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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렛 Apr 07. 2021

연애 못하는 사람

= 자존심이 강한 사람

 내 인생 첫 연애는 25살이었다. 30대 후반인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린 나이였지만 그땐 굉장히 늦다고 여겨져 마음이 조급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연애를 시작하는 친구들이 한 반에 3분의 1은 있었고, 대학교는 그야말로 썸과 연애의 천국이었다. 반면 나는 여대도 아닌 그 천국 같은 캠퍼스에서 연애는커녕 썸 한번 제대로 타보지 못한 채 졸업을 했다. 왜 그랬을까?

 

 아쉽게도 연애 세포가 마이너스가 된, 6년 차 주부가 된 지금에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당시 나는 내가 모태솔로라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다이어트도 열심히 하고 연애에 관한 칼럼, 책 등도 정말 열심히 봤다. 그 결과 20대 중반에 첫 연애를 할 수 있었고 30대 초반 결혼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소위 글로 배운 연애 스킬 덕도, 외모를 갈고닦은 덕도 아니라는 걸, 결혼 후에도 몇 년이 지난 뒤에야 깨달았다. 남녀 관계에 있어 헤매고 부딪혔던 내 모든 문제는 바로 ‘자존심’에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은 것이다.


흑역사의 나날들


 나는 자존심이 강한 반면 자존감은 낮은 여대생이었다. 대학에 가면 예뻐지고 살도 빠진다는 헛소리를 진리로 믿고 폭식하던 고3 시절의 외모에서 촌스러운 화장만 더해진 채 대학에 입학했다. 외모적으로 인생 최대의 암흑기였다. 반면 두 명의 친언니는 청순 가련 형 외모로 늘 인기가 많았고, 연애도 쉬지 않았다. 언니들에 비해 통통하고 큰 얼굴에 이목구비가 살 속에 파묻혀 있던 나는 스스로 못생기고 매력 없다고 생각했다. 반면 이런 콤플렉스를 누가 알까 두려워 연애에 관심 없는 척, 남자에 관심 없는 척하느라 도리어 남자들 앞에서 더 날카롭고 까칠하게 자존심을 내세웠다. 예쁘지 않은데 표정은 암울하고 까칠한 여자를 누가 거들떠보겠는가.

그래도 까칠한 내 겉모습 속에 감춰진 매력을 알아보고 다가왔던 남자들이 있긴 했었다. (심지어 그땐 그 남자가 내게 관심을 표현한 것조차 몰랐다.) 하지만 나는 바보같이 내 자존심을 챙기느라 바빠 그들을 멀리멀리 내쫓아버리고 말았다.


 대학 졸업 후 그토록 고대하던 첫 연애를 시작하며 모쏠에서 탈출하게 되었을 때, 인생을 다 얻은 듯 행복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란 게 이런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고, 처참하게 끝이났다. 약 9개월 정도 만난 첫 남자 친구가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하고 잠수를 타버린 것. 그땐 그 남자를 무척 원망하고 그리워하는 시간을 반복했다. 내가 차인 이유조차 몰라 답답하고 슬프기만 했었는데, 이제와 생각하면 9개월이면 그도 오래 참았다는 생각이 든다. 연애를 시작하긴 했으나 여전히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만 하늘을 치솟았던 당시의 나는 내 마음은 제대로 보여주지 않으면서 상대의 마음과 사랑 표현에만 집착했던 것 같다. 그의 사랑이 식을까 늘 불안해했고, 그의 전 여자 친구나 주변 여자들에 과도하게 신경 쓰며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가 비겁하게 사라지는 대신 내 문제를 알려줬다면 좀 더 빨리 건강한 연애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원인을 몰랐던 나는 이후의 연애에서도 역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자존심이 늘 자존감을 앞섰다. 그래선지 1년을 넘긴 연애는 지금의 남편이 유일하다. 자존심을 세울 필요가 없을 만큼 나를 품어주었던 충만한 자존감을 가진 남편과 결혼이라는 낱낱이 현실적인 관계를 맺으며 5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관계 맺음에 있어 나의 문제에 대해서도 조금 알 것 같은 느낌이다.


남연애에 빙의하다


 결혼 후 <하트 시그널>이란 리얼 연애 프로그램을 보며 나의 문제에 대해 더 뚜렷이 돌아보게 되었다. 특히 2편에 출연한 오영주라는 출연자에 과하게 빙의하여 지난 나를 반성하고 그녀를 절절하게 응원했다. 그녀는 김현우라는 남자 출연자에게 호감이 있었는데 그를 동시에 좋아하는 경쟁자 임현주와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상대의 마음과 상관없이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임현주와 달리 오영주는 김현우의 마음을 확인하는데 더 집중하는 것 같았다. 물론 상처 받지 않으려는 자연스러운 방어기제였겠지만.. 본인의 마음은 확실히 보여주지 않으면서 상대의 마음만 추궁하고 의심하고 속상해하는 모습이 마치 내 지난 모습 같아 안타까웠다. 결국 그녀가 불안해했던 것처럼 김현우는 오영주가 아닌 임현주를 택했고, 새드 앤딩이 되고 말았다. 오영주가 김현우에게 자존심을 내려놓고 좀 더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면 둘은 잠시나마 연애를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최근 2년 만에 재회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다시 들었다. (물론 남녀 관계는 본인들 외엔 아무도 모르고, 결국 이 모든 게 짜인 각본이니 몰입한 나만 우스울 수도 있지만 말이다.)



연애 못하는 사람
= 자존심이 센 사람?


 사실 연애를 잘하고 못한다는 말 자체가 너무 애매하긴 하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에 정의 내리기는 너무 어렵다. 연애의 결론이 결혼도 아닐뿐더러 연애를 많이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오래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 않은가. 자존감이 높아도 연애를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자존심을 부리지 않아서 오히려 연애가 깨지는 일도 발생하니까.

 

 남녀 관계란 개개인마다 상황이 너무 달라 섣불리 말하기 어렵지만, 과거의 나처럼 모태솔로의 기간이 남들보다 길거나 이성에게 마음을 열기 힘들다거나, 연애가 쉽게 끝나는 등의 고민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본인의 내면부터 들여다보라 말하고 싶다. 내 자존심과 자존감의 균형이 잘 맞고 있는지? 또한 연애뿐 아니라 결혼 그리고 나아가 모든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이 균형은 안녕한 상태인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나조차 남편과 싸울 때 보면 여전히 자존심이 백번 앞서있긴 하다.


 그래도 자존심 세우고 집에 와 이불 킥하던 풋풋하던 시절은 이제와 생각하면 너무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이다. 연애를 글로 배워보고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그렇게 귀엽게 느껴질 수가 없다. 어차피 지나고 보면 물거품이 되어버릴 젊은 날의 유일한 특권인 연애, 자존심 세우지 말고 풍덩 빠져도 좋지 않을까? 이제 빠지고 싶어도 빠지지 못하는 유부녀의 ‘찐’ 조언을 잊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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