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아 Oct 19. 2016

Why not? 안 해 볼 이유가 없다

나를 성장시킨 한마디

                                                         

2009년, 처음 만난 인도


 
 내가 인도를 가게 된 것은 정말 우연적이며 충동적이었다. 대학교 1학년 1학기 어느 날 좋은 주말, 컴퓨터를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인터넷 서핑을 하며 메신저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친구가 다짜고짜 “해외 봉사활동 가자” 라고 하는 것이다. 이 친구는 무슨 일이든 일단 지르고 보는 친구다. 나랑 성격이 비슷해 그 후에도 내가 엉뚱한 일을 하고 싶어 할 때 항상 옆에서 불을 지폈던 친구이다. 나도 해외봉사활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바로 “그래!”라고 대답했다. 
 보통은 이것저것 묻고 따진 후에 결정을 할 것인데 나는 반대였다. 일단 승낙을 해놓고 난 후 “근데 어디로? 뭐 하는 건데?” 라고 질문을 했다. 친구도 내 대답에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우선 대답부터 받은 후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친구도 정해놓은 것 없이 막연히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나에게 던졌고, 나는 그걸 알면서도 덥석 물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우리는 가고 싶은 나라, 봉사활동 종류, 날짜와 기간 등을 정하기 시작했다. 최종 후보에 올랐던 두 나라는 몽골과 인도였는데 왠지 모르게 인도가 더 끌렸다. 7월에 인도 슬럼가에서 2주간 교육봉사를 하는 프로그램으로 결정을 했다. 
 다른 봉사자들과 한국에서 함께 출발하는 것이 아니고 현지에서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항공권은 각자 구입했다. 우리는 프로그램 시작 이틀 전에 출국하기로 했고 친구와도 가는 표는 따로 끊었다. 내가 친구보다 늦었는데 새벽 한시가 다 돼서야 도착했다. 
 처음 와본 나라에 치안이 좋지도 않은 곳이어서 우린 공항 밖으로 나가지 않는 쪽을 택했다. 친구는 자연스럽게 공항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자기로 했다. 나는 바닥이 불편해서 의자에 쭈그려 앉아 잠을 청했다. 잠자리가 불편하기도 했지만 바깥세상이 너무나 궁금해서 계속 잘 수가 없었다. 동이 트자마자 친구를 보채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안경이 뿌옇게 변해버리는 엄청난 습도와 숨 막히는 열기에 한 번 놀라고 정신없는 분위기에 두 번 놀랐다. 시내로 나가니 도로 상태가 생각보다 많이 안 좋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인도는 ‘배낭여행의 끝판왕’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그것도 모르고 캐리어를 끌고 새 신발을 신고 간 나는 인도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샌들은 가자마자 끊어졌고 캐리어도 여기저기 긁혀서 찢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즐겨 보자는 생각을 했다. 내 옷이 더러워지는 것, 물건이 망가지는 것, 음식을 먹고 아프게 되는 것들을 신경 쓰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새로운 음식을 보면 일단 먹고 봤다. 모르는 게 있으면 현지인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그렇게 우리나라와는 정말 많이 다른 인도만의 독특함에 홀린 듯 두려움을 점점 버리게 되었다.
 처음엔 내가 앉는 곳에 뭐가 묻었을까 신경을 썼고, 화장은 못해도 선크림을 열심히 발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차피 땀에 흘러내리니 선크림조차도 바를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고, 더러운 땅바닥에도 아무렇지 않게 편하게만 앉았다. 더 이상 더럽다고 겁난다고 피하지 않고 이것저것 다 해보게 되었다. 

