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설학교인 U중학교로 발령이 났다. 새 학교에선 모든 업무를 밑바닥에서 시작해야 한다. 수업하랴, 학생 지도하랴. 게다가 업무량은 인원수가 적으니 한 사람이 일당백이어도 모자랄 판이었다. 신설 학교에 신규교장과 신규교감은 완벽한 삼박자였다. 학교, 1학년인 반 아이들과 내 정신마저 이사한 첫날처럼 온통 어수선하기만 했다.
교장과는 예전 그가 평교사 시절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다. 그때도 별난 사람이었지만 교감이 되고부터 교직에서 까다롭기로 꽤 유명짜했다. 교감과 교장은 교장연수 동기였고, 교감의 나이가 한 살 더 많았다. 묘한 권력 구조는 둘의 팽팽한 신경전을 지켜보는 우리들마저 괜스레 초조하게 했다. 어느 순간 툭 끊어져 버릴 활시위 같은 아슬아슬한 전운이 자주 감돌았고 가끔은 그 피가 우리에게도 튀었다.
당시는 전자 문서로 결재를 받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신설학교인지라 구입해야 하는 비품은 많았고 결재받아야 할 문서는 산더미였다. 교감은 바늘구멍으로 홈을 파는 성격이었다. 담당자는 깐깐한 교감에게 겨우 통과한 서류를 최종 관문인 교장실로 가지고 갔다. 교장은 항상 파란 사인펜으로 사인을 했다. 공문이 한 번에 통과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격이었다. 거짓말 같겠지만 글 한 자, 점 하나. 띄어쓰기 한 칸에도 파란 펜은 망나니의 칼춤을 추었다. 교장실에서 울고 나오는 교사가 한둘이 아니었고 퇴짜맞은 결재판을 본 교감은 똥씹은 표정이었다.
똑. 똑. 똑. 결재서류를 들고 교장실 문을 두드렸다. 교장은 내가 들고 간 기안문 내용은 보지도 않고 사인부터 한 후 자리에 앉히고 차를 권했다. 결재를 쉽게 끝낸 값을 치러야할 차례였다. 귀가 아파 왔다. 그에게는 모든 교직원이 못마땅했다. 지금은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온갖 크고 작은 흉을 늘어놓기 시작하면 1시간이 금방이었다. 으~ 기 빨려.
나중엔 꾀가 생겨 연속 수업이 있는 잠깐 사이 내려갔다. 수업이라도 핑계 대야 말 막음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교감의 험담을 듣는 것이 제일 고역이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여러 번 들으면 질리는 법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어느 대숲에 털어놓으란 얘긴지.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일단 앉아 봐라.'로 시작하면 기본이 30분이다. 너그럽지 못한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
“교감 선생님에 대한 말씀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습니다.” 둘의 관계가 마뜩잖다는 이유로 계속 타인의 험담을 듣는 일은 내 정신까지 피폐하게 만들었다. 내친김에 몇 가지 학교 운영과 교사들에 대한 강압적인 태도를 얘기했다. 깐깐하다 못해 쪼잔한 업무처리 방식에 대해서도 속사포처럼 쏟아 냈다. 달라질 걸 기대하진 않았지만 속은 후련했다. 다음 결재 때 교장은 컴퓨터 위에 붙여둔 종이를 가리켰다.
‘화를 내도, 부드럽게 말해도 일의 결과는 같다.’ 지난번 내가 했던 말이다.
비가 곧 쏟아질 것 같은 날. 빔프로젝트 화면을 띄워두고 교무실에 빠뜨린 학습자료를 가지러 왔다. 교무실 문을 막 나서는데 반장이 달려왔다. 무슨 일이 생겼나 해서 가슴이 덜컥했다. 아이는 다급하게 말했다. 교장 샘이 교실에 들어와서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있단다. 아니나 다를까 교장은
“이게 안 보인다고.”
하고 소리 지르면서 애먼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통에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있었다.
전날 학교 운영위원회가 열렸다. 교사 위원으로 참석한 나는 마지막 건의 사항에 교실에 커튼 설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누가 봐도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행정실에 청했다. 빛이 반사되어 빔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아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물론 작전이었다. 학교 측에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차일피일 미루었기 때문이다. 학부모님들 앞에서 말하면 빨리 달아 줄 것 같았다.
전날에 대한 보복이었다. 흐린 날은 빛 부심이 없으니 화면빨이 좋을 수밖에 없다. 그는 내가 틀렸음을 증명하려는 듯 아이들 앞에서 ‘이래도 안 보이냐고’ 체통을 잃은 채 소리 질렀던 것이다.
나는 다혈질이라 쉽게 흥분한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 더러운 성격을 들키고 싶진 않았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평온을 되찾은 척 아무렇지 않게 수업을 끝마쳤다. 교무실로 돌아와 이성이고 나발이고 당장 교장실로 쫓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날뛰는 내 정신을 ‘워워’ 달래며 그의 행동이 얼마나 온당치 못했는지 빈 종이에 조목조목 써 내려갔다. 정리된 내용을 가지고 교장실 문을 두드렸다. 그는 내가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반겼다. 그리고 언제 화낸 적이 있었냐는 듯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어이가 없었다. 뺨 때리고 달래는 격이었다. 전날 내가 운영위에서 본인의 체면을 손상시켜 몹시 기분이 나빴다고 헸다.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음을 설명했고, 교장은 내게 사과했다. 사실은 학생들에게 해야 하는 사과이지만.
그 후로도 우리는 수시로 부딪히고 깨지기를 반복했다. 이일 저 일에 나대는 내게 교장은 '이 학교엔 교장이 둘이가?'라는 말을 자주 썼다. 어떤 때는 분을 못 참아 길길이 날뛰어 하마터면 그의 머리가 천장에 닿는 줄 알았다. 줄줄이 엮다 보면 고구마 줄기에서 딸려 나오듯 아마 밤새도록 에피소드를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쯤에서 그만하자.
부지런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교장은 학교 앞 빈터에 몇 가지 쌈 채소와 호박을 심었다. 삿대질도 서슴지 않던 그가 퇴근 시간맞춰 주차장 근처에서 살며시 손짓하며 불렀다.
“갈치 넣고 찌지 무라. 요새 갈치 맛나더라.” 갓 따서 싱싱한 애호박 한 덩이를 내게 내밀며 다른 사람 눈에 띄기 전에 어서 가라는 시늉을 했다. 계절에 맞추어 가지를 상추를 무를 얻어 왔다. 흐흐. 아무래도 우리는 애증의 관계였나 보다. 그때는 그랬다. 치열하게 다투고, 만나면 으르렁댔지만 나는 선을 넘지 않았고 교장은 정을 베풀었다. 묶이고 꼬인 매듭은 풀어야 한다. 마지막 헤어질 땐 웃으면서 악수로 마무으리~
대문사진: 현용수 네이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