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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딛우 Apr 03. 2024

내가 나이기를 바라서

아무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길 바란다.


B와 나의 공통점 중 하나라면 아버지의 부재다.

있다 한들 혼란뿐인 그런 존재랄까. (이젠 그저 껄껄대며 웃기나 할 뿐, 오히려 좋다)

서로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거기다 조금 알코올이 들어갈 때면

B는 종종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대학교 때 한 번 정말 좋은 호텔 바에 가서 꽤나 비싼 술을 사줬던 기억,

서울의 어느 유명 중국집에서 유산슬을 사준 기억 같은 것을 이야기한다.

특히나 그 유산슬이 정말 맛있어서 아직도 중국요리 중엔 유산슬을 좋아한다고 했다.

나름 좋은 기억이었기에 그건 잊지 않게 되고 계속 되새기게 된다고 했다. 좋았어, 좋았던 거 같아. 라며.


나는 사실, 그런 기억마저도 없어서 그 이야기에 덧붙이진 못했다.


B는 예전 내 새아버지에 대해 물었다. 새아버지였던 사람과 나와의 인연이 겨우 10년 남짓 아니냐고도

물었지만, 흠, 아니라고 했다. 곱씹어 보니 그 사람을 처음 본 건 고등학교 시절, 어느 날 불쑥 집 앞에 나타난 것이 처음이었으니 10년도 훨씬 웃도는 시간이다.


엄마에게 누군가 있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던 우리 앞에 느닷없이 나타난 낯선 사람.

아무튼 그렇게 오래됐는데, 어떻게 너희 마음속에 인정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뭐, 그렇게 따지면 아쉬운 건 나 또한 그렇다.


맥주잔을 짠, 부딪혀오던 B는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싫어?'라며.

'아니다,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라고 했던가.


'싫어?'라는 물음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긴 시간 동안 겪어온 그 어른은 내게 의지할 만한 아버지로서의 면모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엄마만 괜찮다면, 유일하게 엄마를 여자로서 움직이게 했다면 그건 두 남녀의 문제이기에

그것까지는 내가 어쩔 수 없으니 가족은 될 수 없어도 그저 그렇게 지내는 것까지는

내가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두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싫고, 좋고의 문제는 될 수 없다고.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냐는 질문에는... 잠시 생각을 하다 그저,

나는 나중에 내 자식이 생긴다면 뭐든 물어봐 줄 거라고 했다.

왜 있지도 않은 먼 미래의 내 아이를 위한답시고 그런 대답을 했는지.


이런 사람과 만나고 있는데 한 번 보겠니, 좋은 분이야.

다 같이 여행 갈 건데, 괜찮니? 불편하면 안 가도 좋아.

그 사람이 너희와 친해지고 싶어 해, 어떤 것 같아.

같이 살아보기로 했는데, 넌 어떻게 생각해?


이런, 평범한. 그러나 헤아려지고 있구나 여겨질 수 있을 '질문'들을.

나는 여태 받아보지 못해서.


가족을 이룬다는 건 비단 '어른'들에게만 정해진 미션 같은 것이 아니었음에도

당시 '아이'였던 나와 내 동생은 동참할 자격마저 주어지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서야 알았다,

성인이 되었어도 마찬가지였다. 정해둔 대로 따라야만 했고 통보하는 대로 이해해야만 했고,

알아서 할 테니 신경 끄라는 식의 친절함을 가장한 두루뭉술함,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함 속에서

수년을 그랬던 것 같다. 그게 나를 불안하게 했다는 것 또한 아주 늦게야 알았고.


이런 상황 속에서 자라왔다고 해서 지금의 내가 불행한 것은 아니다.

다만, 종종 혼란스러운 지점은. 불현듯 거슬리는 가시처럼 일상에서 불쑥 튀어 오르고 건드려진다.

아직도 부득부득, 애써 참아야만 하는 것이 남아있어서.


그걸 들키지 않으려, 난 내 일상이 더 이상 이런 일들에 무너지지 않도록 최근 몇 년간엔

이를 꽉 물고 웃으며 필사적이었다.


지난 연휴, 이젠 남이고 싶은 그 어른이 명절을 핑계로 연락을 해왔다.

물론 그 또한 그 사람에겐 용기였을 테지만.

이럴 때면 번번이 참으로 내 지난 노력을 비웃음 당하는 기분이다.

늘 같은 방식, 상처 주고 모른 척 내던져두었다가 불쑥 파고든다, 이쯤 되면 받아주겠지,

적당히 이해할 시간이 되었겠지? 하며.


그래서 한순간 가차 없이 단호히, 옅게 남은 끈마저 나는 또 잘라버린다.

그러고 나면, 스스로가 매정하다 느끼면서 잠시 자책하지만 그럼에도 또 한동안, 편안해진다.

잘라내고 잘라내서 편안해진 어느 날 덤덤하게 엄마에게 말했다.

다른 것 없이, 내 일상을 그저 지킬 수 있게만 해 달라고,

아! 필요 없어! 가 아니라 그냥, 없어도 된다고, 남이고 싶다고.


단란한 부모와 자식들 같은 허울뿐인 가족이 필요한 거면 정말 최선을 다했던 때도 있지만 이제와서는 여태의 피로감이 지나쳐 난 동참할 수 없다고. 애초에 가진 적이 없기에 이제 와 원할 리 없고, 정말이지 괜찮다고.

가족이란 존재는 애틋하고 사랑스럽고 특별한 존재가 맞지만.

우리 모두 노력했지만 끝내, 잘 안되지 않았느냐고.


세상엔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있으니, 억지로 채워 넣을 필요 없다.

나는 누구나에게 응당 주어졌을, 그러니 내게도 당연히

있을 거라는 교묘히 희망적인 허울에 기대를 걸만큼 이젠 무르지 않다.


긴 시간 희망고문을 하고 괴로운 감정만 서로 가져놓고도,

또다시 어떤 존재가 되어주겠다고 그러니 너도 내게 무언가 되어달라고,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번번이 침범하려는 사람에게서 나를 지키는 건 나뿐이다.


그러니, 더 이상 내게 아무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길 바란다.


지금의 나는 이제 너무 커버렸으니,

앞으로의 나는 오롯이 내가 나이기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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