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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 중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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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딤돌


경의중앙선은 경기도 서쪽과 동쪽 내륙을 달리는(도라산 역 - 지평 역) 전철 노선이다. 일부 지하구간을 빼고는 지상으로 달리기 때문에 시야가 편하고 개방감이 있다. 차량 운행간격이 전반적으로 조금 길어 용무가 급한 사람들에겐 답답할 수도 있겠다.


다운로드 (1).jpg (석탄을 이용한 증기기관차 출처 네이버 이미지)


내륙 쪽 팔당역 근처부터는 경관이 빼어나고 유명한 산과 사찰 등이 있어 지공거사(지하철 요금이 공짜인 사람들 스스로 지은 별칭)들에겐 큰 기쁨일 것이다. 며칠 전 탑승을 했었는데 모두 다 겨울잠을 자는 시기라서 그런지 야외로 나가는 인파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사시사철 풍경이 아름답지만 특히 봄, 가을은 압권이다. 자전거 라이더라면 꼭 경의중앙선을 따라 나란히 뻗어있는 자전거길을 경험해 보기 바란다. 간혹 한 몸매 하는 분들이 자전거를 들고 전동차에 탑승하는 장면을 보노라면 부럽기 그지없다.


교외로 다니는 전철은 나에게 아련한 옛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고등학교 과정 동안 기차 통학을 했다. 당시 디젤차가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크랭크 축이 거칠게 돌면서 칙칙폭폭 굉음을 내는 석탄차도 운행됐다. 어떤 때는 언덕길에서 제대로 속력을 내지 못했는데, 연착이 되어 겨우 목적지에 다다르면, 등교시간에 맞추지 못할까 봐 책가방을 팔 안에 끼고 죽어라 담박질을 치곤 했었다.


당시 여러 학교 지도교사들의 공통된 시선이었지만 ‘통학생들을 보는 눈은 곱지 않았다.’ 집과 학교의 사각지대에 있다 보니 조금 일찍 세상 맛을 알게 된 학생들의 일탈된 행동이 많았다. 나 역시 술과 담배를 빨리 배웠다. 그 길이 오히려 망나니들로부터의 왕따를 피하는 현명한 방책이기도 했다. 그래도 한심한 수준은 아니었나 보다. 불량딱지가 붙긴 했으나 공부만큼은 어느 정도 병행했으니 말이다. 이른 새벽부터 없는 반찬이지만 꼬박꼬박 도시락을 챙겨주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더 이상은 타락할 수 없었다.


해당 노선을 운행하는 전동차는 수시로 ‘비켜서기’를 반복한다. 안내방송의 목소리는 다소 사무적이다. 승차운임을 더 많이 지불한 승객들이 탑승한 차량을 위하여(물론 이 멘트를 한다는 건 아니다) 중간중간 앞길을 열어 준다는 것이다. 그러려니 하면서도 약간 짜증도 난다. 비즈니스가 있거든 당겨서 나오거나 다른 수단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대신 조금은 멍 때리고 싶을 때는 이만한 걸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촌역을 떠나 구리 역에서 내렸다. 마중 나온 친구와 맛 집을 찾았다. 추어탕 집에 갔는데 돌솥 밥과 탕이 일품이다. 술을 이기지 않으려 항상 자숙하지만 분위기가 제대로 여서 몇 잔을 들이켰다. "낮술에 취하면 아비도 못 알아본다"는 가르침에 따라 그만 술잔을 덮었다. 방금 몸속으로 들어간 이 친구(酒)는 혈관을 여행하면서 많은 추억을 새록새록 돋게 한다. 고통마저도 기쁨으로 승화시켜서 말이다.


요즘 가슴 뿌듯한 게 있는데, 어딜 가나 둘레 길과 아담한 공원 등이 우리 주위에서 손쉽게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높은 빌딩이나 번잡한 시가보다는 잘 정돈된 휴식공간을 볼 때 '우리나라가 이제는 정말 선진국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친구는 이 주변에 몇 호선이 들어오고 부동산이 어떻게 될 거라는 장황설을 쏟아내지만 내 귓등에 달라붙지 않는다. 깨끗한 환경과 나무숲이 지금의 나에겐 최고의 선물이다.


돌아올 때는 기다리지 않고 전철에 바로 올랐다. 굉장히 수지맞은 기분이다. 승객도 상당히 붐비고 아직까지도 열차 내에서 판매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있다. 옛적 고향길 기차를 타노라면 달걀과 사이다, 귤등을 싣고 다니면서 즐거움을 선사하던 <홍익회> 란 단체 소속의 판매원들이 생각난다. 지금은 불법이겠지만 강매행위 등의 불편함만 주지 않는다면 눈 감아 주고 싶다.


다시 이촌역으로 돌아와 4호선으로 환승했다. 목적지역에 내리니 역사 입구가 소란스럽다. 자세히 보니 나보다는 연장자로 보이는 남녀들이 한강 나들이라도 다녀오는 길인 듯하다. 어딜 가든 목소리 큰사람이 있다. 무어라고 소리하니 할매, 할배 들이 "좋지 좋아"하면서 이구동성으로 응답한다. 콜라텍? 아니면 그들만의 비밀 집결 장소를 결정했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성 간에 만나면 저토록 좋은 모양이다. 집까지는 도보로 30여분 거리인데 일부러 걸었다. 날도 푹했고 마음도 느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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