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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Jul 28. 2019

나랏말싸미(The King's Letters, 2019

역사에 대한 몰이해

[줄거리] “이깟 문자, 주상 죽고 나면 시체와 함께 묻어버리면 그만이지”


문자와 지식을 권력으로 독점했던 시대

모든 신하들의 반대에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세종의 마지막 8년.


나라의 가장 고귀한 임금 ‘세종’과 가장 천한 신분 스님 ‘신미’가 만나

백성을 위해 뜻을 모아 나라의 글자를 만들기 시작한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모르는 한글 창제의 숨겨진 이야기!


1443, 불굴의 신념으로 한글을 만들었으나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1.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E.H. 카



보통 역사를 재해석하다가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바로 과거의 특정 연대를 현대적 잣대(혹은 주관적 신념)를 들이 미는 것이다.


먼저 그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현대인이 보기에 선뜻 이해되지 않는 당대의 사고방식 때문이다.

예고편에서 선미 대사가 "그 자리에 앉았으면 왕 노릇 똑바로 하란 말입니다."라고 세종에게 일갈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장면을 봤을 때 <나랏말싸미>가 얼마나 역사를 현대적 기준(자기 입맛)대로 그리는지 단적으로 드러난다.


성리학이 국가이념이 된 데에는 이 학문이 왕조국가에 유리한 점이 있기 때문에 채택된 것이다. 그 이유를 알아보자! 일단 조선 성리학이 무엇인지 간략히 소개하겠다. (학교에서 배우 신 대로) 조선의 건국이념은 '숭유억불'이다. 불교를 국교로 내세웠던 고려 시대의 혼란상을 해결해줄 이념으로 사대부들은 성리학을 받아들였다.


성리학의 가장 큰 핵심은 리(理, 우주를 이루는 본질)과 기(氣, 기의 구성 원리)이다.

인간에 대입하면 기(질)의 상이함이 개성을 낳고, 타고난 본성인 '리'가 만인이 따라야 할

보편적 도덕 원리(인의예지)를 형성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기론(理氣論)이다. 


과거시험 등으로 관리를 뽑을 때, 제일 중요하게 보는 심사 기준은 충(忠)과 효(孝)다.

이를 비춰보면, 유학이 인재를 선정하는 기준은 '어진 이(군자, 착한 사람)이 능력도 있다'라고 본 것이다. 


기독교에서 신(야훼)을 아버지에 비유하듯 유학도 가정의 '효(孝)'를 국가적 개념으로 확장시킨 '충(忠)'을 맨 앞에 뒀다. 이런 정치적 이점 때문에 왕조국가에서 유교가 채택될 수 있었다.


2. 한글 창제 과정을 소상히 밝힌 '훈민정음해례본(국보 70호)'


우리나라의 국기인 '태극기(太極旗)'만 봐도 성리학과 도교에 깊은 영향을 준 추연의 음양오행설이 밑바탕 되어있다. 태극이 음과 양을 상징하고, 4괘가 하늘(건), 땅(곤), 물(감), 불(이) 그리고, 흰색(서), 검은색(북), 빨간색(남), 파란색(동)에다 노란색(중) 국기의 봉까지 합치면 오방색(오행사상)이 전부 들어가 있다.


놀랍게도 우리나라 한글에도 '음양오행설'이 들어가 있다.

핸드폰 입력기 중에 천지인 자판이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모음의 구성 원리는 흔히 '삼재(三才)'라 불리는 천(ㆍ), 지(ㅡ), 인(ㅣ)다.


3.<나랏말싸미>에 나오는 산스크리트어와 불교는 왜 한글과 다른가?


여기서는 인도 사상이 왜 중국 사상과 다른지에 대해 고찰하겠다.한마디로, 중국에서 기원한 유교, 도교, 음양오행설과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 산스크리트어는 사상적 기반 자체가 다르다.


불교를 포함한 인도 사상은 '범아일여(梵我一如)'다. 

범(브라흐만,우주의 원리)과 아(아트만, 자아)가 하나가 되는 뜻이다.

결론만 간단히 얘기하자면, 언뜻 보기엔 이기론과 혼동하기 쉽겠지만, 

성리학이 현세적이라면, 힌두교로 총칭되는 인도 사상은 지나치게 종교적이다.


그리고 산스크리트 어(범어)는 라틴어, 그리스어처럼 인도-유럽어족에 가깝다.

언어학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의 굴절어 계열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4.<나랏말싸미>는 왜 고증을 포기했을까?


조선시대는 예의범절이 사회가치의 으뜸이었다.

그런 유교국가에서 왕에게 하대한다. 그것도 일개 승려가....!!! 이건 어불성설이다.


그 시대는 그 시대를 지배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부터 살펴야 한다. 

<나랏말싸미>는 그 점을 간과했다. 그 이유는 영화를 보면 간단히 찾을 수 있다.


'한글 창제'라는 대 위업을 달성한 위인들을 재해석한 것이 아니라,

그 업적 그 자체를 통해 위인들을 해석하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글 창제의 인간적 동기가 그려지지 않는다.

세종은 애민정신으로, 신미 대사는 언어의 천재로 그려질 뿐 그 어떤 인간미도 느껴지지 않는다.


과업을 달성하기 위한 기계들이라고 할까? 

특히 선미대사가 그렇다. 박해일이 재해석할 수 없을 만큼 인물에 대한 매력이 없다. 이런 캐릭터로 무슨 인상적인 드라마가 나오겠는가? 



☆ (0.5/5.0) 


Good : 송강호, 디테일이 다른 연기 클래스!

Caution : 인물들이 평면적이라 지루하다.


● "세종이 생전 신미의 이름을 들은 게 1446년, 만난 게 1450년이다." 이를 실록에 언급한 사람이

바로 세종의 맏아들 문종대왕이다. 문종실록 1권, 문종 즉위년(卽位年) 4월 6일 자에 정확히 기술되어있다. 한글은 1443년 창제되었다. 그리고, 선미 대사가 썼다고 하는 한글 서적 '원각 선종 석보(1435)'는 현대에 편찬된 위작이다. 


●ㄱ-음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말할 때 고구마를 말한다. 알다시피 고구마는 영조 때 들어온 작물이다. 

이쯤 되면 각본가가 기본 역사 상식은 가지고 썼는지 의심스러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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