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스턴스] 아름다움이 나를 파괴한다

by 디비딥

# 과잉

물질(substance)이라는 뜻의 영화는 절제라고는 찾을 수 없는 과잉으로 가득 차 있다.

그 과잉은 징그럽고 불편하며 결국은 기괴함에 이른다.

나는 호러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신체가 그 대상이 되어 찢기고, 잘리고, 벌려서 내장을 헤집는 등의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바디 호러물은 시각적 괴로움 때문에 보기 힘들다. 감사하게 이 글을 읽으러 오신 분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큰맘 먹고 영화를 본 이유는 순전히 '그녀'때문이었다.

극한의 과잉을 통해 영화가 다루는 주제인 아름다움에 대해 이처럼 강렬하고 도전적인 스토리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영화의 한복판에는 한 때 전신성형까지 하며 자신의 미모를 지속적으로 리뉴얼했던 여배우, 데미무어가 있었다.


# young & pretty

엘리자베스(데미 무어)는 한 때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으며 스타의 거리에도 이름을 새길만큼 잘 나갔던 여자다. 물론 젊을 때 얘기다. 화려한 시절도 세월에 희미해지며 지금은 TV 에어로빅 쇼를 진행하고 있다. 예전의 명성만큼은 아니어도 그녀는 여전히 날씬한 몸매를 드러내고 셀럽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며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제작자(데니스 퀘이드)가 보기에 그녀는 이제 나이 들고 한물 간 여자다. 프로그램의 변화와 활력을 위해 늙은 여자는 퇴출하고 젊고 예쁜 여자를 찾아야 한다.


그들의 세계에선 아름다움이 최고의 가치다. 그들에게 아름다움이란 젊고 탱탱하며 섹시하여 모든 남자들이 군침 흘릴만한 여자란 뜻이다. 그런 면에서 엘리자베스는 어렵게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나이와 주름, 퇴색한 미모를 감출 수 없다. 그들의 '시장'에서 그녀는 이미 경쟁력을 잃은 상품이다.


그녀는 자신이 그들의 세계에서 퇴출되었다는 사실을 수용하기 힘들다. 모든 인생을 자신의 신체와 미모가 가진 경쟁력으로 살아왔는데 갑자기 다르게 사는 방법이 쉽게 찾아질 리가 있겠는가.

그래서였다. 그녀는 우연히 알게 된, 누가 봐도 야매스러운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구입한다.

오로지 젊음, 그 하나를 되찾기 위해서.


그녀의 몸으로 들어간 물질은 그녀의 몸속에서 또 다른 젊은 여자를 탄생시킨다.

한 몸에서 생겨난 두 존재. 그녀들은 이제 일주일씩 번갈아 살아가야 한다.


물질의 도움으로 태어난 젊은 여자, 수는 세상 밖으로 나서자마자 엘리자베스가 퇴출된 피트니스쇼의 오디션에 도전하고 발탁된다. 제작진은 혜성처럼 떨어진 젊고 아름답고 섹시한 수에게 매혹된다. 수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경탄하는 시선과 환대 속에 마음껏 자신의 젊음과 미모를 누린다. 예전의 엘리자베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수가 잘 나가도 너무 잘 나가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피트니스쇼의 제작진은 그녀에게 기존의 피트니스쇼의 진행에 만족하지 않고 성대한 '투나잇쇼'의 진행을 맡기려 한다. 그리고 호기롭게 많은 투자자들을 유치한다. 수는 날로 인기가 높아지면서 스케줄이 많아지니 일주일이 성에 차지 않는다. 그녀는 결국 야금야금 엘리자베스의 몸에서 물질을 빼내면서 그녀의 시간을 빼앗고 자신의 화려한 시간을 연장시킨다.


그런데 수가 마음대로 약물의 준수사항을 변형하자 엘리자베스의 몸에 이상한 변화들이 일어난다. 노화가 급격해지는 것이다.

젊고 예쁘게 환생한 엘리자베스의 분신인 줄 알았던 수는 이제 엘리자베스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그녀의 노화를 가속화시키는 주범이 되고 말았다.



#chaos


젊은 수와 늙은 엘리자베스는 서로의 적이 되었다.

한 몸에서 나온 그녀들이지만 이제 그녀들은 완전히 다른 개체인 듯 질투하고 경쟁하며 자신들의 모습으로 살아갈 시간을 놓고 경쟁한다.

