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삿포로 일본어 (3)
삿포로에 오니 주변의 모든 것이 일본어 교재였다. 숙소 근처 편의점에서 이코카(ICOKA) 카드를 충전하려고 했을 때에도 단어의 실제 사용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すみません、カードを充電(츄덴)したいです。”
점원이 멈칫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반복해도 통하지 않았다. 다행히 충전은 할 수 있었지만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중에 알게 된 건, ‘충전(充電)’은 전기를 채울 때 쓰는 말이라는 사실이었다. 교통카드에 돈을 넣는 건 ‘충전’이 아니라, ‘チャージ(차징)’이었다. 사소한 차이였지만, 내게는 큰 성장의 순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스시집에 갔다. 식당 앞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어디에서 번호표를 발급받는지도 몰랐다. 나중에 알고보니 기계가 식당 안쪽에 있었다.
일단 식당과 가까운 곳에 기다리는 듯한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서있었고, 식당 바로 앞에는 몇 명만 줄을 서 있길래 같이 섰는데 알고 보니 그 줄은 번호가 다가와서 곧 들어갈 사람들의 줄이었다.
뭔가 이상한 느낌에 사람들에게 일본어로 물어봐서 엉뚱한 줄에서 기다리는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언어는 그저 공부의 대상이 아니라, 하루를 조금 더 편하게 만들어주는 도구라는 걸 실감했다.
스시집 대기 시간 동안 들른 곳은 훗카이도청이었다. 벽돌색 외관의 오래된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내부는 작은 박물관처럼 꾸며져 있었고, 홋카이도에 대한 내용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물 앞에 설명문을 읽다가 ‘더 많은 일본어를 알면 이 공간이 더 풍부하게 보일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시를 먹고 난 뒤에는 새로 생겼다는 수족관 ‘AOAO SAPPORO’로 향했다. 그곳에서도 일본어가 늘었다는 걸 느꼈다. 전시장 안에서 사람들이 도장을 찍으며 다니는 걸 보고, 궁금해져서 물었다.
“このスタンプは何ですか?”
여학생들이 웃으며 “スタンプラリーですよ”라고 답했다. 도장을 모으면 기념품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였던 것이다. 그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일본어 실력이 향상되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수족관을 나온 후에는 근처 카페에서 크루아상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따뜻한 빵 위에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며 만들어내는 대비가 참 좋았다.
마지막 날 아침, 다시 편의점에 갔다. 이번엔 훗카이도산 우유로 만든 카페라테와, 직접 만들어 먹는 아메리카노와 멜론빵을 샀다.
“これ、どうやって飲みますか?”
일본어 덕분에 수월하게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마실 수 있었다. ‘メロンパン(멜론빵)’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 입안에서 녹듯이 사라졌다. 단지 편의점 아침이었을 뿐인데, 일본의 일상 한가운데에 스며든 느낌이었다.
그다음에는 니조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 안에는 해산물 냄새와 사람들의 활기가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눈에 들어온 건 ‘오이소(おいそ)’라는 카이센동 가게였다. 바로 그 자리에서 손질한 신선한 해산물을 얹어주는 카이센동은, 지금까지 먹어본 것 중 단연 최고였다.
연어의 부드러움, 성게의 짙은 풍미, 밥알 사이로 스며드는 간장의 짠맛이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신선하다는 말이 이런 맛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여행 마지막 코스는 돈키호테였다. 기념품으로 수프카레 한 팩과 곤약젤리, 그리고 작은 인형 하나를 샀다. 수많은 물건들 사이에서 손에 쥔 인형이 왠지 모르게 나를 닮아 있었다.
그 인형을 보며 이번 여행에서 얻은 것들을 떠올렸다. 단어 몇 개, 문장 몇 줄, 그리고 일본어로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선. 삿포로의 며칠은 길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내가 성장한 흔적이 분명히 남아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여행 중 일본어를 써보자’였지만, 어느새 ‘일본어로 하루를 살아가는 경험’으로 변해 있었다. 게다가 돌아오는 항공편이 단체 야구팀 덕분에 비지니스 좌석으로 업그레이드 되어서 운까지 좋았던 여행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당황했던 순간도,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던 순간도 모두 뜻깊은 경험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