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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단우 May 09. 2020

오늘이 마지막 산책이 되지 않기를 (2)

교통사고로 다리가 마비되었다. 디디는 치료를 기꺼이 도왔다.

  디디의 느린 발걸음을 내려다보면서 마냥 슬프기보다 미안함이 밀물처럼 스르르 올라왔다. 어쩌면 그동안 편안한 산책을 하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고, 꾸준히 운동을 시켜주지 못한 이유도 한몫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재작년 교통사고가 났을 때의 상황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일요일 오후, 시에서 운영하는 공유 자전거를 대여해서 자전거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당시에 처음으로 두 발 자전거를 타게 된 초짜 라이더였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조심스러워했다. 근처에 행인이라도 있는 것 같으면 자전거에서 내려 몇 미터를 끌고 갔다. 사고가 일어날까 무서워서 조마조마했던 때문이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고는 터지고야 말았다. 사거리의 횡단보도.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면서 횡단보도에 나란히 붙어있는 자전거도로로 자전거를 끌어갔는데... 신호를 위반하고 갑자기 들어온 오토바이가 내 자전거를 강타했다. 자전거에서 튕겨나간 몸은 포물선을 그리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왼쪽 팔이 덜덜 떨리고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가 다리를 질질 끌고 횡단보도 쪽으로 나왔다. 놀란 행인들이 119를 불렀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일이 밀렸으니 보험처리 하자며 전화번호를 남기고 도망가버렸다. 얼마 뒤, 신고를 받은 앰뷸런스가 도착했고 미세한 감각으로 다리를 질질 끌어 올라탔다. 다리에 아직 힘이 있어 들 것에 실리지는 않았다. 몇 가지 검사를 거치고 나서 입원을 했다. 사고에 비해 큰 부상이 없어 2주 뒤면 퇴원할 수 있었다.



  입원한 후에 문제가 터졌다. 병원이 설렁설렁 진단한 나머지, 다리의 신경이 약간 마비되어 있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입원하면서 목발을 짚고 다리를 끌고 다녔다. 왕진 중인 의사가 다리를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신경반응 테스트를 했다. 그러더니 간호사를 나무랐다. 신경에 마비가 와서 반사 반응이 없을 때까지 뭐했냐며 쓴소리를 냈다. 의사가 다시 무릎을 툭툭 쳤는데 다리는 나무토막처럼 굳어 있었다.






  어쨌든 2주가 지났다. 퇴원 절차를 밟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는 벽을 잡고 천천히 걷는 연습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리에 힘을 주고 걷는 연습을 시도했다. 무릎에 힘이 돌아서 지면을 힘 있게 딛기 시작하면서는 디디와 산책을 시작했다.




  "어어, 천천히. 천천히."




  나이가 들면서 디디의 발걸음이 느려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걸으면서 보니 내가 디디에게 끌려다니는 꼴이 되었다. 너무 빨리 걸어간다 싶으면 리드 줄을 살짝 끌어당겼다. 제법 경력 있는 산책 메이트 디디는 리드 줄의 당김을 금방 알아차렸다. 조금 걸어가면서 잠깐씩 멈추어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일부러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그렇게 걷다 보면 10분이면 다 돌만한 너비의 공원을 1시간이나 걸려서 완주해냈다.



  2주 만에 퇴원한 다리는 3개월의 산책 훈련을 가졌다. 중간중간마다 물리치료도 받았지만 사실 마비된 신경을 살리는데 가장 좋은 운동법은 바로 디디와의 산책이었다. 허리와 다리가 쑤셔서 잠깐 주저앉을 때도 디디는 가던 길을 돌이켜 곁에서 머물러주었다. 낙엽이 다 스러지고 눈발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지만, 디디는 의연하게 추위를 감내했다. 언니의 치료를 도우며 힘차고 단호하게 네 발을 디뎠다.


 





  "아이고, 뭔 놈의 개가 저렇게 사뿐사뿐 걷는대?"


  "하하... 애가 나이가 좀 있어서 빨리는 못 걸어요."


  "개가 몇 살인데 그려?"


  "스무 살이요."


  "아유~ 그럼 걷는 게 기적이지. 내가 아는 집 개는 아예 걷지도 못하고 누워 있디야."


  "그렇구나. 얘는 아직 건강해서 이렇게 매일 산책하고 있어요."


  "걷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네."




  동네 어르신의 놀라움을 뒤로하며 디디의 속도에 발맞춰 갔다. 예전에는 디디가 걷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기다려달라고 요청했었는데, 이제는 반대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누가 보더라도 디디가 나보다 더 느리게 걷게 되었다. 불과 1년 조금 지났을 뿐인데 말이다.



  우리는 새로운 규칙을 정했다. 그든 나든 누구라도 서로 앞서지 않기로. 그래서 우리의 산책이 서로를 교감하고 배려할 수 있는 것으로 세워지도록. 우리 둘 중 하나가 아프게 되어서 산책이 힘겨워지더라도 그의 속도를 이해해주기로. 그렇게 해서 디디가 떠나가는 날까지 산책하는 일상이 멈춰지기 않기로.



  산책을 끝내고 돌아와 디디의 발을 닦여주었다. 오늘도 수고했다고 디디의 등을 쓸었다. 기분 좋게 헥헥거리는 얼굴에서 행복을 읽었다.



  디디야, 오늘처럼 걷자.
오늘처럼 열심히 산책하자.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 산책이 되지 말자.
언니 마음, 알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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