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직장, 무한캐피탈

by 천상우


무한캐피탈.png



무한캐피탈은 현정필이 선망하던 회사였다.
이 회사 명성은 킬러들 사이에 자자했다.


현정필은 고층 건물 옥상에서 망원 조준경을 바라보았다. 옆 건물 통유리 사무실 내부가 스코프에 들어왔다. 거리는 약 550미터. 바람은 불지 않았다. 현정필은 중력의 영향을 감안해 조준경의 세로 가늠자를 1눈금 위로 올렸다. 오후 6시가 되자 사무실에 들어온 남자가 회전의자에 앉았다. 그가 리모컨을 누르자 뱅앤올룹슨 엠프에서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 2번 2악장이 흘러나왔다. 남자는 눈을 지긋이 감고 음악을 음미했다. 현정필은 숨을 멈추고 볼트액션 저격총의 방아쇠에 걸어놓은 검지손가락에 서서히 힘을 주었다.

‘탕-!’

하늘에 총 소리가 퍼지자 건물 옥상의 새 때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무한캐피탈은 현정필이 선망하던 회사였다. 이 회사 명성은 킬러들 사이에 자자했다. 의뢰인들이 가장 만족도가 높은 회사로 꼽은 곳이다. 법인 그 자체는 실제 대부업을 영위하는 위장금융회사였다. 청부업으로 들어온 현금은 경쟁 대부업체 인수에 사용되었다. 대부업으로 키운 수익은 킬러들을 고용하는데 쓰였다. 킬러들이 벌어다 주는 돈은 무한캐피탈의 핵심 수익원이었다. 무한캐피탈의 대부업 시장 점유율은 35%. 킬러들에 대한 대우는 업계 최고 수준으로 소문 나 있었다. 현금 흐름이 좋고 직원 처우와 복지까지 탄탄한 대기업 중의 대기업이었다.

현정필은 한때 도박에 빠져 집 한 채 값을 날리고 3년간을 폐인으로 지냈다. 큰 판에서 매번 아슬아슬하게 돈을 날렸던 현정필은 더 이상 확률이 좌우하는 세계엔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떳떳하진 않았지만 우연히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인 뒤로는 훈련한 결과가 고스란히 반영되는 킬러 업이 자신의 소명이라 생각했다.

철저한 실적 평가가 무한캐피탈의 모토였다. 선택 받은 킬러들만이 이 회사에 발을 들인다. 현정필은 지난 1년간 꾸준히 실적을 쌓았다. '5 트라이, 3 킬'이었다. 성공 확률 60%를 넘긴 결과 이 회사 로비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반짝이는 대리석 로비를 지나면 화물 전용 엘리베이터 옆 벽에 킬러 전용 비밀 엘리베이터가 있다. 버튼은 한개 뿐이다. 이 버튼을 누르면 53층 대표실로 직행한다.

"제거 대상에 대한 정보는 장소와 시간, 인상착의 세가지 뿐입니다."

"제이슨입니다."

무한캐피탈 대표가 명함을 건넸다.

"우리 회사 계약 조건은 명확합니다."

제이슨 옆에 앉은 변호사가 두꺼운 계약서를 펼쳐 보였다.

“우선, 저희가 드리는 제거 대상에 대한 정보는 장소와 시간, 인상착의 세가지 뿐입니다. 의뢰인이나 제거 대상에 대한 정확한 신분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예, 인지했습니다.”

"고용 조건은 매월 기본급 천만원입니다. 타이밍에 맞춰 일감을 제때 처리하면 인센티브 5000만 원이 즉시 지급됩니다. 하지만 타이밍을 놓치거나 실패할 경우..."

변호사가 잠시 현정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배상금을 물게 됩니다. 보통 한 건당 5000만원 안팎입니다. 타깃이 살아나면 경호 인력을 늘립니다. 그럼 저희는 그 의뢰인이나 업체에게 더이상 수주하기 어려워지죠. 문제는 타깃으로부터 클라이언트가 청부 의심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작전에 실패하면 저희 회사는 즉시 클라이언트에게 배상금을 먼저 보내죠."

"이해했습니다. 수주 거부권은 있나요."

