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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한손 Mar 26. 2021

먹는 것에 너무 진심인 사람

=취향을 강요하는 사람

 먹는 것을 좋아하는 게 때로 죄가 될 수 있다는 걸 느낀 건, 모든 음식에 진심인 그녀를 만나게 된 이후부터다. 그녀는 회사 같은 팀의 선배였다. 매일은 아니었지만 자주 점심을 같이 먹었다. 처음 그녀와 한 팀이 되었을 땐 참 즐거웠다. 맛있는 음식과 식당에 대한 정보를 줄줄 꾀고 있는 그녀와 함께하는 점심은 늘 만족스러웠다.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신비로운 맛의 세계로 매일 여행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속이 좋지 않았던 어느 점심, ‘맛’ 전문가인 그녀의 장점 뒤에 가려진 무서운 단점의 서막이 피어오른 것이다. 당시 그녀와 나, 그리고 우리 팀 남자 직원 두 명과 점심을 함께했다. 그날도 역시나 그녀가 안내하는 놀라운 맛집으로 우리는 발길을 옮겼다. 메뉴는 곰탕이었다. 속이 좋지 않았지만 일품인 국물을 계속 떠먹다 보니 이내 바닥이 보였다. 거북해진 배를 안고 카페로 자리를 옮겼고, 소화시킬 겸 아메리카노를 시키려던 찰나

“00야 여기 와플 진짜 맛있어. 나랑 와플세트 같이 먹자.”

‘what?’

내 귀를 의심했다. 그녀의 그릇도 분명 바닥이 보였는데 그렇게 든든한 한 끼를 먹고 또 와플을 먹겠다고? 선배인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기 애매해 그러자고는 했지만, 꾸덕함이 느껴지는 와플을 보니 속이 더욱 거북한 느낌이었다. 행복하게 포크질을 하는 그녀와 달리 먹는 둥 마는 둥 겉돌기만 하는 내 포크질에 그녀는 좀 실망한 눈치였다.

“어머, 나 혼자 다 먹는 것 같다 얘. 팍팍 좀 먹어”

‘what?’

그 점심 이후 난 그녀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매일매일 여행하며 살 순 없지 않은가? 먹는 것도 매일 호화롭게 먹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녀와 함께 점심을 먹으면 너무 많은 비용을 쓰게 되는 것도 고민이었다. 간혹 여유롭게 점심을 먹을 수 있는 날엔 코스 요리를 먹으러 간 적도 있다. 하우스 와인까지 먹느라 점심 한 끼에 무려 6만 원을 쓴 날도 있었다. 점점 그녀와의 점심을 피하게 됐고, 우리는 업무적인 대화 외에는 나누지 않는 사이로 점차 변해갔다. 하지만 이 모든 원인이 그녀의 식탐 때문이라는 사실은 끝내 말하지 못했다. 그녀 역시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몇 년 후, 그녀와 비슷한 유형의 다른 회사 동료를 만나게 되었다. 편의상 이전 선배를 A, 새로운 동료를 B라고 칭하겠다. B는 몸매 관리를 위해 저녁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먹는 점심 메뉴에 굉장히 집착했다. 점심만큼은 반드시 자기가 먹고 싶은 걸 먹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했다. 

그런 그녀와의 점심이 처음엔 괜찮았다. 점심 메뉴 고르는걸 귀찮아하는 나로선 콕 집어 어디에 가자고 말해주는 그녀가 무척 편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하루 이틀이었다. 어떤 날엔 출근길에 카톡으로 식당 블로그 링크를 보내며 점심 메뉴를 권유 아니 통보(?)하는 그녀가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맛있을 것 같다며 기쁨의 이모티콘을 마구 쏘아대는, 음식 앞에서 진정 신이 난 그녀의 장단을 맞춰주는 일은 날이 갈수록 힘이 들었다. 결국 그녀와도 점점 함께 점심을 먹지 않는 업무적 대화만을 나누는 사이로 변해갔다.



먹는 것에 진심인 사람
= 취향을 강요하는 사람?


나는 정말, 그녀들의 식탐이 싫었던 걸까? 사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잘 먹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음식 취향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강하다는 게 포인트였던 것 같다. 혼자 맛있게 먹으면 그만인데, 자꾸 상대의 반응까지 강요하는 부분이 문제였다.


그렇게 싫었으면 먹기 싫다고 말을 하면 되지 않았느냐고, 내가 먹고 싶은 걸 어필했으면 되지 않았느냐고 묻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 같다. 맞다. 우유부단한 내 성격이 1차적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어필한 듯 그녀들이 좋아했을까? 한두 번은 그랬겠지만, 늘 음식에 진심으로 꽂혀있는 그녀들은 이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나를 이끌었을 것이다.(라고 혼자 아직도 생각한다.)


사실 모든 문제는 음식이라는 녀석(?)의 특성이, 본래 누군가와 같이 먹으며 그 맛있는 행복감을 공유할 때 기쁨이 더 커지기 때문이라는 데서 비롯된 것 같다. 혼자 먹으면 괜히 맛없는 느낌이 들고, 맛있는 음식은 대부분 1인분 이상인 것도 문제를 증폭시킨다. 수많은 취향 중에서도 유독 음식 취향은 함께 지내는 서로서로에게 강요하는 부분이 많지 않은가? 게다가 가족보다 더 자주 보는, 매일 한 끼를 같이 먹어야 하는 숙명(?)을 가진 회사 동료들 사이에서 은근히 문제를 야기한다. 유치하지만 꽤 중요한 트러블의 요인이 되기에 나와 코드가 맞는 점심 메이트를 만나는 일 또한 회사 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꽤 중요한 요소다.

점심시간에 자의에 의해 혼자 밥을 먹는다거나, 혼자 운동이나 자기 계발을 하며 보내는 쿨한 도시 여자는 아니기에, 현 직장에 나와 함께 편하게 밥을 먹으며 직장 스트레스를 공유할 수 있는 동료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를 보내본다. 더불어 과거 A, B 동료들이 부디 그들의 식탐을 향한 진심이 먹히는 동료를 만나 있길! 괜히 찔리는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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