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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는 곳은 없지만 목적지가 있어 동작역으로 갔다. 출입구 옆에 설치된 무인 차표 판매기 앞에서 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쩔쩔매고 있다. 나를 보더니 도움을 요청한다. 자꾸 장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말이 어눌한 것으로 보아 조선족 아니면 고려인 동포로 보인다. 그는 오만 원 권을 넣은 후 차표를 사려고 시도 중이었다. 쉽게 해결을 할 줄 알았으나 나도 이용 경험이 없어 같이 헤맸다.
다행히 중년의 여성이 천사처럼 다가오더니 가볍게 처리해 준다. 나는 스스로 멋쩍어졌다. 디지털 소외 세대긴 하지만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어쨌든 좋은 ‘보시 기회’를 놓쳤다. 그래도 노력은 했으니 부끄럽지는 않다. ‘보시’란 불교 용어로 “조건 없이 기꺼이 주거나 베푸는 것”을 말한다. 오늘은 특별한 보시(布施)로 유명한 길상사에 가는 길이다. 이동 중에도 사찰의 모습이 어떨지 궁금했다.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니 절 입구에 내려준다. 들어가기 전에 전체 풍경을 둘러보았다. 일반 사찰 모습과는 조금 달랐지만 건축물들이 전통 기와로 덮여있어 큰 이질감은 느낄 수 없다. 요정(대원각)으로 운용되던 곳을 소유주(고 김 영한)가 법정 스님이 쓴 <무소유>란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조계사에 “보시 바라밀(시주)”을 행했다. 보시를 행한 이와 스님 두 분 모두 이곳에 잠들어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여기저기 부속건물이 있는데 스님들이 거주하거나 참선을 수행하는 시설이다. 템플스테이 건물도 보이고 강의가 진행 중이다. 세속에서, 업에 눌려 지친 이들이 잠시 멈춤 시간을 가진 후, 참다운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자 여기에 앉아 있을 것이다. ‘세속적인 타락의 끝판왕이랄 수 있는 요정(料亭)이란 시설물이 어떻게 참선(參禪)의 공간으로 바뀌게 될 수 있었는지 두 주인공의 인연이 궁금하다.’
우선 김 영한은 이력이 특이하다. 기생이란 신분에서 거액의 재력가가 되었고 자기 계발에도 힘쓴 기록이 있다. 백석 (본명 백 기행 : 북한 국적) 시인과의 사랑 얘기도 있으나 검증된 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훤칠한 신장에다 미남인 백석을 진심으로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개인의 사적인 과거를 세상이 왈가불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녀는 법적으로 자식이 있었음에도 어떻게 큰 재산을 시주할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스님의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고 하는데 너무나 큰 울림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나도 해당 책을 고등학생 시절에 건성으로 뒤적여 본 적이 있다. 세 형 중 누군가가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책을 구입했을 것이다. 그때는 무소유의 내용이 와닿지 않았고, 정작 가난한 집의 넷째로서 소유물이라곤 변변한 것 하나도 없는 ‘진정한 의미의 무소유자’였기에 해당 책이 주는 가르침이 그다지 와닿지 않은 듯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법정 스님의 책들을 읽어보니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된다.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 하라>라는 책은 머리맡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는다. 마음이 심란할 때 정독하면 많은 위안을 준다. 스님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 대학 재학 중 출가를 했다고 한다. 어떻게 아름다운 글을 많이 썼나 보았더니 신문사에도 기고를 할 정도로 젊어서부터 작가 소질이 다분했던 듯하다.
‘특히 자연을 사랑하는 성정이 강하다 보니 감동적인 글을 많이 남기게 된 게 아닌가 한다.’ 깊은 산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글로 표현을 한 경우가 많다. 나무와 꽃을 사랑하는 마음이 글마다 흘러넘친다. 간혹 미디어를 통하여 법문을 들어보는데 강연내용에 가식이 없고 명쾌하게 들린다. 미남형 얼굴에 당당함이 느껴진다. 삶의 현장에서 수시로 흔들리는 어린 영혼들을 위하여 선한 영향력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절터가 넓지 않아 금방 돌아보기를 마쳤다. ‘적막 속에서도 세속적인 풍경이 보인다.’ 연등, 기도회, 시주, 불교대학 개학 등 안내가 자세하다. 절을 나와 길 건너편에서 주위와 함께 전경을 다시 둘러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요정으로 운용되던 시절 바로 이곳에서 벌어졌을 일들 말이다. 고(故) 한복남 선생이 불렀던 빈대떡 신사처럼 폼 잡고 술 마신 후 돈이 없어 쩔쩔매는 한량이 정말 있었을까?
암울했던 시절의 절대 권력자들은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면서 한잔 술과 더불어 권불십년. 메멘토모리를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유착을 통해 기회를 얻고자 얼마나 문틀이 닳도록 드나들었을까? 수많은 사연을 뒤로하고 ‘대원각(大苑閣)이 길상사(吉祥寺)로 탈바꿈하다.’ 나는 이렇게 쓰고 싶다. 김 영한은, 과거의 추함을 선심(善心)으로 덮었다. 스님은, 속세의 혼탁함을 무상(無常)함으로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