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비가 내렸다.
시 한 줄 쓸까 말까 하다가
개천이 범람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날 홍수로 인해 개울 건너 남자애는 가족을 잃었고, 그 애 집 지붕이 통째로 둥둥 떠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우리 집은 바로 개천 옆이었지만 집 옆으로 작은 동산이 있어서 온 가족이 무사히 피신 할 수 있었다. 동이 트면서 똥물이 범람하는 참혹한 광경을 보았다. 집과 판자와 잡동사니들이 물속에서 뒹굴며 쓸려갔다, 어른들이 시체 두 구를 걷어 올리는 것도 보았다. 멀리 개울 건너에서 남자애가 엉엉 울고 있었다. 아이들의 반은 거적으로 덮인 시신 주변으로 몰려갔고, 반은 개울둑에 앉아 떠내려가는 냄비며 소쿠리를 건져내려고 시끌벅적하였다. 엉엉 울던 그 아이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동산 소나무 뒤에 숨어서 한동안 서성이던 나를.
어느 날 동창회에 그 친구가 나왔다. 친구는 평생 바닥을 전전하며 고독하게 살았다고 했다. 그 후 하늘을 보지 않는다며 손사래를 쳤다. 술이 한 잔 들어가더니 나 이제 성공했다고 목소리가 커졌다. 아무도 듣고 있지 않았다.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죽지 않았는지 술 한 잔에 한 가닥씩 쏟아져 나왔지만 그저 독백일 뿐이었다. 그날 술값을 그 친구가 모두 냈다. 떠들썩하게 한 마디씩 추켜세웠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친구의 맞은편에 앉았었다. 내가 누구라고 말을 했을 때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징검다리를 건너서 둑으로 올라서면 너희 집이 있었지. 맨드라미가 있던 집. 항상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심장이 쿵쾅쿵쾅 울렸다고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친구의 성공사례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온 것처럼 조용히 있었다. 택시를 타면서 거칠게 손을 흔들던 친구가 여전히 젖은 구두를 신고 있는 것 같았다. 홍수 이후 한 번도 벗어 본 적이 없을 것 같은 신. 나는 두 번 다시 동창회에 가지 않았다.
지난밤 비에
담장을 넘어섰던 단감들이 골목을 굴러다니고 있다. 벼들이 모두 누워 있다. 능청스럽게도 유난히 청아한 햇살과 바람이 그 위로 분다. 난간에 새들이 번갈아 찾아와 꼬리 몇 번 흔들고 날아간다. 새는 참 빨리도 일어선다. 참 가볍다. 포르르 펼쳐든 날개를 두어 번 허공에 휘젓고 벌써 사라지고 없다. 앉았던 자리에 흔적마저 털고 갔다.
오전에 잠시 시간이 있어서 붉은 고추 배를 갈라서 널었다. 모으면 한 소쿠리 되는 양이다. 새로 집을 짓고 텃밭에 고추 모종 다섯 개를 심었는데 둘은 병들어 죽고 세 개가 살아 붉은 고추 몇 개를 땄다. 바짝 말린 뒤 가루를 내면 한 주먹도 되지 않을 것 같다. 값도 없이 얻게 된 것이 무거워 새처럼 일어설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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