"있습니다. 회사는 직원에게 한달에 3번 일감을 할당합니다. 직원은 한 달에 2차례 수주를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남은 거부권은 다음 달에 이월되지 않습니다.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현정필이 계약서에 사인하자 변호사가 봉투를 건넸다.

"사이닝 보너스 6000만원입니다. K-209는 관리코드입니다. 입사를 축하드립니다."


‘타깃이 내 행동을 미리 알고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5%? 10%?’


첫 번째 타깃은 경기도 이천 반도체 공장에 다니는 외국인 노동자였다. 현정필은 타깃이 퇴근 한 후 집에 혼자 있는 틈을 타 정확히 가슴팍을 저격했다. 다음날 즉각 인센티브를 받았지만 타깃이 살해당했다는 뉴스는 나오지 않았다. 현정필은 타깃이 기술 탈취를 사주 받은 산업스파이쯤 됐을 거라 생각했다. 두 번째 제거 대상은 수원 삼성연구소 인근의 한 식당에서 근무하는 조선족 아주머니였다. 현정필은 식당 맞은 편 500m 떨어진 3층 건물 옥상에서 방아쇠를 당겼다. 다음날 스마트폰에 5000만원 입금 알림이 떴지만 사망 뉴스는 뜨지 않았다. 발주자가 거대 자본을 가진 대기업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들 뿐이었다.

세 번째 목표물은 한 IT 스타트업의 임원이었다. 그의 일과는 예측 가능했고, 현정필은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목표물은 갑자기 자리를 피했다. 총알은 빈 의자를 관통했다. 그 뒤로 타깃이 보이지 않았다. 실패였다. 정확히 24시간 후. 현정필의 급여 계좌에서 5000만원이 빠져나갔다.

한 순간의 실수일 줄 알았다. 하지만 네 번째와 다섯 번째 타깃도 현정필에게 불운을 가져다 주었다. 타깃들은 스코프에 노출되었지만 산만하게 몸을 움직이다 사라져 현정필이 방아쇠를 당길 기회를 주지 않았다. 부채가 계속 쌓이고 있었다. 현정필은 회사에 찾아가 특급 타깃을 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특급 타깃의 성공 인센티브는 2억. 실패시 배상금은 4억으로 책정돼 있었다.

타깃은 그날 골프 모임을 가지기로 돼 있었다. 골프장 타깃이라면 성공할 확률이 90%쯤 될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현정필은 10번 홀에서 타깃이 퍼팅을 하는 순간 격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멀쩡하게 골프를 치던 타깃이 9홀 이후 자취를 감추면서 작전이 또 실패로 돌아갔다. 실패를 거듭한 현정필에게 회사는 무한한 친절을 배풀었다. 배상금을 회사가 내는 대신 현정필에겐 연리 30%의 저신용자 대출 프로그램을 적용했다.


"총보다 돈이 더 무서운 줄 몰랐지?"

‘뭔가 이상해.’

현정필은 자신의 작은 원룸에서 벽에 붙인 사진들을 노려보았다. 실패한 목표대상들이었다. 그는 패턴을 찾으려 애썼다. 자신이 다시 확률게임의 함정에 갇혔다는 의심이 피어올랐다.

‘타깃이 내 행동을 미리 알고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5%? 10%?’

그는 마지막 목표물, 오윤삼을 미행하기로 결정했다. 회사 규정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지만, 앞으로는 실패 확률을 제로로 만들고 싶었다. 사흘 동안의 미행 끝에, 현정필은 오윤삼을 납치해 고문했다. 피투성이가 된 오윤삼이 고개를 들더니 한 마디를 던졌다.

“병신, 아직도 지가 킬러인줄 알어”

“뭐, 뭐라고?”

“넌 그냥 회사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는 사냥감일 뿐이야. 총보다 돈이 더 무서운 줄 몰랐지?”

오윤삼이 덤덤하게 말했다. 무한캐피탈은 시나리오를 잘 쓰는 진짜 금융회사에 가깝다고 했다.

"이건 다 제이슨이 짜놓은 시나리오야."

