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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렛 Dec 20. 2020

말이 참 많은 사람

= 이기적인 사람

 나는 말수가 적은 편이다. 목소리도 작고 차분하다.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땐 종종 말이 많아지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낯을 가리는 성격인 데다 낯설거나 일로 만난 편하지 않은 사람들과는 그렇게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나에 대한 얘기도 먼저 잘하지 않는다. 

 이에 살면서 나를 어려워하거나 오해하는 사람들을 꽤 만나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는데 그리 득이 되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바꾸려 노력해봤으나 잘 되지 않았다. 입에 풀을 붙였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는 아빠가 물려준, 뼛속깊이 들어찬 유전자를 바꾸는 게 참으로 어렵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다.


 이런 기질 때문인지 나와 반대로 말이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참 힘들다. 목소리가 크고 요란한 사람과는 잠시만 같이 있어도 머리가 아프다. 모두가 그런 건 물론 아니지만 그간 내가 만난 말이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얘기하기를 즐기는 사람이었고, 성격 또한 자기중심적 나아가 자기 과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호응을 해주면 해줄수록 더욱 신이 나서 떠들어댔고, 나는 피곤해졌다.


 전 회사 동료 중에도 그런 이가 있었다. 온라인 메신저에서 먼저 말을 거는 건 늘 그녀였고, 하루에 한 시간,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점심이면 단 몇초도 빈틈이 없을 만큼 끊임없이 말했다. 최신 뉴스부터 아주 사적인 연애까지 대화의 스펙트럼도 무척 방대했다. 처음엔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돼서 편했고, 불편한 상사와 같이 밥이라도 먹는 날이면 그녀의 존재가 고맙기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지쳐갔다.

 별로 궁금하지 않은 그녀의 시시콜콜한 어린 시절과 가족, 친구, 친척들의 얘기까지 들어야 했고, 내가 하려는 말을 자르고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대화가 재미없다는 점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을 새로운 뉴스처럼 이야기하거나 오래된 유머를 트렌디한 유행어처럼 깔깔거리며 들려주기도 했다. 속 빈 강정 같은 이야기들을 쫓기는 경주마처럼 쏟아내는 그녀를 보며 참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을 너무 많이 받고 자란 걸까? 반대로 사랑이 모자랐던 걸까? 무슨 환경이 그녀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겉으론 티를 잘 안 냈지만 속으로는 계속 그녀를 평가하고 깎아내리면서 내 지인들에게 험담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말이 많은 사람 = 이기적인 사람?

 말이 많은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일까? 어쩌면 내가 말이 적은 게 낯을 가리고 눈치를 보는 소심한 성격 때문이 아닌, 남을 배려하고 어른스러운 성격 때문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며 살아왔기에 반대인 사람을 보며 자기중심적이고 애 같다고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내 잣대로 상대를 판단하고 싫어한 것 또한 어쩌면 굉장히 이기적인 행동일 수 있는데 그간 나는 그런 생각은 1도 하지 않은 채 늘 말이 많은 이들을 방정맞고 철없는 사람으로 간주해 안 좋게 얘기했던 것 같다. 이제와 생각하니 참 부끄러운 일이다.


 얼마 전 또 다른 전 회사 동료와 대화를 하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말이 많은 그녀의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당시 그녀가 내 눈치를 많이 보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느끼지 못한 부분이었고, 아차 싶었다. 비록 말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피곤하고 재미없어하는 마음이 내 표정으로 고스란히 전해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를 배려하지 못한 건 내가 아니었을까? 그녀가 참 눈치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눈치가 없었던 건 오히려 내가 아니었을까? 이제와 사과를 하긴 애매하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말이 많고 시끄럽다는 것 외엔 장점이 참 많은 친구였는데 일적으로 날 어렵게 한 부분도 전혀 없었는데 내가 너무 한 가지 단점에 몰입하느라 중요한 걸 놓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니 살면서 나는 상대의 장점보다는 단점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많았던 것 같다. 물론 정말 심각한 단점이 있거나, 장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람도 있었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마치 나쁜 생각은 하면 할수록 커지는 것처럼 상대의 단점 또한 집중할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 견딜 수 없을 만큼 상대가 싫어졌던 것 같다. 반대로 장점은 하찮거나 당연하게 느껴져 장점으로 느껴지지도 않는 지경에 다다랐던 것 같다. 나는 대체 왜 그랬을까.


최근 남편과 유치하지만 격렬한 싸움을 한 후에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결혼이라는 거대한 강을 함께 건너기로 선택한 존재인 만큼 장점이 참 많은 사람일 텐데, 어쩌면 단점이 많아도 덮어줘야 할 유일한 존재가 바로 나일 텐데 왜 그렇게 미운 점만 보고 그것을 할퀴어내지 못해 안달을 부렸을까?


반성하는 마음이 드는 밤이지만 내일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 때 나 역시 새로운 마음으로 태어날 자신은 없다. 말이 많은 사람을 만나면 여전히 미간부터 찌푸리게 될 것 같다. 상대의 단점보다 장점을 볼 줄 아는 아름다운 눈은 대체 어떻게 가질 수 있는 걸까? 이런 철없는 나를 인정하고 부딪히고 깨지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밖에. 인상을 쓰기 전 상대의 좋은 면에 대해 떠올려 보겠노라 결심하는 밤이지만, 내일 점심은 앞서 언급했던 그 말많은 동료와 유사한 점이 많은 현 회사의 H씨와 같이 점심을 먹지 않겠노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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