  처음엔 인도 사람들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는 시선조차도 부담스러웠다. 눈도 큰데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는 게 많이 불편했고, 무섭기까지 했다. 왜 저렇게 쳐다보나 싶어 눈이 마주치면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그 당시 인도 버스 중에는 우리나라 지하철처럼 의자가 기다란 벤치로 되어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 버스들은 창문에 유리가 없는 것이 많아 신호가 걸리면 옆 차 사람들과 너무 가까이서 마주 보게 되는 구조였다. 
 하루는 시내에 나갔다 들어오는 길에 맞은편 사람들이 일제히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쳐다보는 게 부담스러워, 친구에게 “그만 좀 쳐다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갑자기 손을 번쩍 들고 흔들기 시작했다. 활짝 웃으며 우리나라 말로 “어! 그래그래, 우리 신기하게 생겼지? 계속 쳐다봐, 안녕!” 이라 말하는 것이다. 당황한 나는 “뭐하냐?” 고 물었고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뭐 어때? 저 사람들한테는 우리가 신기한 연예인 같은 존재잖아! 그냥 인사 한 번 해줘!”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생각을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바로 그것이다. 그 사람들은 우리가 신기해서 쳐다본 것이었다. 다른 이유가 아닌, 정말로 신기해서 쳐다본 것이고 이 나라에선 그렇게 빤히 보는 것이 일상적인 것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고 나니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 불편한 마음도 한순간에 사라졌다. 
 인도에서의 생활은 열흘 남짓 밖에 되지 않았지만, 무엇이든 일단 해보고 보자는 친구의 도전정신을 가까이서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아직까지 꺼내지 못하고 있던 나의 도전정신도 이렇게 점점 모습을 드러냈다. 인도 여행 이후론 나도 “why not?"을 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나에게 다가오는 기회는 일단 잡고 봤다. 우물쭈물하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두려움이 많이 없어진 후라 ‘뭐든 인도보단 낫겠지’ 라는 마음으로 일단 하고 보자고 생각했다.
 물론 처음부터 쉽게 그럴 수 있는 용기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시도해 보고, 해보니 별거 아니라는 것을 느껴본 후, 더 큰일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없애갔다. 인도에서의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이후로 어느 나라를 가도 ‘혼자 여행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그랬기에 모로코도 홀로 갈 마음을 먹을 수 있었고 내 인생에 있어 흔치 않은 기회 중 하나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인도에서 배운 ‘why not?’정신은 내가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는 선진국으로의 여행도 좋아했지만, 우리나라와 문화와 생활방식이 확연히 다른 나라로 여행하는 걸 더 좋아한다.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은 한국보다 개발이 조금 늦어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고, 다른 대륙에서는 그곳들만의 특별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나라들의 특징은 치안과 위생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했던 말 중 ‘인도를 경험하면 어디든 여행할 수 있다’라는 말에 힘을 입어 사람들이 쉽게 하려고 하지 않는 경험도 나는 “왜 안 해? 기회가 왔을 때 해야지!” 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막상 시작하고 부딪히면 별것 아닌 일도 마음을 먹기까지가 참 어렵다. 해보지 않았기에 불안함과 두려움이 먼저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해보지 않을 이유는 없다. 해보면 결과가 어떻든 무엇이든 배울 수 있고 모두 내 경험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것이 내 그릇을 키워주며, 또 거기에 맞는 기회를 물어다 준다. 
 내가 살면서 정말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하는 일들 중 하나가 그때 친구의 제안을 다른 생각 않고 바로 받아들인 것이다. 인도로 봉사활동을 가자고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반응하듯 ‘거길 어떻게 가!?’ 라고 반응했다면 나는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인도에 갈 수 있는 기회뿐만 아니라, 그 후에 나에게 다가왔을 수많은 배움과 경험의 기회까지도 놓쳤을 것이다. 
 나에게 처음 물어왔을 때 “Why not? 그래, 가자!”라고 말한 나 자신이 지금도 신기하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었나 싶지만 그렇게 대답했던 나에게 고맙다. 그 한 번의 결정이 날 얼마나 성장시킬지 당시엔 알지 못했지만 분명한 건 그때를 기점으로 나는 정말 많이 성장했다는 것이다. 

                                                  

이전 06화 이름없는 맛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