수의 입장에서는 화려하게 주목받고 찬사를 받으며 살아가는 세상이 펼쳐질수록 그런 날들이 너무도 달콤하여 격주로 사는 시간에 만족할 수 없다. 그런 그녀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급속도로 늙어가며 점점 쭈글쭈글해지고 관절이 굽고 머리가 빠지며 흉물스러워지는 자신의 현재를 보아야 한다.

수의 제어할 수 없는 욕망을 멈추고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현재로 살아가려면 당장 약물사용을 중단해야 한다. 그녀도 안다. 그럼에도 그녀는 결정적인 순간, 수를 없애지 못한다. 더 이상 그녀는 현재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나는 네가 필요해. 가서 모두에게 사랑받아야지.


하지만 그녀들의 과도하고 비틀린 욕망은 이미 선을 넘고 말았다. 그리고 영화가 바다호러극의 진면모를 드러내는 순간은 이때부터다. 선 넘은 욕망과 사용규칙의 위반은 그녀들의 몸에서 물질의 분열과 기묘한 합성을 만들며 젊음과 노화, 아름다움과 추함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기묘한 파국을 보여준다.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진 투나잇쇼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스펙터클 아수라장.

영화가 보여주는 불쾌의 극한은 그 자체가 메시지가 된다.



# 상호텍스트


예전 영화 속에서 데미 무어란 여배우는 쇼트커트에 청순한 미모로 영혼으로 나타난 연인에게 눈물을 또르륵 흘리는 맑은 여자(<사랑과 영혼>)였고, 백만장자 남자를 단숨에 홀리게 만드는 미모를 가졌음에도 그의 유혹을 뿌리치고 가난한 남자에게 돌아오는 마음까지 아름다운 여자(<은밀한 유혹>)였다.

그랬던 그녀가 어느 날 전신성형을 했다는 소식과 함께 <미녀 삼총사>에서 그 성과를 한껏 과시하며 몸짱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자연인 데미무어의 삶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이었다.

10대의 나이에 그녀를 낳은 엄마는 남편과 금방 이혼을 했고 그녀는 계부를 친부로 알고 살아왔다고 한다. 또한 엄마가 되기에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던 그녀의 엄마는 그녀가 열 다섯살이던 때에 한 남자에게 돈을 받고 그녀를 팔았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결핍은 그녀가 사랑의 대상을 끊임없이 찾아 헤매게 했던 이유가 되기도 했던가보다. 그녀는 세 번의 결혼을 했고 세 번의 이혼을 했다. 두 번째 결혼상대는 브루스 윌리스였고, 세 번째 상대는 그녀보다 열여섯 살 연하의 애쉬튼 컬처였다.


영화 속 엘리자베스처럼 그녀는 자신이 사랑받을 유일한 수단은 오직 아름다움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는 수억을 들여 노화를 방지하고 보수하며 안티에이징에 온 인생을 바쳤다. 그리고 대중은 그런 그녀의 소식을 흥미롭게 소비했다.


자서전과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진 그녀의 삶은 이 영화의 또 다른 프리스토리(pre- story)가 되어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캐릭터를 강화한다.

자연인 데미무어가 엘리자베스를, 엘리자베스가 데미무어를 가로지르며 현실과 가상의 캐릭터가 소통하는 느낌은 이 영화만이 갖는 특별한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영화 <서브스턴스>의 주인공은 데미 무어가 아닌 다른 누구를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30년 전, 한 프로듀서가 저한테 제가 그냥 팝콘 배우일 뿐이라 말했고, 그 당시 저는 이런 상은 나한테 허락되지 않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성공한 영화를 만들고 그걸로 많은 돈을 벌 수는 있지만 인정받을 순 없었어요.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믿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생각이 저를 갉아먹었고 몇 년 전에는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됐어요, 이미 난 끝났고 내가 해야 할 일은 다 해버린 건가 봐. 그런 힘든 시기에 있을 때, 마법 같고, 대담하고, 용감하며, 예상을 뛰어넘는 완전히 미친 것 같은 이 스크립트가 제 책상에 있었던 거죠. 서브스턴스가요.
(2025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수상소감 중)


<서브스턴스>는 데미 무어의, 데미 무어에 의한, 데미 무어를 위한 영화다.

평생을 타인의 시선과 지나친 미모유지의 강박으로 살았던 그녀가 이제는 자연노화의 얼굴을 카메라에 드러내고 삶을 연기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그녀를 아름답다고 말할 것이다.

협소한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과 시선으로부터 해방되는 여배우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의 이야기는 좀 더 다채로워질지도 모를 일이다. 쉽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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