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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든 토끼가 집을 나갔습니다.
토끼는 보이지 않는데
하늘은 저리 맑을 수 있는지
바람은 어찌 이리 처연하게 불 수 있는지
정은 함부로 줄 일이 아니라지만
왔다가 가는 일들이
전생의 업을 풀고 가는 것들이라지만
내 가슴 맺히면
또 누군가 풀어야 할 업을 짊어지고 가는 길이라는데
토끼는 무슨 업을 지고 집을 나섰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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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본시 쓸쓸하게 살아야 한다지요.
각기 하나의 별, 먼 빛들
간격만큼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길이라지요.
사람의 등을 본 사람이라면
더욱이 함부로 정을 받을 일이 아니라면서요
함부로 빛날 일도 아니라고 말씀하셨지요
사람만이 말을 삼킬 줄 안다고
말을 삼키는 사람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그리 다짐했건만
토끼도 말을 삼키고 있었던 줄을 몰랐습니다.
토끼가 사라지고 이틀째
바람조차 가벼이 받아들일 일이 아니라고
꽃조차 함부로 키울 일이 아니라고
눈을 둘 곳이 없는데
감나무에 앉은 새 한 마리
물끄러미 나를 보며 또 말을 삼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