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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른 Mar 13. 2020

당신 안에 영원히 남기 위하여

영화 <레베카(1940), 알프레드 히치콕>을 보고


  사실 히치콕의 주요 필모는 어느 정도 훑었었는데 뮤지컬을 보기 전에 스포 당하지 않으려고 이 영화는 안 보고 남겨뒀다가 마침내 이렇게 관극하고 온 뒤 바로 보게 됐다. 원작소설은 읽지 않았지만 뮤지컬도, 영화도, 정말 수작이다. 원전이 역시 아마 가장 대단한 거지 싶다.


  히치콕 영화는 언제나 '서스펜스의 교과서'를 읽는 듯한 느낌이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진데, 뮤지컬을 통해 서사를 완전히 익힌 다음 본 덕에 좀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영화를 평가할 수 있어서 더욱 그런 영화적인 요소나 기법들이 눈에 잘 들어온 것 같다. 사람이 언제 어떻게 긴장을 하고 놀라고 두려워 하는지를 잘 알고 그것을 서사와 함께 적절히 가지고 노는 느낌. '가지고 논다'는 표현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왜인지 다른 적절한 단어가 지금은 떠오르지 않는다.


  사실 아직까지는 어제 본 뮤지컬 레베카의 강렬한 무대와 노래들이 무한히 맴돌지만, 뮤지컬과 별개로 정말 훌륭한 영화다. 이미 존재하지 않는 이의 존재감이라는, 이 작품의 가장 뛰어난 특징은 말할 것도 없고, 레베카의 죽음을 둘러싸고 그야말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도대체 사건의 전말이 어떻게 된 건지 관객들로 하여금 쉴 새 없이 머리를 굴리며 긴장과 의심을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 명실상부 스릴러의 고전. 1940년 작품이라니, 말이나 됩니까..


  모든 부분이 놀랍지만 한 가지만 적자면, 맥심이 레베카를 매우 사랑했고,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과 그녀를 모든 순간 비교하고 있다는 주인공의 오해를 너무나도 솜씨 좋게 다뤘다는 부분을 언급하고 싶다. 어찌 보면 서스펜스, 모든 긴장감은 '정보'에서 오는 거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미지로부터 공포감을 느끼고, 언제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최악보다 더 심한 최악을 상상하며 괴로워하곤 하니까. 그래서 스릴러 장르에서 '오해'는 아마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모든 것을 알고 처음부터 보면 맥심이 레베카를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는 명확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모든 것은 소문과 추측, 정황 들일 뿐. 거기에 주인공의 심리적 불안감이 더해지면서 누구라도 그렇게 오해했을 만한 상황들이 계속 이어지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그 순간 아마 갑작스러운 외부의 소음이 아니었다면 주인공은 정말로 댄버스 부인의 종용에 따라 창 밖으로 몸을 던졌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현실 세계를 핍진하게 그려내는 작품을 보면 내가 막 열광하는 편인데, '물증'은 없지만 '심증'만으로 실제 사실보다도 더 무섭게 작용하는 숱한 추측들이 이 세계를 얼마나 많이 움직이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그것을 이 영화에서 이렇게 정교하게 다뤘다는 건 생각할수록 놀랍기만 하다.


  뮤지컬을 보는 동안 레베카의 본색이 서서히 드러날수록 그 이미지가 어딘가 낯설지가 않다 싶더니만, 영화를 보는 중에 생각이 났다. 바로 얼마 전 읽은 장강명의 <표백> 속 그 교활하고 아름다운 세연. 자신의 죽음 뒤에 벌어질 일들을 전부 예상하고 마치 사후에도 살아있는 이들을 조종하듯 스스로의 죽음과 그 뒤의 일들을 설계했다는 설정이 돌이켜보니 거의 똑같았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데다 똑똑하기까지 한 그녀들은, 온갖 어둠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웃으며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기에는 지나치게 영리했던가 보다.


  이 작품에서 레베카가 존재하는 방식이 꼭 예술작품이 우리 마음 속에 살아있는 방식과도 같다는 생각도 든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뮤지컬을 보는 등 다양한 문화예술 감상이라는 취미생활의 노예로 살아오다 보니 이제는 무엇이 됐든 그것을 마주하는 그 순간이 최고가 아님을 너무도 잘 알게 됐다. 사실상 작품을 실제로 마주하고 있는 그 시간은 태풍의 눈과도 같은 고요한 시간이다. 그것과 만나기 전까지의 설렘과, 그것을 만난 이후 작품이 내 기억 속 어딘가에 남아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저런 옷을 덧입거나 덜어내며 같은 것을 감상한 다른 누구의 것과도 같지 않은 고유한 모습을 간직하게 되는, 바로 그 시간들이야말로 태풍 속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지역의 거센 바람, 사실상 진짜 '태풍' 그 자체에 해당하는 부분인 것이다. 정확히 레베카가 죽은 그 날 이후로, 온갖 소문과 회상들을 통해 레베카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더 아름답고 신비로워져 가게 된다. 작품은 결국 무엇을 남기느냐, 그것의 문제이다.


  뮤지컬 레베카는 나에게 옥댄버가 아니라 난데없는 카막심을 남겼고, (물론 그것만 남긴 건 아니다) 영화 레베카가 나에게 무엇으로 남을지는 하루 또 하루 호기심을 갖고 지켜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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