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시절, 내 삶의 8할이 논문과 함께였을 그 때.
나는 잠시라도 논문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는 일을 찾아야만 했다.
책상 앞에 앉아있지 않으면 허리는 아프지 않았지만 머리속엔 아직도 온통 주제에 관련된 생각이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었다. 멈추지 않는 기계처럼 내 뇌는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밤에 자려고 누워도 온통 그 생각 뿐이었다. 머릿속의 생각이 날 괴롭히면 사놓은 와인을 한 잔 마신 후 잠을 청해야 했다.몸을 뉘우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달리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었다. 아프면 아픈대로 다음날도 똑같이 일어나 나는 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뭔가 내 삶을 밝게 해줄 것이 필요했다.
매일매일 나를 한계치까지 몰아가는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하루는 슈퍼에 파는 꽃다발에 눈이 갔다. 매일밤 머리를 비우기 위해 캘리그라피를 연습했는데 드라이 플라워를 곁들이면 훨씬 예쁠 것 같았다. 영국은 꽃이 싸다. 슈퍼에서 파는 꽃다발은 세일도 많이 한다.
혼자 두 다발을 들고 와서 열심히 다듬고 방에 주렁 주렁 걸어놓았다. 기다리는 시간 내내 설레였고, 방에 꽃이 걸려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밝아지는 것 같았다.
지금도 나는 우울할 땐 꽃을 찾는다.
기분이 쳐질 땐 작은 화분을 산다. 내 공간에 생명이 들어온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많이 풀린다.
내가 아닌 다른 돌볼 것이 생겼다는 책임감.
요즘엔 드라이플라워 자체를 많이 팔기도 한다.
하지만 생화를 직접 말리며 기다리는 시간이 주는 설렘은 그대로가 특별하다.
꽃을 보면 항상 생각나는 그 때,
어둠의 터널에서 나온 듯한 그 느낌.
그래서 꽃이 참 좋다. 원래도 좋아했지만 더 좋아졌다.
어릴 땐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꽃사랑이 이런 이유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