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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Dec 28. 2021

드라이브 마이 카, 내면의 주행

《ドライブ・マイ・カー, 2021)》 노 스포일러 해석

[줄거리] 각본가 ‘오토(기리시마 레이카)’와 배우 겸 연출가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가 부부다. 그러나 가후쿠가 아내의 외도 현장을 우연히 목격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가후쿠가 전처럼 오토의 창작을 받아주지도, 그렇다고 불륜의 이유를 직접 묻지도 못하는 어색한 날이 이어진다. 그리고 집을 나서는 남편에게 오늘 저녁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다고 당부했던 오토는, 자신의 말을 전하기 전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2년 뒤 영화의 무대는 히로시마로 옮겨간다. 지역의 예술문화극장에서 기획한 연극제의 연출직을 제안받은 가후쿠는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다양한 언어로 표현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언제나처럼 운전하는 자동차 안에서 생전 아내가 직접 녹음한 대본을 들으며 희곡 전체를 확인하려던 가후쿠는 상주 예술가는 반드시 드라이버를 고용해야 한다는 룰이 있다는 것을 알고 당황한다. 하지만 연극제 측이 추천한 운전사 ‘미사키(미우라 도코)’가 가후쿠의 행동을 의식하지 않고 주행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그를 드라이버로 수락한다. 말없이 묵묵히 가후쿠의 차를 운전하는 미사키와 오래된 습관인 아내가 녹음한 테이프를 들으며 대사를 연습하는 가후쿠. 조용한 차 안에서 두 사람은 점점 마음을 열게 되고, 서로가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눈 덮인 홋카이도에서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은 서로의 슬픔을 들여다본다.


1.하마구치 류스케의 일관된 양식미


그의 전작들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영화 또한 ‘내면을 마주하는 인간’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여자 없는 남자들>로 거대한 틀을 잡은 다음에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의 등장인물을 결부 지어 오로지 자신만의 오리지널을 완성해냈다.


엄청난 대사량에도 불구하고, 텍스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상황과 뉘앙스에 초점을 두고 있다. 실제 하마구치는 대본 리딩을 극중 주인공처럼 감정을 싣지 않고 다양하게 반복해서 읽도록 지시한다고 한다. 미리 상황을 대비한 연기를 배제하고 촬영 당시에 배우들끼리 주고받는 에너지와 우연성을 카메라에 담는다.


설명하자면, 하마구치의 영화는 ‘낭독’이라는 문학적인 특성을 띄는 동시에 무대연출의 즉흥성 모두를 아우른다. 주된 공간인 공연을 준비하는 장소는 전자에 해당하고 자동차는 후자에 해당한다. 특히 붉은 SAAB 900 자동차 내부는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운송수단의 특성을 ‘소통’이라는 미학적 특성으로 승화시킨다. 가후쿠는 낯선 운전사 미사키와 히로시마까지 동승한다. 가는 도중에 심연에 감추었던 죄의식과 상실감을 어쩔 수 없이 표출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보기 위해 먼저 자신의 내면을 봐야 하는 것처럼 스스로의 감정을 알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소통해야 한다. 고로 타인과의 관계는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가후쿠와 배우들이 <바냐 아저씨>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은 영화제작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연극이 곧 영화라고 읽어도 좋을 만큼 두 과정은 닮았다. 가후쿠와 미사키의 관계는 <바냐 아저씨> 속 바냐와 소냐의 그것과 겹치고, 절망을 극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드라이브 마이 카>는 하루키뿐만 아니라 체호프마저 원작으로 삼아 포괄하는 형식을 갖고 있다.



2. ‘다국적 언어’는?


가후쿠는 왜 여러 언어를 함께 쓰는 연출을 구사할까? <드라이브 마이 카>에는 일본어, 한국어, 영어, 만다린어, 타갈로그어, 인도네시아어, 독일어 그리고 한국 수어가 등장한다. 앞서 설명한 대로 하마구치에게 텍스트 그 자체 즉 의미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우리는 외국인을 만나도 몸짓, 표정, 손짓으로 의사소통이 되듯이 말이다. 하마구치 본인도 미국에서 체류했을 때 본인이 겪는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영화에 히로시마에 사는 한국인 권윤수(진대연)와 청각장애인 이유나(박유림) 부부가 등장한다. 원폭 평화공원이 나오고 원래 부산에서 촬영하려는 생각을 봤을 때 대동아공영권이 언뜻 떠올랐다. 대만인도 연극에 나오는 것을 봤을 때 더 그런 심증이 굳혀졌다. 두 나라 모두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전작<아사코>에서 동일본 대지진을 다뤘고, 시나리오를 썼던 <스파이의 아내>에서 태평양전쟁의 인체실험을 그렸었다. 훗카이도 눈길을 달리는 붉은 차는 얼핏 일장기가 연상되지 않은가? 에릭 로메로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그의 관계와 소통은 언제나 역사적 맥락과 결부되어 있다. 이 점은 장 르누아르의 영향 같기도 하다.


3. 어머니를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굴레

일장기

영화를 읽는 또다른 열쇠는 '어머니'다. 오토는 아이를 잃은 경험이 있고, 와타리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 그녀를 학대했다. 영화는 어머니에게 어떠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가후쿠와 와타리에게 상처를 줬지만, 그 상처는 과거지사다. 어머니를 조국인 ‘일본’으로 읽어도 좋고, 단순하게 '트라우마'로 봐도 좋다. 어느 쪽으로 해석하든 간에 어머니는 불가해한 존재이며, 자신과 무관하지만 자신에게 멍에를 안겼다.


영화에 나온 언어들의 국적을 다시 살펴보자! 일본어, 한국어, 영어, 만다린어(중국), 타갈로그어(필리핀), 인도네시아어, 독일어 모두 제 2차 세계 대전 혹은 대동아공영권과 연결되어 있다. 그 순간, 예전에 역사학과 박사과정인 일본인 분과 말씀을 나누면서 일본인 상당수가 태평양전쟁에 관해 잘 모른다고 하셨던 기억이 났다. 주인공은 아내가 왜 불륜을 했는지 모른다. 감독은 아무런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지만, “진실로 타인이 보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깊이 똑바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라고 속삭인다. 이를 역사적으로 치환하면 '선조의 죄를 잘 모르지만 후손들이 외면할 수 없지 않느냐'처럼 들린다.


★★★★★ (5.0/5.0)


Good : 인간의 소통과 관계에 관하여

Caution : 잔잔한 분위기에 많은 대사 정도?


●주행 장면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감독이 인터뷰했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최근 1년 동안 3대 영화제에서 전부 수상했다. <스파이의 아내>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우연과 상상>으르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드라이브 마이 카>로 칸에서 극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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