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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싯대 들고 당장 집에서 나가!” 중, 고 시절 어머니에게 자주 듣던 꾸지람 소리다. 하라는 공부는 멀리하고 들판으로 쏘다니기 좋아했던 나는 지금 생각해 봐도 상당히 괴짜였다. 다른 형제들은 모범생으로서 학업에 충실했으나 나는 그렇지 못했다. 현재의 모습이 과거 행적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말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후회나 아쉬움은 추호도 없다.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해보았기 때문이다.
복잡한 곳보다는 혼자서 하는 일이 훨씬 구미에 맞았다. 성격은 급한데 이상하리만치 낚싯대를 드리우고 찌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부러울 것이 없었다. 간혹 한강변을 산책한다. 벌써 낚시꾼들이 제법 보인다. 경기도 양평과 남양주 덕소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그곳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서 낚시 행위를 허용하지 않는다. 한강 하류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동작대교 근처부터 가능한 걸로 보인다.
한강 상류 청정지역만 거닐다가 현재 사는 한강 하류 근방을 돌아보니 상대적으로 신선한 느낌이 덜하다. 물비린내가 나는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가에는 연배가 지긋한 할아버지들이 방울 낚싯대를 세워 놓고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월이 하 수상한 요즘인데 너나없이 자신들이 강태공 인양 때를 기다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누구라도 좋으니 요즘처럼 정신 사나운 현상만 거두어 주어도 크게 감사할 것 같다.
다 좋은데 이마를 찌푸리게 하는 모습도 보인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조사들 옆엔 막걸리 병, 담배꽁초, 비닐봉지, 잡다한 쓰레기들이 같이 한다. 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으니 강물에 쓸려 물결 따라 하염없이 수면을 멤 돈다. 이 분들 세대는 정말 고생 많았다. 전쟁을 겪고 온갖 풍상을 견뎌 냈고 산업화의 기반을 닦았다. 짠하고 아픈 세대인데 한 가지 흠이라면 공공질서 의식이 상대적으로 조금 덜 한 것 같아 아쉽다.
운 없이 잡힌 잉어는 어구에 담겨 아가미에 닿을락 말락 한 얕은 물에 의지한 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나 같으면 물속에 충분히 담가줄 것 같은데, 나름 이유가 있어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보통은 남자들이 배우자나 연인에게 이런 말을 농담으로 한다. “잡은 고기에게 떡밥 주는 거 봤냐고 말한다.” 여성들이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지가 궁금하다. 먹을 건 안 주더라도 숨이라도 제대로 쉬게 해 주면 어떨까 한다. 때가 되어 물고기가 인간에게 보시를 할 땐 하더라도 ‘잉어 복지’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갈 곳 없어 방황하는 노인도 있는데 이들은 낚싯줄을 저 멀리 내 던질 정도로 팔팔하니 복 받은 사람들이다. 병원 침대에 누워 하염없이 바깥 풍경만 바라보는 이들이 가장 해보고 싶은 활동 일지도 모르겠다. 민물낚시는 훨씬 예민해야 한다. 바닷고기처럼 먹이를 덥석 한입에 물지 않고 빨아들이는 민물고기 습성(물론 육식성인 가물치나 쏘가리 등은 예외다) 때문에 낚아채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섬세하지 못하고 인내심이 부족하면 성공 확률이 낮다.
촉으로 느끼는 감을 “맛”이라고 말한다. 골프공을 정확하게 타격하면 허리와 어깨, 팔꿈치에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짜릿한 맛을 경험한다. 슬럼프에 빠져 헤매다가도 단 한 번의 오묘한 감이 계기가 되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기도 한다. 낚시도 “손맛”하나 때문에 인고의 시간을 기다린다. 끌려오는 ‘어(魚) 선생’ 입장에서는 공포 자체겠으나 태공의 기쁨은 이루 형용할 수 없다. 상대의 불행이 나의 행복인 셈이다.
이제는 먹거리 부족을 걱정하는 시대가 아니다. 특별하게 사용 목적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방생하길 희망한다. 한강의 새로운 조폭집단을 형성한 가마우지(최근 유해동물 지정) 때문에 덩치 큰 어종도 살아남기 힘들다. 웬만한 잉어는 한 잎에 삼키는 괴력을 보았는지 모르겠다. 인간까지 가세해서 사지로 몰아세우면 그들이 너무 힘들 것 같다. ‘맛’을 즐겼으면 다시 되돌려 보낼 줄도 아는 아량을 베풀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