나 살짝 후회가 밀려왔고, 슬픔보다는 허탈감이 밀려왔다. 고생한 비니에게 미안하다가도, 편안하게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비니 어떻게 하실 건가요?”     


  가족들과 미리 상의한 대로 화장을 할 거라 했더니 인근 도시에 있는 동물 장례식장에 예약을 해줬다.     


  “예약 안 하면 기다릴 수 있어서요···.”     


  마침 병원엔 그 장례식장에서 제공한 비니 크기에 맞는 종이상자가 있었다. 비니를 눕히고 하얀 종이를 덮어 주고 뚜껑을 덮었다.     


  차로 가니 아내가 이렇게 빨리 끝나? 라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표정은 담담해 보였으나 비니가 들어있는 상자를 보더니 손이 떨려서 운전을 못 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비니 상자는 조수석에 두었다. 비니가 차를 타면 항상 앉던 자리다.     


  운전해서 가는 동안 장례식장에서 몇 가지 준비사항을 문자로 알려왔다.


  ‘먼저 사랑하는 비니의 명복을 빌며 가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비니의 가장 예쁜 사진을 보내주세요.’ 

  ‘혹시 종교가 있으시면 추모식장에 반영 하겠습니다.’   

  

  1시간여를 달려 도착하니 장례식장 직원이 정중하게 비니 상자를 받아들고 어느 방으로 안내를 했다.    

 

  ‘아, 비니야.’      



  비니의 영정 사진이 거기에 있었다. 

  향이 있었고, 십자가가 있었고, 국화 몇 송이가 있었다.    

 

  “20분 후에 화장하겠습니다. 잠시 추모의 시간 가지시고, 혹시 시간이 더 필요하시면 알려주세요.”  

   

  옆방에서 통곡 소리가 울려 나왔다. 귀엽게 혀를 내밀고 있는 시츄였다. 60 정도로 보이는 여인이 서럽게 울고만 있다. 추모실 밖 홀에는 예약을 않고 왔는지 화로가 빌 때까지 그냥 기다릴지, 냉동고에 넣을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가족들이 있었다.     


  시간이 되자 직원 두 사람이 비니 상자를 화로로 옮겼다. 화로는 두 개가 있는데 한 개는 불이 한창 올라 있었다.     


  상자를 열고, 흰 종이를 들치고 비니를 꺼내더니 먼저 저울에 올린다.     


  “12킬로입니다. 16년 사신 견공치고 피부가 깨끗합니다. 보통 노견들 피부는 엉망이거든요.” 이 말을 하면서 화로에 올리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불을 넣었다.     


  ‘한창 나갈 땐 16킬로였는데···.’      

  1시간쯤 후 금빛 보자기로 싼 작은 단지를 전해준다. 아직 따뜻하다.      

  오후에 집으로 와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집을 치우기 시작했다. 비니 흔적을 지우려는 것이다.      


  먼저 100 리터 쓰레기봉투에다 옷, 수건, 걸레, 사료, 간식, 가루약, 브러시, 발톱깍이 등 비니가 사용한 모든 물건을 집어넣었다. 한 장으로 모자라 한 장 더 채워 버렸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비니 집은 와이프가 오랜 검색 끝에 산 것이다. 혹시 다른 집에서 쓸 수도 있으니 잘 닦아서 내놓자고 했다. 락스로 여러 번 닦은 후 뜨거운 물로 충분히 헹궈서 베란다에서 말렸다. 그리고 샴푸와 병에 든 물약 등은 내용물은 버리고 재활용 버리는 곳에 버렸다.     


  이제는 청소 차례다. 진공청소기를 여러 번 돌리고, 부직포로 바닥을 수차례 쓸고 다녔다. 그래도 비니 털이 날아다녀서 반복에 반복···. 먼지 청소를 얼추 한 다음에는 락스 청소를 했다. 적당히 희석하여 바닥과 베란다와 화장실을 닦고 또 닦았다.     


  마지막으로 환기를 하였다. 현관과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서 모든 흔적과 체취가 빠져나가길 바랐다.  

   

  청소를 마무리할 즈음, 말려둔 비니 집을 갖고 내려가니 경비 아저씨가 그냥 재활용에 버리는 게 좋겠다고 한다.      


  ‘아, 다른 사람들 마음은 그럴 수 있겠군···.’     


  다 마치고, 티비 옆 선반을 보니 금빛 보자기로 싼 단지가 보인다.    

  

  ‘내일 자주 가던 산, 좋은 곳에 뿌려줘야겠다···.’     


  집에서 걸어 얼마 안 걸리는 산이다. 낮은 산이지만 깊고 긴 오솔길이 있는 내가 좋아하는. 비니를 인적이 드문 그러나 예쁜 수풀이 자라는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뿌려주었다. 평소 비니와 함께 왔으면 어땠을까? 라고 생각한 곳이다.     


  ‘여기선 맘껏 짓고, 뛰어다니렴······.’     


  그 주말에 세탁기를 돌리려고 빨래 바구니를 정리하다 뭔가를 봤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울음이 터진 것이다.     


  “왜 그래?”     


  다가온 아내에게 지난주에 신었던 양말을 보여주었다. 아내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눈물을 쏟는다.      

  비니를 보내면서도 울지 않았던 우리였다. 

  비니 흔적을 지우려고 다 치웠던 우린데······.     


  양말에 갈색 털이 붙어 있었다.      

  비니 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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