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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렛 Sep 24. 2020

매일 퇴사를 꿈꾸는 사람

=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쪼다

[친구] 하, 난 진짜 이력서 쓴데 한 군데서도 연락 안 온다. 썩을. 진짜 여기서 썩어야 하나...

[나] 썩어가는 느낌 너무 싫다 ㅠㅠ

[친구] 너무 나가고 싶어. 근데 야근까지 하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어.

[나] 참 씁쓸하다 ㅠㅠ

[친구] 퇴사한다고 팀원들한테 말했는데 나가지도 못하고 쪼다 됐어ㅠㅠ


괜찮아, 나도 쪼다야


 열심히 취업을 위해 영혼을 갈아 넣었던, 취준생 시절이 떠오른다. 그땐 정말 입사만 하면 인생이 달라지는 줄 알았다. 면접장에서 만난 스펙 좋은 그 친구와 내가 동일한 조건으로 같은 회사에 합격한 사실만으로 얼마나 짜릿했던가! 입사 후 팀장님이 시킨 일을 잘하기 위해, 그분의 침 넘기는 소리마저 새겨듣고자 귀를 쫑긋 세웠던 기억이 난다. 그땐 내가 이렇게 빨리 퇴사를 꿈꾸게 될 줄 몰랐다.

 어렵게 어렵게, 그토록 원하던 첫 퇴사와 이직을 하게 되었을 때 새로운 행복이 잠시 찾아왔다. 조건이나 밸류가 좀 더 나은 회사였기에, 이직한 처음 몇 달은 마치 내 인생이 레벨 업된냥 좋았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매일 점심시간과 퇴근을 기다리고 월요병으로 시작해 불금으로 마무리되는 톱니바퀴 일상은 다시 반복되었다.


퇴사 대신 욜로 (feat. 탕진 잼)


 '다시 그만둘까? 아직은 아니다. 그럼 어쩌지? 스트레스를 풀 곳을 찾자!'

그렇게 나는 탕진 잼에 빠져들었다. 퇴근 후 매일매일 약속을 잡았다. 배우고 싶던 취미들을 하나씩 도장 깨듯 배웠다. 틈만 나면 국내로 해외로 여행도 닥치는 대로 갔다. 먹는 데도 입는 데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스트레스는 정말 확실히 줄어들었다. 퇴근하면 펼쳐질 나만의 즐거운 라이프가  있기에 회사 스트레스 정도야...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월급은 그야말로 내 통장을 스쳐갔고, 날이 갈수록 텅텅 비어 가는 텅장으로 인해 나는 퇴사에서 더욱더 멀어져 갔다. 심지어 보너스나 연봉 인상을 좀 더 받기 위해선 팀장의 눈치를 더 보거나 늦게 퇴근하거나 좀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했다. 아우 하기 싫어라.. 이럴 바엔 차라리 더 좋은 회사로 가자!!! 그렇게 늘 이직을 꿈꾸게 되었다.


퇴사와 이직, 너는 내 운명


  늘 이직에 열린 마음이었기에 면접을 정말 많이 봤다. 별생각 없이 본 면접도 있었고 정말 가고 싶어 열의를 불태운 회사도 있었다. 혹은 너무너무 지금 회사(=상사)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필사적으로 이직을 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늘 내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은 뜻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아졌다. 나를 괴롭히던 상사가 먼저 퇴사를 하거나, 부서가 바뀌거나... 생각지 못한 직장 내 변수가 문제적 상황을 정리해줬고 직장 생활은 이어졌다. 생각해보면 3번의 이직도 뜻하지 않게 진행되었던 것 같다.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이에 결국은 이직도 퇴사도 다 때가 있고 타이밍의 문제인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매일 퇴사를 꿈꾸는 사람 = 평범한 사람


 대학교 그리고 회사... 객관적인 순위가 존재하는 대한민국의 집단에 소속되어 생활한 지 20년이 다 되어간다. 대학교에 다닐 땐 내가 그 정도의 레벨이 되는 사람 같았고, 회사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늘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3번의 퇴사를 하며 깨달은 건 떠난 나도 나를 떠나보낸 회사도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을 보낸다는 사실이었다. 퇴직서를 날릴 때의 짜릿함은 잠깐일 뿐, 늘 부족한 돈과 

부족한 시간 그리고 만족스럽지 않은 일상이 지겹게 반복되었다. 


 벗어날 순 없을까? 일하지 않고 살 순 없을까? 그럴 순 없을 것 같았다. 나라는 사람에서 회사를 빼면 남는 게 없는 느낌이었다. 시간만 때워도 돈이 생기는 안정적인 월급에 중독이 된 나는 이제 시간을 때우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회사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용기도 없고, 벗어날 준비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는 뭘 잘하는 사람이었지? 나는 뭘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나는 뭘 싫어하는 사람이었지? 생각할 시간조차 없이 흘러가는 나날들이 너무 아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5년 후, 10년 후 회사에서 만난 상사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강하게 들었다. 회사는 위로 올라갈수록 자리는 줄어든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업무는 과도해진다. 그것을 견디고 버티고 남아있는 저 승자인 상사들의 삶이 부러운가? 부럽지 않았다. 그 상사보다 잘난 건 없으면서, 상사처럼 잘할 자신도 없으면서 그 상사처럼 살고 싶지 않아 졌다. 


 퇴직을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에는 확고해졌지만, 남들 가는 길을 따라, 남들 하는 것을 착실히 해가며 살아온 지극히 평범한 나이기에 남들이 흔히 다니는 회사를 떠나 살아갈 생각을 하니, 막막하고 길을 잃은 느낌이다. 60대도 50대도 아닌 30대에 퇴직 준비라니? 대학이나 취업보다 훨씬 요원하고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돌아보면 취업과 이직을 준비할 때도 나름 참 힘들었고, 결국 그때 꿈꾸고 그렸던 방향과 얼추 비슷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지금의 내가 그 증거이지 않은가? 계속 퇴직을 꿈꾸고 기회를 엿보면 언젠가는 진짜 쪼다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진리에 유일한 희망을 걸며 오늘도 나는 회사로 향한다. 지하철에 치이는 수많은 나와 같은 평범한 쪼다(?)분들의 존재에 위로를 받으며... 지각을 면하기 위해 바삐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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