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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맘 Aug 22. 2020

잠자리

 비가 와도 너무 오고 있다. 갑자기 쏟아붓는 빗줄기에 많은 사람이 힘들어하고 있는 요즘, 죄송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아주 큰 변화는 없다. 그저 놀이터에서 놀지 못하는 것, 꿉꿉한 것을 견디지 못하여 온종일 에어컨을 가동해야 하는 것 정도로 이 기나긴 장마를 지내고 있을 따름이며, 마스크를 쓰고 밖에서 잠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올라 당장 집으로 달려가 마스크를 벗고 가슴 깊이 숨을 들이쉬고 내뱉고 싶을 뿐이었다.


 별이의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다가 별이의 자전거 바구니에 잠자리가 앉은 것을 발견하였다. 혹시나 별이가 오기 전에 날아갈까 싶어 난 서둘러 사진에 담았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원 버스가 다녀가는 아파트 새싹 정류장은 버스들로 금세 가득 찼다. 비가 와서 버스가 제시간에 맞게 도착하지 않은 탓인지 버스에 탈 어린이들이 늦장을 부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정류장은 버스가 뒤엉켜 이따금 빵빵대기도 하고 뒤 버스가 방향을 바꿔 멈춰 선 버스를 지나치고자 뒤엉켜 정신없었다. 맨 마지막에 별이의 유치원 버스가 도착한 줄도 모르고 별이가 이 사진을 보면 좋아할 생각에만 빠져 있다 뒤늦게 버스를 발견하고 나는 서둘러 뛰어갔다.


 별이에게 사진을 보여줄 요량으로 자전거로 향하며 이야기를 꺼내렸는데 그 잠자리가 여전히 별이 자전거 바구니에 꽂아놓은 나뭇가지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 나는 별이를 계속 채근했지만 별이는 움직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한참을 바라보던 별이는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잠자리의 날개와 꼬리 생김새를 설명하면서 본인의 관찰 실력이 좋아졌다며 만족스러워하기도 하고, 잠자리가 바구니 속 나뭇가지를 좋아하는 것은 아마도 본인이 나뭇가지로 흙을 파며 놀았는데 그 흙냄새가 나기 때문인 것 같다고 하였다. 사실 자세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것들을 다 기억하기에 난 너무 끈적거렸고 숨이 막혔다. 사람들과 어느 정도 간격을 확인하고 나는 나와 별이의 마스크를 벗고쓰는 것을 반복하였다.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별이에게 이동할 것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별이는 아주 천천히 자전거를 움직이며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별이는 잠자리가 날아갈까 걱정하기도 하고 근처에 있는 새들이 혹시나 잠자리를 잡아먹지는 않을까 불안해하였다. 나는 잠자리가 먼저 날아가 주길 바라였지만 그 잠자리 역시 좀 전의 별이처럼 움직일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별이는 힘들다 집에 가고 싶다 계속 투덜대는 내게 미안하였던 것인지 아니면 본인도 집까지 그런 속도로 가는 것이 답답하였던 건지 혹은 그러는 사이에 잠자리가 날아갈까 걱정이 되었던 건지 어쨌든 집까지 백 년 걸리겠다고 조용히 내뱉고는 갑자기 잠자리를 키울 경우의 장점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잠자리가 있으면 모기를 잡을 수 있다고 사뭇 진지하게 이야기하였지만 난 영혼 없이 끄덕이기만 하였다. 나는 별이에게 미안하지만 잠자리를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눈 앞에 놀이터를 발견한 별이는 잠시 놀이터에서 놀다 가자며 자전거를 세웠고 나는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무 답답했지만 한 편으로는 잠자리가 날아갈 생각에 나름 기분 좋게 승낙하였다. 그리고는 요즘 한창 빠져있는 그네로 뛰어가 놀다가 곧 나의 강요에 못 이겨 집 앞 놀이터 그네로 발걸음을 한 번 옮긴 다음 결국 아이스크림의 유혹에 못 이겨 우리는 집으로 향하였다. 그 사이에 잠자리가 어디론가 사라졌고 난 안심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별이가 잠자리가 앉은 자전거를 최대한 조심조심 끌고 가자, 지나가던 어떤 어린이는 흘깃 관심을 보였다. 그러다 같은 동 인사만 나누었던 어느 이웃 분과 우연히 마주쳤고, 인사 외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는 그분은 우리에게 (나뭇가지에 앉은 것이) 진짜 잠자리가 맞냐고 물으셨다. 나도 (믿고 싶지 않지만) 맞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잡을 수 있는 게 없다는 별이의 혼잣말도 모르는 척하였다.



잠자리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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