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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면역질환의 명의를 찾아서

by 다이아

2025년 1월 23일(목)


지난 금요일에 퇴원했다.

집에서 남편과 게임도 하고 예능도 보며 깔깔댄다.

가끔은 엄마, 아빠가 집에 와 잠시 놀다가기도 한다.

마치 휴가와 같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K 센터 진료 예약일이 다가왔다.


이른 아침 6시 반

남편과 함께 두둑한 전원서류를 챙겨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한다.


이젠 부축을 받아 걸을 수 있게 됐으니

휠체어 없이

왼쪽에는 남편과 팔짱을 끼고

오른쪽에는 지팡이를 쥐고

용감하게 외출을 감행한다.




K 센터에 도착했다.

여긴 국립병원이라 그런지

뭔가 공공기관 느낌이 확 나는데

여기저기 보수공사 중이라 어수선하기까지 하다.


남편의 감상평에 따르면

마치 야전병원 같은 생김새라고 한다.


E 대학병원은 신설 병원이라

깔끔하고, 화려하고, 넓고, 쾌적했었는데...

갑자기 그곳이 조금 그리워진다.


어쨌든 병원에 도착했으니 전원 절차를 밟는다.

접수를 하고

전원서류를 제출한 다음

MRI 등 검사결과 CD를 등록한다.


제출한 서류가 한가득이라 기다림을 거듭한다.

절차를 완료하고 진료실로 향했다.




탈수초성 질환의 일인자

K 센터 신경크리닉 H교수님!


그는 신경면역질환 관련 학회의 회장으로

어찌나 유명한지 뉴스기사에도 참 자주 등장하신다.


탈수초성 질환이란? 신경 세포를 둘러싼 절연 물질인 수초가 손상되어 발생하는 질환을 통칭하며 이러한 손상은 신경 신호 전달을 방해하여 다양한 신경학적 증상을 유발한다. 대표 질환으로는 다발성경화증, 시신경척수염 등이 있다.


그런 만큼 아침 9시 전에 진료실에 도착했음에도

대기하는 손님이 꽤 많다.


대기표를 끊고 기다린다.

갑자기 다른 진료실에서 나를 호출한다.


조교수님(으로 추정)과

우선적으로 진료 및 상담을 진행하고

이후 H교수님과 본진료를 본다고 한다.

그녀와 증상 발현, 진단 및 치료, 재활 등에 대해

사전적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상담 중에 넌지시 내 병명이 도대체 뭔지

일단 알고라도 아프고 싶다 고민을 토로한다.


"다이아님은 병명이 급성횡단척수염인 거예요.


종종 이런 척수염을 반복해서 일으키는

원인질환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 대표가 다발성경화증과 시신경척수염인 거죠.


다이아님의 경우엔

그 원인질환을 진단받진 않은 상태이신 거고요."


그 원인질환이 있는지 없는지 궁금한 건데...!

알쏭달쏭함을 떨치지 못한 채 문답이 끝난다.


잠시 후 H교수님이 우리를 호출했다.

남편과 지팡이에 의지해 조심조심 걸어가

진료실 의자에 앉는다.


교수님과 인사를 하고 아이컨택을 하니

사람 좋은 인상에 애처로움이 서려있다.

그래.... 내가 차트상으로 좀 불쌍하긴 하지...


"다이아님 차트를 한참 동안 봤어요.

참 개인적으로 안타깝기도 하고...

많이 응원하게 되네요.


그래도 재활을 정말 열심히 하신 것 같아요.

고생 참 많이 하셨어요."


가볍게 인사를 마치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E 대학병원 J교수님께 진료받았다 했죠?

혈장교환술이나 면역글로불린 치료는

안 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당시 임신 중이라 그런지

해당 치료를 언급하긴 하셨지만

스테로이드 외 다른 치료를 권하진 않으셔서

더 고려하지 않았었다 대답한다.


"이 병은 초기 치료를 최대한 적극적으로 해서

부작용이 안 남게 하는 게 중요한데...


할 수 있는 처치는 다 해봤어야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조금 화가 나네요.


지금 젊고 한창 사회생활이 필요한 나이인데

이렇게 장애가 남아서..."


교수님이 안타까움과 한탄을 뱉어낸다.

머리를 띵 맞은 것과 같은 충격이 다가온다.


아...

많이 나아졌다 좋아하고 있었는데

나 장애가 생긴 거구나..


"지금처럼 재활을 꾸준하게 열심히 해야 해요.

그래도 젊은 나이라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은 있어요."


내 나이가 젊은 게 다행인 걸까

젊은 나이에 이런 병이 생겨서 불행인 걸까

그의 설명은 나의 기분과 상관없이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다이아님처럼

갑자기 뇌와 척수에 염증이 발생한 경우

염증을 반복적으로 발생시키는

중대한 자가면역질환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게 다발성경화증이나 시신경척수염처럼

의학적으로 밝혀진 경우도 있고

슬프지만 아직 파악하지 못한 질환일 때도 있습니다.


다이아님의 경우

밝혀진 원인질환은 진단된 상태는 아닌 거고

한 번으로 끝나는 질환일 수도

재발을 하는 질환일 수도 있는 거죠.

결국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겁니다."


남편이 다급하게

재발 확률에 대해 알 수는 없냐 묻는다.


"아시겠지만...

제가 한국에서는 다이아님이 앓고 계신 질환을

가장 많이 다룬 의사일 거예요.


말씀드렸듯이 아직 다이아님이 어떤 질환을 앓고 있는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니

이런 경우엔 경험에 의존해 말씀드려야 해요.


제 환자들의 케이스를 보면...

확률은 딱 반반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운이 안 좋은 절반에 걸리면 재발하는 거죠."


너무나도 높은 확률에

나와 남편 모두 화들짝 놀란다.


"다이아님의 경우에는

척수염이 처음치고 아주 강하게 온 케이스라

재발방지를 위한 면역억제 치료도

진지하게 고려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다행히도 면역 치료를 위한

좋은 약제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있습니다.


다이아님의 경우

원인질환을 발견하지 못해

처방은 비급여로 이루어지긴 하겠지만...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또 재발하면 더 큰 문제가 될 거예요.


재발하는 경우

이 정도로 다시 걷기까지도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앞으로 여기 병원으로

완전히 전원 하실 계획이신가요?"


J교수님의 퇴사로 우리에겐 퇴로가 없다.

남편과 함께 즉시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과거 J교수님은

내 척수염이 심하진 않으니

곧 괜찮아질 거라 그랬는데


지금 H교수님은

내 척수염은 강하게 왔으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같은 환자, 같은 병이라도

담당 주치의에 따라 참 천차만별이구나

다시 한번 생각한다.

결국 아빠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럼 MRI, 유발전위검사, 항체검사는

여기 병원에서 한번 더 해보시죠.


E 대학병원도 저명한 병원이라

결과가 달라지진 않을 확률이 크지만

그래도 체크하고 넘어갑시다.


검사 후 결과가 나을 때쯤 다시 진료 보시죠.


그때 리툭시맙이나 마이렙트를 활용한

면역억제 치료에 대해서도 상담드릴 테니

먼저 인터넷 등에서 조금 찾아보시고

가족분들과 함께 상의해 보세요"


리툭시맙...

마이렙트...


과제를 부여받고 진료실에서 퇴장한다.

간호사님과 함께 다음 진료예약을 잡는다.


2025년 2월 15일(토) : MRI (뇌, 척추)

2025년 2월 20일(목) : 유발전위검사 & 외래


내 병이 미로처럼 복잡하긴 해도

새로운 길잡이를 찾았으니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와 희망을 다시금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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