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할머니와 아이들
장소 : 남의 집 차고지 앞.
대통령 선거 벽보를 보며 담소를 나누던 수복과 혜은은 서촌 할머니를 만난다.
둘이 앉아있던 자리에 웃으며 다가오신 할머니. 인상이 아주 좋으셨다. 선한 눈매가 기억에 남는 그녀는 우리가 손녀딸 같았는지, 자꾸만 이쁘다며 생글생글 웃으셨다.
여자 사회에서 예쁘다는 말은 가장 자주 쓰는 말이다. 액자도 이쁘고 길 고양이도 이쁘고 볼펜도 이쁘고 새로 산 옷도 이쁘다. 다 이쁘다니까 언제부터인지 공허하게 들리던 말이었다. 그리고 이쁘다는 말보다 멋있다는 말이 좋아서 친구들 사이에는 이 말을 금지시켰고 누가 예쁘다고 하면 누가 예뻐 하래?라고 대답했다. 나의 심보는 점점 나빠져서 여신은 여자귀신, 남신은 남자귀신이라고 늘 정정하고 다녔다. 그런데, 처음보는 할머니의 이쁨을 받고 싶어서 오늘은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이마도 보여드리고 귀도 보여드리고 손도 보여드리고 재롱을 부렸다. 오늘은 그냥 예쁜 여자하기로.
할머니께서는 우리에게 여러 말씀을 해주셨다.
젊을 때, 이곳저곳 다니면서 세상을 배워야지. 가난해도 하고 싶은 걸 해야지. 돈은 쓸 거 안 쓸 거 나눠서 통장에 담고. 돈 빌려주지 말고. 이쁘고 똑똑하니까 시집 잘 가고. 할머니는 보면 다 안다고.
서촌 할머니의 말씀은 글이 없는 사랑스러운 그림 동화같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렇지만 말씀해주셔서 감사드려요."라고 속으로 대답했다.
우리는 할머니 손을 한쪽씩 잡고
할머니, 건강하세요. 시집 잘 갈게요.
좋은 말씀 감사해요. 하고 예쁜 웃음을 남기고 떠났다.
2017년 5월 5일. 서촌 할머니와 다큰 아이들이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