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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렛 Oct 24. 2020

결혼 후에도 남편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남친이 남편이 된 후 달라진 현실

구남친 (현남편)에 대한
이런 제목의 글을 쓰게될 줄...
나라고 알았을까??


어린 시절 내 일기장은 연년생 언니의 욕으로 가득했다. 선생님과 친구들도 등장했지만 내 일기 지분의 8할은 친언니였다.

 20대가 되면서 내 일기장의 지분은 모두 남자들이 차지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인생의 점과 같은 그 남자들로 인해 울고 웃고 맘 조리고 쾌재를 부른 불같은 사연들이 그득했다.

 30대에도 여전히 그런 일기가 이어졌으나, 만남부터 결혼까지 줄곧 평온한 연애를 이어간 남편을 만난 이후로 내 일기는 멈췄다. 아마도 그런 만남이었기에 결혼까지 골인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일기(데스노트)의
새 주인 = 남편


 신혼 때까진 일기를 쓴 기억이 없다. 보통 혼자 보는 일기에 좋은 일은 잘 안 쓰지 않나. 그리고 나의 경우 답답한 마음이 생겼을 때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고민이 있을 때 일기를 쓰며 마음을 가다듬곤 했기에, 신혼 때는 일기를 쓸 일이 없었다. ‘결혼하니 남편이 더 좋다... ‘ 뭐 이런 류의 오그라드는 일기를 한번 정도 써본 적은 있는 것 같다.


 정확히 언젠지 기억은 나지 않으나, 소위 말하는 콩깍지가 벗겨진 때였을까? 하나씩 남편의 몰랐던 단점이 드러나고 시댁과의 불편한 관계 속에서 남편에 대한 실망감을 느끼면서 나는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 데스노트의 주인공은 물론 남편이었다.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없는
서로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고 있는
그러나
서로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아이러니


 언젠가 쓴 일기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싸우고 싸우다 지쳐 시니컬한 마음으로 써 내려간 기억. 물론 그때 왜 때문에 어떤 식으로 싸웠는진 기억이 안 난다.  나와 참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연애 시절의 남친이 남편이 된 후 나와 참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어느 날이었겠지. 어떻게든 서로 맞춰보겠다고 혹은 상대를 바꿔보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다 결국 서로에게 생채기를 낸 후 쓰린 마음으로 적어 내려 간 일기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헤어질 수는 없는 서로가 서로에게 아직은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 때문에 괜히 더 씁쓸해졌던 기억. 결혼하면 누구나 어쩔 수 없이 거쳐가야 하는 하나의 성장통 같은 과정인 걸까? 그러기엔 너무 아프다.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속 한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아이가 어릴 땐 어쩔 수 없다고 선배 유부녀들이 하나같이 말해주었다. 결혼 6년 차, 육아 4년 차인 난 아직 한참 싸울 시기라고... 결혼 43년 차, 대선배인 엄마는 자주 싸우는 나를 보며 ‘아직 정이 덜 들어서 그런 거지’라고 하셨다. 맞다 싶다가도, 뭐야 결혼은 정말 사랑 아닌 정으로 사는 거였나 싶어 괜히 억울해졌다.

“애틋함이 이제 애한테만 들지. 남편 보면 정말 화딱지만 나.. 근데 그것도 지나니 이제 딱해 보여. 그렇게 불쌍할 수가 없다?”

 한 친구는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남편에 대한 안쓰러움 비슷한 마음이 생길 거라며 위로(?)를 하기도 했다. 대체 얼마나 더 싸우면 동정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그것은 사랑인가? 이제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남녀간 사랑의 감정은 아닌 것 같다.


결혼 후 남편과의 싸움에 지친 어느 날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누굴 만나서 결혼하든 이렇게 싸워서 맞춰가야 하는 거였다면, 왜 그리 연애를 열심히 했을까? 뭣하러 내게 맞는 남자를 찾고자 헤매었던 걸까? 정말 옛 어른들 말처럼 ‘조건’ 맞는 남자와 결혼하는 게 차라리 심플하고 행복한 결혼이 아니었나 싶었다.

성격을 맞추고 인내하고 인정하고 이해해야 하는 게 결국 결혼이라면 누굴 만나도 나만 다스리면 괜찮은 게 아니었을까? 반드시 동거를 한 뒤에 결혼하는 서양의 방식이 정말 현명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친을 잃었고
그는 여친을 잃었다


 이제 내 인생에 더 이상 남자 친구는 없다. 나는 그토록 스윗하던 남친을 잃었고 내 남편 역시 애가 닳던 여친을 잃었다. 너무너무 씁쓸하지만 내 탓도 그렇다고 네 탓도 아니다. 그저 결혼과 연애라는 속성이 다를 뿐. 10년 연애 끝에 결혼한 친언니조차 결혼 후 남편이 새롭다고 했으니 말 다했지 뭐.

 이런 이유 때문에 연애엔 필요 없는 서류나 공개적 예식 등이 결혼에 동반하는 것인가 보다. 이런 제도를 만들어낸 사람 또한 나와 같은 흔들림을 겪었던게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는 기분도 들었다.

 결혼은 정말 누구에게나 신기하고 오묘하고 복잡하고 참 쉽지 않은 것이구나. 에잇, 그렇다면 그냥 고민할 것 없이 잠이나 자자. 내일은 오늘보다 남편에게 좀 더 웃어줘 보리라 다짐하며... 그래도 남편 옆에 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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