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봄과 여름은

by 도희

J여중 3학년 담임을 할 때다. J여중의 한쪽은 임대아파트와 오래된 주택가에 인접해있고 또 한쪽으로는 대단지 아파트를 끼고 있다. 근처에는 큰 재래시장과 식당, 미용실, 술집, 공구 상회 등 작은 가게들이 즐비했다. 가정형편은 고만고만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온순하고 평범했다. 하지만 어느 학교에나 거칠고 다루기 힘든 아이들은 있게 마련이다.

첫날. 담임들은 제비 뽑기를 했다. 나는 3반을 뽑았다. 명렬표를 훑어보니 아는 이름도 제법 있었다.

1학년부터 데리고 올라온 아이들이라 그런지 마음이 좀 편했다. 이름을 부르며 하나하나 눈을 맞췄다.

'김봄봄' 대답이 없다. 빈자리가 보인다. 김 봄봄(가명). 이름이 낯선 걸 보니 아마 1, 2학년 때 수업을 들어가지 않은 반 아이인가 보다.


점심시간에 봄봄의 2학년 담임을 찾아갔다. 어떤 아이인지 사전에 정보를 입수하고 싶어서다. 전교에서 가장 소문난, 요즘 말로 하면 학교 짱에 꼴통 중에 상 꼴통이었다. 근데 왜 몰랐을까?

1)그녀는신비주의자라 쉽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2)내 기억력이 나빠 보고도 몰랐다

3)학교안에서는 존재감이 없다.

4)학교에 없다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워낙 짧아 귀한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주로 학교 밖에서 활동하는 큰 인물이었다.

봄에게 학교는 어쩌다 와서 잠만 자는 곳, 얼굴 보여 주면 교사가 고맙다고 인사해 주는 심심풀이 땅콩 같은 곳이었다.

봄의 집에 결석을 알렸다. '아, 네' 떨떠름한 반응이다. 자주 겪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은 모양이다.

내일은 꼭 등교하게 해 달라며 수화기를 내려놓는 입에서 하르르 한숨이 새 나온다. 가슴에 맷돌을 얹은 것 같다. 교무실 창밖으로는 때아닌 먹구름이 흘러간다.


다음 날 봄봄의 엄마는 내 손에 아이를 넘겨주며 잘 부탁하다는 의례적인 인사조차 없이 돌아갔다. 면목이 없어서겠지 여기고 상담실에 봄과 마주 앉았다. 일대일 압박 면접을 할 요량이다. 일단 눈에 살기 아, 아니 그냥 기를 모으고 선제공격에 나서려는 찰나. 봄이 대뜸

“선생님, 저 좀 짤라주세요.”

허걱! 예상치 못한 공격이다. 회유와 협박을 하려던 내가 도리어 허를 찔렸다.

“내가?”

학교가 다니기 싫다며 자퇴를 하겠단다. 그만두고 싶지만 부모님이 절대로 허락하지 않으니 날더러 퇴학시키란 얘기다. 갑자기 편두통이 재발하는 듯 했다. 재빨리 집 나간 정신을 수습하며 말했다.

“나도 내 손에 피 묻히기 싫다."

알아서 그만두든 계속 다니든 둘중에 하나 하라는 말을 남기고 일어섰다.

그때부터 봄봄과 나의 길고 지루한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하루는 결석, 다음 날은 조퇴와 지각의 반복이었다. 누구도 들쑥날쑥하는 봄이와 짝이 되기를 원치 않았다.

구석진 자리에 홀로 앉아 곤히 자는 봄을 바라보는 일은 화가 난다기보다 차라리 안쓰럽다. 학기 초지만 교과서는 어디 있는지 모른다. 엎드려 잠든 머리밑으로 보이는 공책의 낙서는 가관이었다. 성적 표현, 거친 쌍소리의 수위가 높다. 무엇이 아이를 이리 만들었을까. 내게 끝까지 감당할 전투력이 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조여온다.

명색이 선생 밥이 얼만데 이 정도에 맥없이 있을 수는 없었다. 기왕 3학년까지 왔으니 졸업은 했으면 싶었다.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써가며 공을 들였다. 그래도 담임이라고 함부로 대하지는 않는다. 어르고 달래고 엎어 치고 메치며 수업일수를 간신히 채워 1학기를 넘겼다.



2학기가 되자 신은 나를 시험대에 올려 단련케 하셨다. 이제 겨우 봄이가 손에 잡히는가 했더니 그에 버금가는 여름(가명)이가 전학을 왔다. 강제 전학이다. 오죽하면 3학년 2학기에 전학을 왔겠는가. 솔직히 우리 반에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1학기에 전학 간 학생으로 인원수가 모자라니 안 받을 도리는 없다. 여름이 역시 봄이처럼 학교 오기가 죽기보다 싫은 아이였다.


여름이는 삐까뻔쩍한 까만 차를 타고 등교했다. 있는 집 자식이다. 여름의 엄마는 잘 부탁한다며 부탁인지 명령인지 알 수 없는 묘한 여운을 남기고 돌아갔다. 졸업은 꼭 시켜 달라는데 졸업을 여름이 제가 하지 내가 시키는 건 아니지 않나. 여름이 아버지는 아침에 애를 태워 정문 앞에 내려 주고 갔다. 삼 일이 지났다. 여름이가 오지 않았다. 어른들에게는 휴대전화가 보편화된 시기였다. 여름의 아버지는 분명 아이가 교문 입구로 들어가는 걸 보고 차를 돌렸다고 한다.

냅다 교문밖으로 달려갔지만 찾을 수 없었다. 골목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며 비웃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 후로 나의 아침은 첩보 작전을 방불케 했다. 교문 입구에서 기다렸다가 팔짱을 끼고 오거나, 어떤 날은 골목길에 잠복해 있다가 뒷덜미를 낚아채기도 했다.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 더니 어느새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다.

12월의 어느 날.

그토록 간절하게 자퇴시켜 달라고 조르던 봄이 녀석은 고등학교 입학시험 면접을 보고 왔다. 비평준화 시절이었다. 봄이의 성적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줄만 서면 간다는 교외 지역의 농업고등학교였다.

비록 형식적인 면접일망정 봄에게 검은색으로 머리 염색하고, 면접 당일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가라고 일렀다. 봄이 면접을 다녀와서 말했다.

“선생님, 얘들이 죄다 이상해요. 정상이 없어요.”

그런 학교에 가야 하냐며 울상이다. 나는 웃으며 일단 입학해서 한 학기 다녀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며 어깨를 두드렸다. 속으론 ‘사돈 남말 하네. 너도 만만치 않다.’라고 했지만.


졸업식 날. 여름이 전학오자마자 서로를 알아보고 단짝이 된 봄과 여름은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교무실로 찾아왔다. 꽃다발 수만 보면 핵인싸다. 대부분이 오빠들이나 다른 학교 친구들에게 받은 것이다. 아무려나 그중에 하나는 내 것 이거니 여겼는데 사진만 찍자고 했다. 운동장으로 나가니 두 아이들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내 손을 잡으며 선생님 덕분에 졸업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두아이들이 무사히 학교를 떠나니 할 일을 다한 것 같아 개운했다. 끝까지 견뎌 준 아이들 대견하고, 자녀들의 손을 놓지 않은 부모님도 고마웠다. 역시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다.



대문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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