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한 생.
집 앞 작은 4차선 도로는 양 쪽에 키 큰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도로 너머엔 작은 천이 흘러 계절의 변화를 제일 먼저 전해주는 곳이다. 차를 몰로 다니다보면 보통 주변을 잘 살피지 않는데 올 봄엔 도로의 갈라진 아스팔트 사이로 새싹들이 빼곡히 올라온 걸 보게 됐다. 단단한 아스팔트의 가장 여린 곳을 뚫고 올라온 새순들의 얼굴이 고운 탓에 매연을 흘리며 지나는 것이 미안했다.
울퉁불퉁하고 둔탁한 아스팔트를 밀어낸 저력의 새순들은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지 않는 순진한 생의 동력만으로 최대치의 오늘을 산다.
내일이면 밟히거나 뜯겨져 나갈지 몰라도 기름진 곳에 심어진 잡초를 시기하지 않고 하필 이곳이냐며 탓하지도 않는다.
생의 자세를 숙연한 마음으로 본받고 존중하고자
나는 절대로 보도 블럭 사이의 풀들은 밟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최근 애들을 키우며 당연하지만 자주 중단되는 일에 짜증이 감당하지 못할 상황에 이르렀는데
(한 달 가량의 방학이었다.)
그제야 다시 도로 위의 웃자란 풀들을 기억해냈다.
그리곤 sns활동을 줄여 일상에 가벼이 흐르고
가능하다면 내면에 깊이 가라앉고자
(임시적 계룡산 시기라고 이름 붙였다.)
휴대폰 어플의 순서와 위치를 바꿨다.
완전하진 않더라도 자발적 고립은 타인의 생각과 감각보다 내 의견을 더 많이 물을 시간을 가져다줄 것이다.
작은 풀들의 순박한 응답과 고운 얼굴을 떠올리고
아무도 없는 딱딱하고 뜨거운 아스팔트 사이에서
오직 내 심장이 뛰는 소리에 귀를 귀울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