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나는 작가다

by 디비딥

2003년, 20대의 마지막.

나는 우연히 어느 영화사에서 시나리오 작가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1990년대 한석규, 심은하, 고소영 등을 주인공을 내세운 기획영화를 다수 제작한 영화사였다. 내가 작가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는 고민할 새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오직 ‘지금의 내 상태’를 탈피하고 싶은 절박함에 휩싸여 있었다.

공고를 보기 전 나의 상황은 이러했다.


대학 졸업 후, 영화과 대학원을 들어갔다. 때는 1990년대. 영상의 시대였고 ‘영화 평론가’로 불리는 사람들이 매체에 등장하여 영화를 소개하고 해설해 주던 때였다.

새로운 직업군에 눈을 뜬 나는 ‘영화 평론가’가 되길 꿈꾸었다. 무엇보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했으니 그 일이 나의 직업으로 연결된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았다. 대학원을 도전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학교생활을 하다 보니 애초의 나의 계획은 변하기 시작했다. 학교에는 제작을 전공하는 사람들과 이론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섞여있었고 우리는 장벽을 두지 않고 자주 교류했다. 말하자면 동기란 이름으로 자주 술을 마셨단 얘기다. 누군가가 단편영화를 찍으면 우르르 몰려가 도와주었고 촬영을 마치고 함께 마시는 술자리는 젊음과 즐거운 에너지들로 넘쳐났다.

그 시절 내가 속으로 자주 되뇌었던 말이 있었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좋아하는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그 영화에 대한 평을 쓰는 것이며,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은 직접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누벨바그의 대표감독이자 <400번의 구타>, <줄 앤 짐>을 연출한 프랑스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의 말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 말 때문이었다. 내가 겁 없이 영화 창작을 할 수 있을 거라 용기를 가졌던 것은.

자연스러운 관심의 이동은 내가 그만큼 영화를 미친 듯이 사랑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확신하며 나는 나를 꽤나 기특해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감독이 했던 말이었으니 절대신뢰를 보내면서 말이다.

트뤼포가 말하는 직접 영화를 만드는 일이란 내게 있어서 시나리오를 쓰는 일이었다. 영화이론을 공부하던 내가 갑자기 콘티와 촬영 및 편집 등 기술적인 것들을 한꺼번에 습득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노트북 자판을 앞에 두고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일이라면, 그것이 자판을 두드리는 것으로 완성될 수 있는 일이라면 해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겁도 없이 말이다. 이해하시라. 그때의 나는 무려 20대 청춘이었으니 말이다.

이후 나는 습작을 하기 시작했다. 단편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하고 방송국에서 실시하는 단막극 공모에 도전하기도 했다. 글이라곤 학교 리포트만 썼던 내가 갑자기 창작을 하려니 잘 될 리가 없었다. 맘 편히 앉아 남의 작품을 이리저리 잘근잘근 씹을 줄만 알았던 내가 창작을 고민하며 겪게 된 고민들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세상의 모든 작품이 경이로워지고 급격히 겸손해졌으며 작품의 하나하나를 곱씹어보게 되었다. 창작을 고민하니 이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뒤늦게 시나리오를 쓰겠다는 결심으로 습작을 하는 과정은 불안하고 외로운 시간이었다. 불안한 만큼 마음은 더 급해지는 아이러니 속에 나의 20대가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대학원을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나의 사회적 구실에 대한 의구심을 잠시 유예하고 있던 부모님은 본격적으로 한심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안정된 직장도, 결혼 예정도 없이 나이 먹어가며 집 밥을 성실하게 챙겨 먹고사는 딸의 속내를 알 수 없어 답답해했다. 하여튼 쓸데없는 공부를 했고 그걸 덜컥 허락해 준 자신들의 선택을 자책하기도 했다. 부모님에게 예술과 영화에 대한 공부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쓸데없는 공부일 뿐이었다.

수중에 돈은 없고, 부모님께 손 벌리자니 잔소리를 감내해야 하는 게 짜증이 났고 무엇보다 내 앞날을 기약할 수 없어 초조한 시간이었다. 갈수록 쪼그라드는 마음을 감추려 자존심만 비대해져가고 있던 중이었다.


영화사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면접의 분위기는 애매했다. 영화과 학교를 다닌 게 고작인 나와는 달리 충무로 영화판에서 무르익은 느낌의 두 여자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몇 가지 질문을 했고 내 대답을 들으며 적의도 호의도 없는 시선으로 나를 내내 관찰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며칠 후 함께 일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내가 드디어 충무로 시나리오 작가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은 바로 직전의 해에 있었던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만큼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해진 아이템으로 시나리오 집필을 해야 하는 공동 작업이었고 그 작업의 보조 작가일 뿐이었다. 그러니 입사의 문턱이 그다지 높지 않았고 열악한 조건을 인내하고 함께 일할 사람이면 누구든 필요했던 것 같다. 글을 조금만 쓰는 흉내를 낼 줄 아는 사람이기만 하면.

아무튼 그때는 무척이나 기뻤다. 더 이상 나를 의심하고 격려하기를 반복하며 혼자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겐 큰 위안이었다. 게다가 잘만 하면 충무로 시나리오 작가로 입봉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기뻤다. 언젠가부터 내 인생이 궤도를 이탈하여 멀어져만 가는 것 같은 낭패감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내가 열심히만 한다면 이제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을 것이고 다 잘 될 것만 같았다.

keyword
이전 01화01. 프롤로그 : 어떤 반성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