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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하늘 Aug 27. 2018

<삼삼한 이야기>그 189번째 단추

가을겨울봄여름


01. 

아침이 되자, 성급한 가을이 찾아왔다. 

서늘하지만 차갑지 않은 아침 공기는 영락없는 가을이었다. 

속이 시원해지길 바라면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머리카락을 당겨 새로 바꾼 삼푸 냄새도 함께 맡았다. 

아침 7시, 햇볕은 아직 달궈지지 않았다. 


햇빛

햇빛은 포근하기만 한데, 난 겨울을 느낀다. 아픈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 타닥타닥 싸락눈이 내린다. 뜨거운 햇빛 아래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한없이 겨울같다. 



02.


햇빛

아빠를 보러 병원에 들어갔다. 큰아버지와 병원복도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 얘길 나눴다. 한 사람에 대해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공존한다면, 할아버지는 내 삶에서 유일하게 좋은 기억만 남겨주셨던 분이다. 


어릴 적, 할아버지 생신날에는 모든 친척들이 모여 식사를 하곤 했다. 할아버지는 안마기를 비롯해 멋진 선물을 많이 받았는데, 그 중에서 언니와 내가 만든 사탕 목걸이를 가장 좋아하셨다. 사탕을 테이프로 길게 이어붙인 목걸이었다. 우린 할아버지가 목캔디를 좋아하기 때문에 선물을 고민하다가 사탕 목걸이를 떠올렸었다.


엄마가 책상 위에 문제지를 펼쳐놓고 저녁 때까지 다 풀어놓으라고 잔소리를 하면, 나는 조그만 가방 안에 양말과 교과서를 챙기고서 집을 나섰다. (이건 나중에 엄마가 말해줘서 알았다) 그리고 마을 초입에서 엄마한테 붙잡혀 집으로 돌아와 마루에서 회초리보다 두꺼워보이는 사랑의 매로 맞았다. 할아버지는 그때마다 화난 엄마를 막아주셨던 분이다. 


가끔씩 나를 앉혀놓고서 종이에 그림을 그려주셨다. 이쁘게 그려진 토끼의 옆모습이 생각난다. 


할아버지는 농사를 크게 지으셨는데, 덕분에 포도, 감귤, 키위, 감 여러 과일과 함께 자랄 수 있었다. 마당에서 놀고 있으면 할아버지는 본인이 직접 키운 과일로 쥬스를 만들어 주셨다. 


할아버지를 보며 매일 새벽 일을 나서는 농부가 얼마나 부지런한지, 밭을 가꾸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었다. 


그 기억들은 전부 따뜻한 의 기억이다. 

그 때의 할아버지처럼 다정다감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03. 


병원을 나왔다. 가랑비가 내리고 후덥지근한 습기가 피부에 찰싹 달라붙었다.

밤은 다시 여름이 되어있었다.   

햇빛

우리의 계절은 너무 잘 바뀌어,   

내일은 어떤 계절이 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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