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쟈스민
바닥에 양탄자를 깔았다. 신랑이 몇 해 전 이란 출장을 다녀오면서 끙끙 짊어메고 들어온 나의 선물이었다. 오리지널 페르시안 양탄자인 것이다. 양탄자 전문 마켓을 돌아다니며 겟한 물건이라며 나름 자부심도 있어서 벽에 그림 거는거는 이해 못하는 양반이 저 양탄자는 깔기 싫으면 벽에 걸어도 된다까지 했던 그 양탄자였다. 허나 두 변에 달려있는 테슬이 별로 맘에 들지 않던 나는 양탄자의 제대로 된 보관법도 모른 채 사각으로 접어 구석에 처박아 놓기를 몇 년이었다. 그런 그 양탄자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내가 지금 그 공간을 제일 좋아한다. 아침에 일어나 제각기 삶의 현장으로 보내고 한가로운 시간 그 시간이 오면 슬쩍 입꼬리가 올라간다. 오늘은 쟈스민룸에서 무얼 해볼까?? 공간의 이름까지 정해줬다. 쟈스민처럼 내가 세상을 향해 거창하게 할 일이 있지는 않지만 커피 한 잔을 들고든, 살짝 유치하게 우겨보는 브런치 카페의 메뉴든, 따끈한 김이 폴폴 나는 사발면을 들고 오든, 책 한 권을 펴 놓고 몇 줄 읽지 않고 멍하니 지나가는 구름 보며 멍을 때리는 그 공간에서는 내가 가끔 쟈스민처럼 되는 것 같다.
갑자기 궁금했다. 왜 틈만 나면 쟈스민한테 가고 싶을까?
어릴 때는 할머니 아빠 엄마 나 수경이 성민이 여섯 식구가 사는 집에서 성별이 다른 막내는 제 방이 있었지만 나랑 수경이는 오롯한 나만의 방이 있지는 않았다. 물론 고등학생이 되면서 혼자 공부할 수 있도록 독립된 공부방을 만들어 주셨지만 그 방에 그리 애착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 대학교도 집에서 통학이 가능한 곳으로 다녔고 졸업 후 이삼 년은 예산에 있었으므로 변화가 없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서울로 올라가야지 마음먹었다. 금의환향을 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은 없었지만 서울살이 먼저 시작한 선미를 동경했었던 것 같다. 서울에 변변한 연고가 없던 나는 처음 일 년은 그즈음 서울서 공부하려던 이모의 딸과 같이 자취를 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신길동의 다세대 주택, 지금 생각하니 뮤지컬 <빨래>의 현지 로케이션이라 해도 무방한 곳이었다. 나이로 보면 스물여섯정도였겠구나. 그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독립이라는 것을 하였으니 철이 늦게 들 수밖에 없었겠다. 그렇다고 또 그 공간이 쟈스민 같았을까? 아니다. 일단은 내 친구들이며 친척동생의 친구들이며 끊임없이 방 한 칸의 자취방에 들락날락하다 보니 공간의 매력보다는 함께하는 시간의 매력만을 느꼈었다. 그러다 드디어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이런저런 사정들로 나는 이사를 하게 됐고 낙성대 3번 출구 근처에 아지트를 만들게 되었다. 정말 나만의 아지트! 내 인생 최초의 홀로서기! 자주 왕래하던 친구들도 더 자리를 잡으면서 얼굴 보기는 예전만큼은 못 되다 보니 그때는 내 쟈스민에게 매력을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됐던 거 같다. 자취의 개념이 월세 아니면 전세이지만 그때도 나는 과감했던 거 같다. 벽에는 내가 좋아하는 잡지들의 사진을 오려서 한 벽면을 꼴라주를 하기도 하고 빌트인으로 되어있는 책상과 가구를 과감하게 옮겨 가벽을 만들고 아일랜드 식탁처럼 쓰기도 하고 꿈에 그리던 프로방스 꽃무늬 시트지를 바르기도 하고 내 모든 애정을 쏟아부었다. 결국 결혼으로 계약기간보다 이르게 방을 정리해야 했는데 주인아주머니 말로는 방을 예쁘게 꾸며 놓아서 계약이 수월하게 진행됐다 하셨다. 아마 오롯한 그 독립의 시간이 내가 어떤 공간에 대해서 진심으로 애착을 가졌던 때인 것 같다. 학원 강의를 준비할 때도, 친구들을 초대해 맛있는 식사를 할 때도, 연애를 하면서도 참 행복했던 공간이었다.
결혼을 하고 애를 키우고 함께하는 공간은 훌륭했으나 왜 나만의 공간을 만들 생각을 못했을까? 이제야 쟈스민이 왜 설렘인지 알겠다. 접어 놓았던 양탄자가 바닥에 깔리고 그 녀석이 왜 따뜻한 강렬함인지 이제야 알겠다. 그냥 그 공간이 오롯한 내 것이라는 그 느낌 하나가 이리 행복할 수가. 어찌 보면 침실보다 이 공간은 더 분리되어 있지 못하다. 투명창 하나가 경계일 뿐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 곳에 오면 나의 첫 쟈스민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그 시간과 공간이 나에게 주었던 그 행복함이 저 한켠에 그리움이었나 보다.
수빈이 방도 아직 미완이다. 저 녀석의 게으름도 한 원인이고 나와의 합의점 찾기도 하나의 원인일 테다. 그런데 오늘 생각해 보니 수빈이도 수빈이의 쟈스민을 만들어 주고 싶다. 수빈이의 방에 나의 의견이 들어가면 그건 수빈이 방이 아닌 것이다. 수빈이의 쟈스민에서 또 그녀가 꿈꾸는 독립은 무엇일까? 나보다 십오륙 년은 더 앞서서 느낄 그 공간의 독립이 궁금하다.
나는 오늘도 이 곳에서 행복했다.
내일도 아마 한쪽 입꼬리가 씰룩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