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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하늘 May 08. 2017

<삼삼한 이야기>그 97번째 단추

서촌 할머니와 아이들


장소 : 남의 집 차고지 앞.

대통령 선거 벽보를 보며 담소를 나누던 수복과 혜은은 서촌 할머니를 만난다.



#1. 할머니 자리를 뺏어 앉았네.


둘이 앉아있던 자리에 웃으며 다가오신 할머니. 인상이 아주 좋으셨다. 선한 눈매가 기억에 남는 그녀는 우리가 손녀딸 같았는지, 자꾸만 이쁘다며 생글생글 웃으셨다.



#2. 그런데 저 예쁜 여자 아니에요.


여자 사회에서 예쁘다는 말은 가장 자주 쓰는 말이다. 액자도 이쁘고 길 고양이도 이쁘고 볼펜도 이쁘고 새로 산 옷도 이쁘다. 다 이쁘다니까 언제부터인지 공허하게 들리던 말이었다. 그리고 이쁘다는 말보다 멋있다는 말이 좋아서 친구들 사이에는 이 말을 금지시켰고 누가 예쁘다고 하면 누가 예뻐 하래?라고 대답했다. 나의 심보는 점점 나빠져서 여신은 여자귀신, 남신은 남자귀신이라고 늘 정정하고 다녔다. 그런데, 처음보는 할머니의 이쁨을 받고 싶어서 오늘은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이마도 보여드리고 귀도 보여드리고 손도 보여드리고 재롱을 부렸다. 오늘은 그냥 예쁜 여자하기로.



#3. 할머니, 건강하세요.

     

할머니께서는 우리에게 여러 말씀을 해주셨다.

젊을 때, 이곳저곳 다니면서 세상을 배워야지. 가난해도 하고 싶은 걸 해야지. 돈은 쓸 거 안 쓸 거 나눠서 통장에 담고. 돈 빌려주지 말고. 이쁘고 똑똑하니까 시집 잘 가고. 할머니는 보면 다 안다고.


서촌 할머니의 말씀은 글이 없는 사랑스러운 그림 동화같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렇지만 말씀해주셔서 감사드려요."라고 속으로 대답했다.  

    

우리는 할머니 손을 한쪽씩 잡고

할머니, 건강하세요. 시집 잘 갈게요.

좋은 말씀 감사해요. 하고 예쁜 웃음을 남기고 떠났다.



2017년 5월 5일. 서촌 할머니와 다큰 아이들이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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