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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맘 Aug 21. 2020

자책

 나는 자책을 참 자주 하는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러했고 별이 엄마가 된 다음부터는 일상이 된 듯하다. 별이가 조금 아프기만 해도 그러한 상황을 만든 나 자신을 심하게 탓하게 되고 그런 별이가 안쓰럽고 너무 미안해졌다. 


 사실은 나는 별이가 아주 크게 앓을 때를 제외하고는 몸이 아플 때보다 마음이 상처 받았을 때 더 많이 스스로를 원망하였다. 아마도 나는 몸의 병은 눈에 쉽게 보이거나 병을 낫는 약이 어느 정도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마음의 병은 알기도 어려울뿐더러 알게 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는데 생각보다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별이가 아플 때 늘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누구든, 내가 너무 사랑하고 씩씩한 별이라고 하더라도 건강하기만 하고 몸이 아프지 않을 수는 없다는 뜻일 뿐이다. 


 단, 내게도 예외는 있었는데 그것은 '피부' 관련 질환에 대해서는 세상 가장 예민한 엄마였다. 별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태열이 시작되었고 지루성 피부염부터 온갖 피부 관련 질환을 앓았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얼굴 부분이 두드러졌다. (몸에도 있겠지만 유독 얼굴이 더 눈에 띈 것일 수도 있겠다.) 스테로이드가 무서워 어린 별이를 괴롭게 만들었던 무지한 엄마였지만 갓난아기 때부터 나타난 태열에 이상한 직감이 들어 난 별이가 태어난 이후 계란을 먹지도 않고 집에 들여놓지도 않았다. 아마 어디선가 나는 계란과 피부와의 상관관계를 듣거나 보았을 테고 별이 가까이 놓고 싶어 하지 않았다, 정말 이상하게도. 


 피부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별이를 위해 여름엔 내내 에어컨을 겨울엔 가습기를 풀가동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주기도 하고 스테로이드 연고로 상태를 호전시키고 보습제로만 관리를 해 주었지만 여전히 별이는 피부가 많이 아프기만 하였다. 피부가 짓무르어져 이불에 묻어난 피를 볼 때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별이에게 보습제를 발라주고 또 발라주며 한없이 미안해했다. 별이를 걱정하고 또 그런 별이를 걱정하는 우리를 걱정하는 우리 부모님들은 아토피에 좋다는 방법을 제안해 주시기도 하고 크면서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 섞인 따뜻한 위로를 우리에게 건네주시기도 하였다. 하지만 피부는 계속 더 나빠졌고 우리는 더 미안해졌다.


 이유식을 할 시기가 다가오자 나는 더 고민스러웠다. 별이는 아토피 아기가 분명한 것 같은데 병원에서는 아토피란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고 그것은 더 성장한 이후에 판단할 수 있다 말씀하셨다. 물론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순 없었다. 그것은 너무 당연하였다. 아픈 아기들은 너무 많았고 병마다 보호자에게 모두 설명해 줄 까닭은 없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들은 사실 피부가 좋지 못한 것도 맞고 주위에 그런 아기들을 실제로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판단하기에 별이는 마음먹고 나간 커다란 쇼핑몰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얼굴에 바로 발진이 바로 올라올 만큼 '과도하게' 피부가 예민한 편이었다. 나는 이유식 전에 이것에 대해 조금 더 정확하게 알아야 했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인터넷에 검색되는 다양한 정보 안에 내가 내린 결론은 어린아이의 경우 처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스테로이드 연고와 보습제로 상태를 더 나빠지지 않게 관리해주며 크면서(면역력이 나아지면서) 정확한 진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비타민D와 유산균을 약처럼 먹이며 별이가 조금 더 자라 있기를 조금 더 피부가 덜 아프기를 바라곤 했었다.


별이가 매일같이 스테로이드 연고로 증상을 조절하기 전까지 별이의 사진은 웃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 안쓰러운 사진이 너무 많았다. 별이는 연고를 바르는 동안에는 꽤 많이 좋아졌지만 바르지 않으면 금세 또 나빠졌다. 가장 심하지 않았던 사진을 넣고 싶었다. 난 지금도 그때의 별이 사진들을 잘 보지 못하겠다.


 사람마다 생각도 다르고 판단 기준도 다르듯이 나는 나와 별이에게 최적이라고 판단되는 한 병원을 선택하였는데 그곳은 아토피로 심하게 고생하는 아이들이 큰 병원을 다니고도 호전되지 않아 그다음으로 찾는 곳처럼 내게 느껴졌다. 또한 그곳의 원장님은 전문의는 아니셨지만 아토피라 불리는 '알레르기'에 관한 열정이 전문성을 만들어내신 분처럼 내게 비쳤고 주기적인 피검사를 통해 항원 물질을 정확히 판단하고 가장 보수적으로 항원 물질에 완전 차단을 권하는 곳, 그곳은 나의 삶의 방식과 닮아 있었다. 별이 아빠는 그곳의 방식을 퍽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엄마인 나의 의견을 존중해주려 노력하였다. 그것은 별이 가까이에서 별이를 가장 지켜보고 힘들어할 것이라는 별이 아빠 나름의 배려였다. 우리는 때때로 부딪쳤지만 난 별이를 위해 절대 이 방식을 고수하였고 신랑은 이해하지는 못하였지만 역시 수긍해주었다.


