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야가 좁은 사람
이전 회사를 다닐 때 같은 팀 막내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선배님은 팀장님 다음으로 팀에서 나이가 제일 많으신데 꼰대가 아니셔서 좋아요.”
“그래?ㅋㅋㅋ”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며 생각했었다.
‘칭찬 같긴 한대..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네?’
꼰대가 좋은 의미는 아니니 칭찬은 맞을 테지만, 자칫하면 꼰대로 외면받을 만큼 나이가 많다는 사실에 씁쓸해졌다. 그래도 가끔 꼰대에 대한 콘텐츠를 보며 나도 해당되는 것은 아닐까 내심 걱정했었는데, 아니니 다행이라 여기자며 스스로 위안했던 기억이 난다.
꼰대가 뭔데?
그날 밤 꼰대의 사전적 의미를 검색해봤다.
[꼰대 :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다른 사람은 늘 잘못됐다고 여김).]
당시 그 막내를 포함한 모든 팀원들이 ‘꼰대’라 말했던, 40대 여자 팀장님이 떠올랐다. 그분을 처음 꼰대라고 느꼈던 계기는 ‘헤어롤’이었다. 팀에는 20대 여성 직원들이 많았는데 그들 중 회사에서 앞머리에 ‘헤어롤’을 말고 있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나도 난생처음 지하철에서 머리에 ‘헤어롤’을 말고 있는 10대 여학생을 봤을 때 의아하긴 했었다. ‘실수로 그냥 나왔나?’싶은 생각을 했지만, 이후 그런 여자들을 자주 보게 되며 어느새 익숙해졌다. 이에 회사에서 그런 직원들을 봐도 별 느낌이 없었는데 팀장님과 단둘이 밥을 먹게 된 어느 점심 그분이 ‘헤어롤’ 얘기를 꺼내셨다.
“우리 팀 00 씨랑 00 씨, 회사에서 헤어롤 말고 있는 거 너무 이상하지 않아?”
상사인 그녀의 말에 반기를 들 수 없어 긍정의 뉘앙스로 대답을 했지만 속으로는 그게 무슨 상관이지 싶었다.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니고, 외부 미팅이 아닌 자리에서 일할 때 잠깐씩 하는 것이 무슨 잘못일까 싶었는데 팀장님은 눈에 거슬린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날 오후 ‘헤어롤’의 주인공들을 불러 주의(?)를 주셨다. 가려운 곳을 긁은 듯 시원해 보이신 팀장님은 그날부터 좀 더 본격적으로 잔소리를 시작하셨다. 팀장님과 점심을 먹기 불편해진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지만, 내가 퇴사할 때까지 끝내 그분은 모르셨을 거다. 오전에 한껏 잔소리를 하셔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점심도 같이 드시는 분이셨으니까. 그 잔소리와 점심이 너무 괴로워 내가 퇴사를 생각하게 된 사실은 지금까지 상상도 못하고 계실 것이다.
꼰대는 나이와 상관없다
꼰대라는 말은 본래 나이 많은 사람이나 선생님을 비꼬는 학생들의 은어였다고 한다. 하지만 꼰대질은 나이와 상관없는 것 같다. 나보다 어리지만 꼰대 같은 사람을 간혹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났던 가장 강력한 ‘어린 꼰대’는 20대 후반의 직장 후배였다. 나이에 비해 경력이 많은 친구로,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 일을 시작해 3-4번의 이직을 거쳐 대기업인 그 회사에 온 친구였다. 선배였던 나에게 지나칠 만큼 예의를 차려 가끔 부담이 되곤 했었는데, 외주 업체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무례할 수가 없었다. 내용이나 말투만 들어서는 마치 대선배가 어린 후배를 혼내는 것 같았다. 이유를 물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늘 한결같이 ‘외주 업체 사람들이 너무 모르고, 자기는 다 알고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본인이 작은 외주 업체를 다닐 땐 이렇게 배웠다’며 똑같이 가르쳐줘야 한다고 말했다.
소위 나이 많은 어른들의 ‘라테는 말이야’ 발언을 하며 상대를 가르치려 드는 꽃다운 20대의 그녀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말리고 싶었지만, 내 조언을 받아들일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확신이 있는 그녀가 타인의 말을 귀담아들을까? 그간 그녀의 선배나 상사들 역시 나와 같은 마음으로 그녀의 행동을 눈감아버렸을 것이다. 이에 그녀는 자신의 문제는 모른 채 점점 더 꼰대스러운 행동을 반복하게 되었을 것이다.
꼰대인 사람 = 시야가 좁은 사람
앞서 얘기한 40대 여자 팀장님과 20대 후배가 가장 비슷한 점은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라고 생각한다는 점이었는데, 모두 그들의 시야가 좁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본다. 자기본위적으로 사고하는 이기심과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건, 그들은 진심으로 타인을 위해 조언한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콕 집어 알려줘야 상대가 '성장할 수 있다'고 착각하느라, 그런 조언 같지 않은 조언을 들었을 때 상대가 느낄 감정까지는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 또한 나이가 들수록 내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 위주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되는 경향이 늘어가는 걸 보면서 스스로 조심하게 된다. (어쩌면 이 글 또한 우물 안 꼰대 개구리 같은 이야기들일지 모른다.) 그래서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본인의 단점을 쿨하게 인정할줄 아는, 열린 마인드를 갖춘 선배들을 만나게 되면 경외심이 들곤 한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면 도리어 높아지는 도의 경지를 어떻게 깨닫게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제발 내가 아는 것, 보고 있는 것,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꼰대'라는 위험한 길로 접어드는 지름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