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이 없는 사람
딱 1년 정도 다닌 회사가 있다. 사실 입사할 때부터 큰 기대나 애정이 없는 곳이었다. 이전 회사를 5년 넘게 다닌 후 질릴 대로 질려 도망치듯 이직을 한 곳이었다. 쉬어가는 느낌으로 큰 욕심 없이 다닐 생각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의 주요 신생 사업부에서 핵심 업무를 맡게 되었다. 위기에 처한 회사에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 변화를 주도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기존 직원들에게 가뜩이나 탐탁지 않은 그 업무를 갑자기 굴러들어 온 뉴페이스가 주도하고 있으니 얼마나 눈에 가시였을까? 그들은 회사에 가진 불만까지 더해 나에게 화살을 쏘아댔고,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아니 일생을 살면서 가장 크고 강력한 공격들을 받아야 했다.
본래 싸움을 싫어하고 주목받는 것도 싫어하는 성격인 내가 그런 일을 겪게 됐을 때, 마음이 어땠을까? 그야말로 정신병에 걸릴 것만 같았다. 매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들들 볶이는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어차피 오래 다닐 회사가 아니니 열 받지 말자고 속으로 주문을 걸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잘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주문이 먹혔다. 스트레스도 처음보다 덜 받게 되었고 사람들의 공격에 무덤덤해지는 경지에 이르러갔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공격이 정말 괜찮은 것이 아닌, 곧 퇴사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내적 의지로 만들어낸 무심함일 뿐이었다.
하루하루 버티며 이직을 준비하던 어느 날, 신생 사업부의 리더로 나보다 더한 공격을 받고 계시던 부서장님이 나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셨다.
“00 씨는 어쩜 그렇게 차분하게 대응을 잘해? 난 욱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비결이 대체 뭐야? 세상 쿨한 모습이 나보다 성숙한 것 같아.”
나보다 한참 나이도 많고 지위도 높으신 분이 내게 그런 조언을 구한 것도 놀라웠지만, 이직 아니면 퇴사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속을 모르신 채 쿨하다고 칭찬을 해주시니 괜히 뜨끔했다.
세상 쿨한 사람 = 관심이 없는 사람
쿨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꾸물거리거나 답답하지 않고, 거슬리는 것 없이 시원시원하다.’라고 적혀있는데, 자신감이 있어 보이는 여유로운 사람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 거슬리는 것 없는 여유로움은 본래 성격일 수도 있고, 어떤 지식이나 업무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때 말투나 행동에서 자연스레 배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 내가 알고 모르는 것과 상관없이, 어떤 사안이나 대상에게 관심이 없을 때 오히려 쿨하고 여유로워지는 편이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다거나, 일을 잘하고 싶은 욕심이 커질 때면 오히려 긴장하고 여유로움이 사라져 알던 것도 잘 생각이 안 나고 말도 어리바리하게 된다.
생각해보니 그 부서장님과 면접을 볼 때 유독 여유로움이 넘쳤었다. 그 업무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면접에 통과하던 말던 상관이 없었기에 당당하고 거침없이 내 생각을 얘기할 수 있었다. 이에 좋은 점수를 받았고, 입사하자마자 주요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돌아보면 소개팅을 할 때도 상대에게 관심이 없을 때 오히려 여유롭고 시원시원하게 대화를 이끌었고, 애프터가 잘 왔던 것 같다. 반면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왔을 땐 긴장해서 안 해도 될 소리를 하거나 쭈뼛거리다 일을 그르치기도 했다. ‘쿨하지 못해 미안해’라는 노래처럼 미련이 남은 전 남자 친구는 더럽게 달라붙으며 'no cool'을 외치지만, 그에게 관심 없는 전 여자 친구는 'so cool'의 자세로 일관하지 않는가!
혹시 주변에 지나치게 쿨하고 여유로운 사람이 있다면 딴생각을 하고 있거나 아예 생각조차 없는 '무신경'의 상태일 확률이 높다. 그 쿨한 태도에 속지 말고 숨겨진 마음을 잘 캐치해봤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과거의 회사와 그랬듯, 서로의 온도를 맞추지 못하고 1년 만에 헤어지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