오윤삼에 따르면, 제이슨은 미국에서 금융업을 하다 건너왔다고 한다. 영화 투자에 발을 담갔다는 소문도 있었다. 제이슨은 이런 시나리오를 짰다. 우선 대부업으로 키운 수익으로 킬러들을 고용한다. 킬러들은 성공 확률이 높아 보이는 살인청부업에 투입된다. 회사가 투입한 가짜 타깃이 아슬아슬한 확률로 살해 위기를 모면하면서 킬러들은 작전에 실패한다. 킬러들이 물어내는 거액의 배상금은 경쟁 대부업체 인수에 쓴다. 대부업으로 키운 수익은 다시 킬러들을 고용하는데 쓴다. 새 킬러들은 다시 확률 게임의 늪에 빠져든다.

제이슨은 킬러들을 대량 수급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무한캐피탈을 킬러들이 선망하는 회사처럼 보이도록 할 브랜딩 전략이 필요했다. 그래서 현금이 풍부하고 직원 복지가 탄탄하다는 대기업 중의 대기업 이미지를 구축했다. 고용 방식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개발자 영입 절차를 벤치마킹했다. 입사 조건이 업계 최고 수준인 이유였다. 무한캐피털의 수익모델은 현정필이 과거에 당했던 사기도박과 다를 게 없었다. 킬러들은 비밀 유지에 집착하기 때문에 이런 사기가 탄로날 일이 거의 없다고 했다. 현정필은 자신이 그토록 진저리치던 확률의 세계에 다시 발을 들인 셈이었다.

“나도 너처럼 K 직군이었어, 5년 전 까지는”

작업대상이 되는 킬러는 모두 K 직군이라고 했다. K 뒤에 붙은 숫자는 입사 순번일 가능성이 높았다. 즉 현정필을 포함해 209명의 킬러들이 무한캐피탈에 금융작업을 당했다는 의미였다.

"빚이 계속 쌓이면 나같은 L직군으로 전환돼, 신참들을 낚는 미끼가 역할이야. 회사가 킬러들의 정보와 동선, 작업 방식을 알려주면, 당한 척 했다가 회복 하거나 절묘하게 피하는게 우리 일이야. 나도 이 짓이 지긋지긋해“

현정필의 세계가 무너져 내렸다. 그가 빠진 함정의 깊이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빠져나갈 방법이 있을까?"

“나도 아직 빛을 다 못 갚았어. 악순환을 없앨 방법이 있긴 하지, 회사를 없애. 대표를 제거하는거야”

오윤삼은 이미 회사 대표 제이슨의 정보를 차곡차곡 모아왔다. 오윤삼에 따르면 제이슨은 매일 오후 6시, 53층 사무실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고 했다.


현정필은 숨을 멈추고 볼트액션 저격총의 방아쇠에 걸어놓은 검지손가락에 서서히 힘을 주었다.

D-day가 왔다. 현정필은 고층 건물 옥상에서 망원 조준경을 바라보았다. 옆 건물 통유리 사무실 내부가 스코프에 들어왔다. 거리는 약 550미터. 바람은 불지 않았다. 현정필은 중력의 영향을 감안해 조준경의 세로 가늠자를 1눈금 위로 올렸다. 오후 6시가 되자 사무실에 들어온 남자가 회전의자에 앉았다. 그가 리모컨을 누르자 뱅앤올룹슨 엠프에서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 2번 2악장이 흘러나왔다. 남자는 눈을 지긋이 감고 음악을 음미했다. 현정필은 숨을 멈추고 볼트액션 저격총의 방아쇠에 걸어놓은 검지손가락에 서서히 힘을 주었다.

‘탕-!’

45구경 탄환이 현정필의 등을 통과해 가슴 쪽으로 빠져나갔다. 현정필은 땅에 고개를 처박은 채 숨을 헐떡거렸다.

“고마워, 덕분에 빚을 다 털었어”

오윤삼은 현정필의 등을 향해 권총을 한발 더 쏘았다. 전날 오윤삼은 회사와 딜을 끝냈다. 빚을 탕감받는 대신 문제 되는 직원들을 제거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M-24라는 관리코드를 받았다. 그 말인 즉슨 M코드 요원도 한명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오윤삼은 남의 죽음 따윈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건물 옥상을 떠나는 동안 눈물이 나왔다. 그가 현정필을 제거함으로써, 그도 언젠가 제거될 거라는 두려움이 엄습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오늘이 될지, 한달 후가 될지, 일년 후가 될지, 오윤삼은 알 길이 없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