 사실 나는 문화센터에도 다니고 있었고 아기 엄마들과도 교류하고 있었다. 항원의 완전 차단에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별이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둘 만의 고립은 몸의 치료 측면에서는 더 나았겠지만 마음의 병을 유발할 수 있겠다는 나란 사람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과도하게' 예민한 나와 별이를 위해 주식을 비롯해 간식까지 배려해주었던 그 친구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물리적 거리마저 멀어져 예전만큼 가깝게 있지도 못하지만 나와 별이는 자주 그들을 그리워하며 우리는 앞으로도 가끔씩 함께할지도 모르겠다.


 완전 차단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내 주위에 너무 많았다. 그것은 이제 막 세상에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별이에게 꼭 필요하고도 중요한 조언이었다. 하지만 내게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비교적 정확하다는 피검사 결과 확인된 별이의 알러지 수치를 줄이고 결국은 없애서 알러지 행진을 막겠다는 것, 그것을 위해서는 완전 차단이 보다 효과적이고 어린 아기인 별이는 엄마인 내가 도와주면 어쩌면 가능할 것이란 판단과 함께 나는 초등학교 전까지 나아지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삼았었다.


 사실 내가 극성을 떤다고 하여 알러지가 나을 것인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다. 어른들의 말씀처럼 자연스럽게 나아지는 경우도 물론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별이는 알러지 체질로 확인이 되었고 이미 다양한 항원 물질에 대한 알러지 수치가 있었지만 없어지기 쉽지 않다던 '계란' 알러지는 없었다. 나로서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는 꽤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을 보다 선호하는 사람임이 분명한데(나의 전공이나 과거 이력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상한 직감이 들어 보통 즐겨 먹는 계란을 집에 들이지도 않았고 덕분에 별이는 계란 알러지가 없어서 완전 차단을 시작하고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이것을 먹는 것이 가능하였다. 입맛 까칠한 별이는 뒤늦게 접해서인지 취향을 맞을 뿐인지 계란을 무척 좋아하고(정확히 말하면 계란 노른자) 여전히 즐겨 먹는다. 우리 부부는 반숙을 선호하는데 별이도 역시 반숙 프라이에 노른자와 흰자를 굳이 분리하여 노른자 위주로 먹는다. 흰 자는 나의 강압에 못 이겨 억지로 먹는 시늉만 할 뿐이다. 굳이 노른자와 흰자를 구분하는 것도 재밌고 나는 그것이 색깔 때문인지 별이의 의도를 가끔은 추측해보기도 했었지만 뭐 본인이 원해서 본인이 스스로 한다는데 나도 굳이 말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사실은 나는 그것이 엄청나게 궁금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계란을 먹게 된 별이가 감사했고 행복했다.


 어떠한 원인에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별이는 알러지 수치가 감소하였고 병원에서는 더 이상 내원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해주셨다. (별이는 6개월에 시작하여 아마 24개월이 지나서 알러지 수치가 거의 사라졌다.) 그때의 감동이란. 나는 매 검사 전날도 결과를 받는 날도 그 이후로도 늘 마음 한 편이 불편하고 속상했다. 마치 나의 완전한 잘못으로 나의 사랑하는 아이가 깨끗이 낫지 못했다는 자책을 했었던 것도 같다. 그 말을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 나는 '별이'에 관하여는 세상 가장 생각도 불안도 많은 엄마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별이는 피부가 예민한 편이고 온습도를 비롯해 옷, 이불 등 신경 써야 할 것이 꽤 많다. 알러지 수치가 사라졌지만 면역력이 더 커야만 지금보다 더 건강한 피부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하셨었다. 별이는 잠 설치는 날이 여전히 존재하고 따라서 몇 년 동안 먹고 있는 항히스타민제를 많이 줄이긴 했지만 아직도 가끔 먹는다. 그래도 나는 별이의 피부가 점점 좋아질 것이라고 믿고 있고 또 지금까진 그러했다. 별이가 알러지 수치가 없어진 이후 만난 사람들은 별이가 아토피(알러지)였었는지 알 수 없고 다만 가끔 선생님들께서 별이의 예민한 피부로 아주 살짝 놀라시는 정도이다. 나 역시 별이에게 약처럼 먹였던 유산균과 비타민D도 잘 못 챙겨주는 덜 예민한 엄마가 되었다. 


