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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른 Mar 10. 2020

'나'라는 복을 발견하기 위하여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2019)>를 보고


아무리 생각해도 제목을 영 잘못 붙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하면 왠지 찬실이는 바보같이 가만히 있고, 답답한 찬실이를 보다 못한 복이 뚜벅뚜벅 찬실이에게로 걸어와 가만있는 찬실이를 들쳐업고 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내가 본 찬실이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찬실은 조금 외롭긴 하지만 똑똑하고, 재주있고, 마음도 따뜻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맞는  같았다. 감독도  차례 제목을 바꾸다('찬실이는 복도 많지'와는 전혀 관련 없는 것들이었다) 아주 나중에야 다소 객관적이게 된 시선으로 영화를 관람한  문득  소감을 제목으로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나도 어려서부터  많다는 얘기를 제법 들어왔다. 스스로 지금도 복이 많다고 생각한다. 특히  주위엔 항상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엄마는 내가 워낙 좋은 사람이어서 주변에도 좋은 사람이 많은 거라고 했다. 그냥 엄마가 딸한테 해준 듣기 좋은 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은 않는다. 좋은 사람 주위에는 당연히 좋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아니, 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좋은 사람 옆에 가면 좋은 사람이 된다. 그게 바로 좋은 사람,  많은 사람이다.


찬실은 지금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남자도 없고, 새끼도 (여기까지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엔딩가사 인용)지만 '영화'라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가지를 위해 그동안의 청춘을  바쳤다. 그동안 함께 고생한 좋은 사람들이 곁에 남았고, 과거에 불과한 듯한  사랑은  때의 순수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지금 여기 남아 다시금 힘을 준다. 찬실은 영화라는 복을 선택했었고, 괴롭든 즐겁든  복을 누려오다가, 이젠 또다른 복들을 발견해가고 있다. '사람'이라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쓰는 ''이라는 단어는  포괄적인 단어라  중에도 여러 복이 있겠지만, 아마 '인복'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인복'이라는 말을 우리가 자주 쓰는 이유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얼마나 중요하면서도  사람의 의지대로 선택할  있는  아닌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사람이 오는   사람의 인생이 오는 거라는데,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고 힘들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극중에서 소피는 연기상도 여럿 수상한 제법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배우인데,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잡다한 많은 것들을 배우느라 정신없이 바쁘기도 하다. 그런데 그렇게 바쁜 가운데서도 이상하리만큼 찬실을 살뜰히 챙긴다. 찬실이 그동안 얼마나 다정한 사람이었는지를   있는 증거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찬실은 자신의 ‘첫사랑이라고   있는 영화 <집시의 시간(1989)>  뒤부터 영화를 따라다니는 삶을 살았다. 탐스러운 영화의 뒤꽁무니를 쫓아 열심히 달려가는 동안, 그래서 다른  아무 것도  가졌다고 느끼는 동안,  찬실처럼 좋은 사람들이 찬실을 따라오고 있었음을 그는  몰랐던  같다. 이번에 <기생충>으로 오랜 연기생활 끝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조여정이  영화제 수상소감에서 '그동안 연기를 짝사랑해온  같았다', '절대 이뤄질  없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말한  있다. 아마  분야에서 꾸준한 노력을 해왔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이루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느낌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짝사랑은 언젠간 지친다. 마침내 이뤄지거나, 언젠가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수많은 짝사랑의 작대기들이 이리 얽히고 저리 설키는  우리네 인생이다. 내가 어느 곳을 향해 열심히 쏘아보낸 사랑의 작대기가, 거울에 반사되듯 나를 향해 곧장 돌아오지 않을  있다. 아니면 그런 일이 일어날까  무서워서 애초에 작대기를 쏘아보내지 못하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어딘가에서는 나에게로 작대기가 날아온다.  둘러보면, 실은 나야말로 누군가의 사랑의 작대기를 한없이 튕겨내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영화의 리얼한 코미디들이 너무 좋았다. 과하지 않지만 확실하게 웃겼다. 강말금 배우의 훌륭한 연기가 큰 몫을 했다.

  짚고 넘어가고 싶은  가지는, 깜찍한 신스틸러 장국영. 아니 내가 평생 장국영을 제대로 모르다가 마침  영화를 보기 며칠 전에 장국영의 대표작   편을 연달아 보고 검색을 통해 장국영에 관한 a to z 섭렵하고 있었을  무어람. 포스터 구석 난닝구 사내의 정체를 모른  영화를 봤기에, 그가 본인을 장국영이라고 밝힐  진심으로  터졌다. 찬실은 전혀 다르게 생겼다고 했지만 너무 똑같았다.


평일에 인디스페이스에서 영화를 보는 건 '무조건 기분이 좋은 일들' 가운데 하나다.

꼭 대단한 주제의식을 갖고 있어야만 좋은 영화는 아니다. 찬실이 오즈 야스지로를 좋아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하는 듯도 하다. 사소한 이야기, 흔한 이야기, 당연한 이야기일 지라도, 이렇게 정성껏, 예쁘게, 따뜻하고 똑똑하게 담아내면 그게 바로 예술이지.


그게 바로 예술이지.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나는 복도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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