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아 Oct 08. 2016

혼자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다

내가 어딜가도 든든한 지원군이 함께였다.

 인간관계는 얕더라도 넓은 게 좋다고 믿는 사람이 있고, 넓히기보단 소중한 몇몇 사람들과의 깊고 친밀한 관계를 지속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다. 어릴 땐 무조건 친구가 많은 게 최고인 줄 알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단지 서로의 ‘인맥’의 한 부분이었던 인연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경험했다. 그렇기에 나는 내 곁에 남은 사람들, 내가 힘들 때 기댈 수 있게 어깨를 빌려줄 인연들을 더 챙긴다. 반대로 나도 그 사람들에겐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존재임을 알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는 항상 나를 응원하고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너는 잘 될 거라고, 해낼 수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내가 어떤 허무맹랑한 계획을 말해도 내 의견을 무시하거나 안 믿는 것이 아닌, 당황스러움에 헛웃음을 치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선 내가 해낼 거라는 믿음을 가져주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땐 자신의 일처럼 마음 아파하고 눈물 흘려줄 수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내가 언제 어디서든 걱정 없이 당당할 수 있었다.     


 해외생활을 하며 두 번 도둑을 맞았는데, 미국과 영국에서 한 번씩이었다. 그중 두 번째 도둑맞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내 기숙사는 문을 네 번 열어야 들어갈 수 있다. 출입카드를 긁고 철문을 열고 들어오면 건물이 있다. 카드를 한 번 더 긁으면 건물 1층 문을 열 수 있다. 그리고 8명이서 부엌을 나눠 쓰는 한 단위를 플랫이라고 하는데 그 안의 각자의 방과 부엌이 있다. 그곳을 열쇠로 열고 들어가면 마지막으로 내 방도 열쇠로 열고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들으면 철통보안이 이루어질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카드가 없어도 누군가의 뒤를 따라 들어가면 되고 이것저것 수리하는 사람들이 많아 누군가에 의해 마스터키는 계속해서 돌아다니고 있다. 아무래도 열쇠다 보니 마음만 먹으면 다른 집 문을 따는 것이 쉽기도 하다. 그래서 도난사건이 많이 일어난다고 학기 초부터 방에 귀중품과 현금을 절대 놓지 말라고 한다. 얼마나 심각한지 기숙사생을 모두 모아 영상을 틀고 교육을 시킬 정도다.

 나는 컴퓨터를 항상 놓고 다녔지만 다행히 아무 일이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 중에 방에 노트북을 두고 부엌에 잠시 갔다 온 사이 노트북이 없어져 노트북보다는 과제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한동안 실의에 빠진 애들도 있었다. 현금이 없어지는 일은 예사로이 일어난다고 현금은 절대로 방에 놓지 말라고 한다. 일단 놓고 나오면 그건 내 손을 떠난 것이라 생각해야 할 정도다. 해외에서 체류할 때는 생활비를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한국 카드로 출금을 한 후 현지 계좌로 옮겨 넣었다. 수수료도 덜 붙고 빼서 쓰기도 편해서 그렇게 해왔다. 특이하게도 영국 현금인출기는 말 그대로 인출만 된다. 그래서 입금을 하려면 창구에서 하거나 은행 내에 있는 입금기를 이용해야 하는데, 그 말은 곧 은행 업무시간이 지나면 돈을 찾을 수만 있고 넣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하루는 출금을 해서 다시 입금을 하려고 보니 은행 문이 닫을 시간이었다. 다음날이 주말이라 고민을 했지만 월요일에 바로 넣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한 달 치 생활비를 집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논문에 집중하다 보니 며칠 잊은 게 일주일이 지났고 확인을 해보니 지폐 몇 장을 제외한 나머지 돈이 사라진 것이었다. 처음엔 내가 어디에 잘못 두었나 싶어 여기저기 찾아보았다. 하지만 내 기억은 분명했고 이건 누군가가 가져간 것이었다. 감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상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선 나는 돈을 아주 깊숙이 넣어두었다. 나조차도 꺼내려면 시간이 걸릴 정도로 깊은 곳이었다. 침대 아래 서랍이 있었는데 그곳에 내 배낭을 넣어 두었고, 그 배낭의 안주머니에 지갑을, 그리고 그 지갑 안 봉투에 넣어둔 돈이 너무나도 감쪽같이 없어진 것이다. 나는 일주일 동안 단 한 번도 내 방에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적이 없었고 누구의 발자국이나 사람이 들어온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도둑이 들면 건드린 표시가 나야 되는 건데 이건 완벽해도 너무나 완벽했다. 

 이렇게 완벽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을 들였다는 말인데 그러면 내 생활 패턴을 안다는 이야기다. 처음에 주변에 이야기를 했을 땐 옆방 사는 애들이 그런 게 아닐까 의심해보라고 했지만 그러기에 당시 내 패턴은 일어나자마자 도서관에 출근해 자기 전에 들어오는 패턴이 깨진 불규칙한 상태였다. 나중에 학교 인터넷을 쓰고 있는 노트북 카메라 해킹으로 결론을 지었지만 누군가가 언제든지 내 방에 출입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날 두려움에 떨게 했다. 


그때 나는 망설임 없이 한국에 들어가 있던 F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제일 듣고 싶은 목소리였고 지금 가장 옆에 있었으면 하는 사람이 언니였다. 그때 언니가 얼마나 보고 싶던지 언니의 ‘여보세요’만 들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학교에 이런저런 항의를 하고 경찰에도 보고하래서 다 했는데도 결국 나에게 남은 건 내 시간과 감정의 소모뿐이었다.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니 아무것도 되지 않는 사실이 더 속상해 많이 지쳐있던 상태였다. 매일매일 무서움에 떨며 밤을 보내야 했던 나의 마음을 엄마만큼이나 잘 이해해준 언니는 연신 "얼마나 무서웠을까."를 외치며, “우리 한나 괜찮아? 가서 따뜻한 티 한잔 마시고 좀 쉬어. 얼마나 무서웠을까….”라고 말했고 그 말을 듣는 나는 흐르는 눈물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며칠 동안 두려움에 떨며 누가 들어올까 불을 켜고 잠을 청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악몽을 꾸고 벌떡 깨어났다가 다시 잠을 청하곤 했다. 그날 밤, 엄마와 아빠는 혹시나 딸이 잘 때 방에 누가 들어올까 싶어 머나먼 타지에서 혼자 두려움에 떨 딸을 계속 걱정하셨다. 

 내가 많이 무서워하던 하루는 엄마께서 이해인 시인의 <일기>라는 시를 보내주셨다. 지금도 난 이 시를 보면 엄마의 다독거림이 느껴져 눈물이 난다.     


오늘도 

불을 켜놓고 잠이 들었다

마음의 불도 켜놓은 채

나는 계속

낯선 길을 헤매는 

꿈을 꾸었지

     

문득 놀라

잠에서 깨니 

아무도 없는     


고요한 방     


괜찮다, 괜찮다

다정하게 들려오는 

하느님의 목소리       


 항상 나를 걱정하시는 부모님은 물론이고 내 일을 자신의 일처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많아 나는 어디서든 혼자가 아니다. 그렇기에 두려운 일도 금방 이겨낼 수 있었다. 내가 어디에 있든 나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위해주는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비록 몸은 혼자였지만 결코 지구 어디에서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전 12화 가끔은 멍때리며 비워내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