 별이보다 더 많이 피부가 아픈 친구들을 보면 나는 마음이 너무 아프고 힘들었다. 내 아이가 덜 아픈 게 다행스러우면서도 아이와 부모의 그 고통이 감히 헤어릴 수 없을 정도로 힘들지 않을까 지레짐작해서이다. 또 한편으로는 나의 이기적인 동정심이 부끄럽기도 하였다. 그들은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일 수도 있는데 내가 나의 기준으로 그들을 예단하는 것이 진심으로 죄송할 따름이었다. 아무튼 난 여전히 '아이'의 '피부'에 관하여는 오지랖이 넘치는 엄마이다. 그것은 내가 이겨냈기 때문이 아니라 이겨내고자 지금도 노력하는 평범한 아이의 엄마로서의 동질감을 느껴서이기 때문인 것도 같다. 또한 어느 아이나 몸이나 마음이 예민한 부위가 있을 수도 혹은 없을 수도 있을 텐데 내가 그런 것들에 덜 예민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한다.


 나는 '내가 잘해서' 별이의 아토피가 나아졌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내가 못해서' 별이의 아토피가 심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는 못한 것도 잘한 것도 있다고 생각하려 애쓴다. 나도 그러하지만 별이 아빠도 '늘' 별이를 위하여 '더' 잘하지 못한 자신을 탓한다. 물론 잘한 자신을 칭찬하기도 하지만.


 내 주위에 나보다 너무도 아이를 사랑하는 좋은 엄마들이 많다.(물론 좋은 아빠도 많고.) 그들은 아이 일에는 늘 열정적이고 항상 아이를 배려하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본인을 탓한다. 물론 나도 그들이 나처럼 늘 탓하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될 만큼 그들은 최선을 다해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 그것은 아이를 매우 많이 사랑하니까 그렇다. 우리는 스스로를 반성하면서 성장할  수 있다.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가 너무 아플 만큼 심히 자책하지 말자. 내가 슬픈 것은 나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나의 아이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를 위하여 자책을 조금만 하자는 뜻이다. 안 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이것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나는 꽤 괜찮은 엄마인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나는 내 아이를 너무 사랑하고 그것이 내가 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전부이지만 내 전부를 다하여 끊임없이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내 아이가 내게 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아이도 그만큼은 아닐지라도 나를 꽤 괜찮은 엄마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게 아니어도 진심으로 괜찮다. 내가 더 많이 사랑하니까 날 좀 덜 사랑해도 마냥 좋을 만큼, 난 별이를 지나치게 사랑한다.


 이렇게 어린 별이를 데리고 나는 문화센터로 동네 친구네 집으로 마구 돌아다녔다. 친구가 필요한 건 '별이'가 아닌 '나'였다. 나는 완전 차단을 목표로 하는 그 시기에도 2박 3일의 여행을 다녀왔고 별이의 모든 끼니를 다 챙겨가면서 억척스럽고 예민하게 여행을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그렇게까지 굳이 외출과 여행이 필요했을까 싶기도 하고 또는 그럴 거면 완전 차단을 하겠다는 나름의 고집을 좀 접었어야 했나 싶기도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는 지금, 나는 그때의 내가 떠오른다.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았다면 나는 더 철저하게 별이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었을 테지만 난 그렇게 하지 못하였고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여 나의 별이를 위하여 노력하였다.

 아마 지금 누군가는 열심히 거리두기를 하면서 힘들어하고 있거나 혹은 걱정하면서 아이들을 학교를 보내고 친구를 만나고 있거나, 또는 두려움을 접은 채 생계를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모두에게, 나는 너무 다른 사람도 자신도 탓하지 말고 잘 버텨내고 있는 우리 자신들를 칭찬해 주자고 소심한 위로를 건네고 싶다.  


 별이는 유치원 숙제로 독서 활동을 일주일에 한 번 한다. 별이는 본인 취향에 맞는 책들을 골라오곤 하는데 이 날은 '사마귀'에 관한 책이었다. 이 날 독서 활동은 '내가 그 책의 주인공이라면'이라는 주제였다. 숙제를 싫어하는 평소의 별이와는 다르게 꽤 집중하여 숙제에 임했다. 그리고는 아주 즐거워하며 작품 설명을 이었다. 본인이 사마귀라면 엄마를 놀라게 만들겠다는 별이의 진심과 포부가 정성껏 담겨 있는 이 그림이 나는 무척 마음에 든다. 

  물론 본인인 사마귀는 세상 멋지게 그리고 엄마는 색칠조차 해주지 않았지만, (보통 사람을 아주 간단하게 그리는 편인 별이가) 엄마의 콧구멍까지 그리는 디테일에서 엄마를 사랑하는 별이의 마음이 듬뿍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책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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