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러나저러나 욕먹는 사람
직장 상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지구 상에 몇이나 될까? 내가 팀원일 때 팀장님은 늘 싫은 존재였다. 같이 점심이라도 먹는 날이면 먹기도 전에 체한 느낌이었다. 반대로 내가 팀장이 되었을 때도 그 상사라는 타이틀이 늘 부담스러웠다. 육성으로 들어본 적은 없지만 팀원들 또한 나를 좋아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성인과 성인이 평가자와 피평가자로 만난다는 건 절대 유쾌한 일일 순 없기에. 욕하고 욕먹으며 공생할 수밖에 없는 그 복잡 미묘한 관계를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상사의 역사
회사에서 만난 내 인생 첫 상사는 40대 남자 팀장님이셨다. 면접 때부터 그분이 (일적으로) 멋져 보였다. 롤모델 비슷한 공경심이 들만큼 능력 있는 분이라고 그땐 생각, 아니 착각했다. 그 환상이 무너지는 데는 1년이 걸렸다. 첫회사 첫 상사였기에 오래 걸렸던 것 같다.
그분의 표현에 의하면 눈에서 빛이 나던, 열정 가득한 갓 대학 졸업한 나를 그분은 마치 아빠처럼 아껴주셨다. 그 아낌과 보살핌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으로 열과 성의를 다해 일했던, 돌아보면 참 순수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나의 아빠이긴커녕 나와 같은 월급쟁이 직장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2년 반을 다니고 퇴사를 했는데 마지막 6개월은 정말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 만큼 싫었던 것 같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어떤 점이 그렇게 싫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질 않는다. 아마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그만큼 거대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직 후 두 번째로 만난 상사는 30대 여자 팀장님이셨다. 싫어지는 데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꼰대적 마인드와 신경질적인 성격을 숨기지 않는 분이었기에 팀원들도 모두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처음부터 그렇게까지 싫진 않았는데, 순서로 따지면 그분이 나를 먼저 싫어했다.
언젠가부터 내 업무에 대해 늘 좋지 않은 피드백만 돌아왔고,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던 와중 첫 평가를 매우 낮게 받게 되었다. 팀장님께 연유를 물었을 때, 내가 자기를 무시했다는 황당한 피드백을 받았다. 첫 회사가 워낙 가족적인 분위기에 나를 예쁘다 예쁘다 해주는 상사 밑에서 사회생활의 쓴맛을 모르고 지냈던 탓일까? 전형적인 꼰대인 그녀의 눈에 나는 되바라진 막내로 비쳤나 보다. 비록 팀장의 지시가 납득이 안돼도 수긍하는 척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일그러진 표정이 숨겨지지 않는 덜 숙련된 내가 그분에겐 꽤 거슬렸던 것 같다. 팀장의 권력이라 할 수 있는, 평가나 업무 피드백으로 날아오는 그녀의 공격들은 내가 울며 죄송하다고 사죄를 한 이후 일단락되었지만, 그날 이후부터 나는 격렬하게 그녀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이 두 명의 상사 포함, 15년여 직장생활 동안 함께 일했던 상사들은 약 10명 정도다. 그중 3분의 1은 잘 지냈고 나머지 3분의 2는 아니었다. 그러나 10명 중 그 누구도 나의 험담에 오르지 않은 이는 없다. 최악의 상사는 거의 매일 아니 어쩌면 회사에 있는 내내 씹어대기도 했다. 안 좋게 얘기해본 적이 거의 전무하며, 아직도 연락하는 완벽한 상사는 단 한분 존재하는데 사실 그분과 함께 일한 시간은 겨우 3개월뿐이었다. 그 이상 함께 업무를 했다면, 지금과 같은 관계를 유지하기는 힘들었으리라.
최악이든 최고든 한 명은 지시하고 한 명은 따르는 위치에 있기에 상사와 부하 사이에 감정은 절대 좋을 수 없다. 직장 동료라면 그냥 피하거나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상사는 내 맘대로 피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니까. 그것은 곧 퇴사를 의미하는 것이니, 회사에 다니는 한 참고 버티고 뒤에서라도 욕하며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지 않을까?
나도 상사가 되다
10년 차쯤 되었을 때 나도 팀장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더 이상 평가받기만 하는 위치가 아니란 사실에 기뻤고, 일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던 때였기에 한 팀의 리더가 됐다는 사실이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팀장도 팀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유쾌하지만은 아닌 자리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팀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저 팀원은 일을 왜 저렇게 하지? 지적을 해도 될까? 한 번만 더 참을까?
저 팀원은 표정이 왜 저러지? 뭔가 불만인가?
같이 밥 먹자고 해도 될까? 속으로 엄청 욕하는 거 아니야?
초보 리더였고, 소심한 성격 탓에 눈치를 많이 본 것도 있다. 하지만 그들을 볼 때면 매일 상사들 욕을 하고 같이 밥이나 차를 마시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했던 내 모습들이 스쳐 괜히 조심스러웠다. 게다가 내 업무 할 시간도 없는데 팀원들 업무까지 컨펌하고 봐줘야 하니 여간 정신없는 게 아니었다. 당시 팀원들이 10명이었는데 한 명씩 와서 한 마디씩만 해도 나는 10번의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니 진이 빠졌다. 상사의 지시는 지시대로 들으면서, 팀원들의 요구사항까지 들어줘야 하는 중간 관리자의 롤은 너무 정신없고 힘이 들었다. 팀원들 모두 성격이 온순한 데다 열심히 일했고, 상사 역시 배울 점이 많은 좋은 분이셨지만, 힘에 부쳤다. 결국 1년도 채 되지 않아 그만두고, 다른 회사에서 다시 팀원이 되어 일하게 됐다.
직장 상사 = 욕먹는 사람?
사실 표면적으로 욕을 먹고 혼나는 건 상사가 아닌 부하직원들이다. 하지만 어느 성인이 욕을 먹은 후 ‘저분이 나를 위해 좋은 얘기를 해주셨구나, 정말 고맙다’라고 생각할까? 한두 번은 그럴 수 있겠지만 지속은 불가능이다. 부모님 잔소리도 못 듣는 판에 상사의 잔소리라니!
팀원의 경우 욕을 먹을 수도 있고, 욕을 먹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상사의 길은 오직 하나, 욕먹는 것뿐이라 생각한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뒤로) 욕을 먹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왜냐고? 팀의 주인공이니까! 한 조직의 리더는 해당 조직에서 늘 도마 위에 올려질 수밖에 없는 존재란 사실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불변의 진리 아닐까?
팀장이 되고 싶다면, 욕먹을 준비가 되었는지, 혼자 밥 먹을 준비가 되었는지 먼저 생각해보기 바란다. 나는 팀원인데 상사를 욕하지 않는다고? 쉽게 속단하지 마라. 나는 팀장인데 욕을 먹지 않는다고? 착각하지 마라. 팀에 또라이가 없으면 내가 또라이란 말은 진짜니까. 그래도 한 가지 위로가 되는 사실이 있다면, 팀원들의 결속력을 다지는 데 있어 같이 모여 팀장을 욕하는 것만큼 강력한 방법은 없다는 사실! 이 한 몸 희생하여 팀의 분위기를 좋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시길, 이 세상의 모든 상사들에게 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