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10+αm: 깊은 슬픔의 서막

Chapter 3. 서서히 가라앉는 중입니다. 끝없이 깊은 곳을 향해

by Luci

‘코로나-19’

21세기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이지 않을까.

엄청난 팬데믹의 발현으로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고,

덩달아 나도 학교에 출근하지 못하는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2월 중순부터는 보통 새 학기 준비로 분주해지기 시작하는데

그해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뉴스에 집중하느라 바빴다.

3월에 개학을 하지 못하고, 교과서와 학습 꾸러미를 (최대한 접촉을 최소화하여) 가정으로 배부하고,

집에서 학습할 수 있도록 자료를 만들어 온라인 학습 플랫폼에 업로드하고,

한동안은 재택근무를 하다가 교실에서 나 홀로 일하는 그런 상황이 이어졌다.

한편으론 아이들 없는 학교가 낯설고 어색했지만, 어느 정도 상황이 익숙해지니 나름 여유롭고 좋았다.

본가에도 자주 내려가기 어려웠다.

꼭 필요한 일 외에 멀리 이동하는 것이 눈치 보이는 때라 되도록 전화로 소통하고

중요한 때에만 갈 수 있었다.

마스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고, 마스크 없이는 감히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을 때였다.

고립되기 쉬운 시기였지만,

모두가 불안에 빠져 있을 때라 그런지 의외로 팬데믹 때문에 내가 패닉에 빠지지는 않았었다.

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만.

2020년 6월의 어느 주말이었다.

날씨가 점점 후덥지근하게 느껴지는 초여름의 어느 토요일.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내가 요즘 속이 좀 안 좋아서 병원에 갔는데 그래도 잘 안 낫네.

나: 속이 안 좋다고? 왜?

엄마: 모르겠어. 위가 안 좋아서 그런가 하고 위 내시경도 해봤는데 별 이상한 건 없다고 그러고. 소화가 잘 안되는 느낌이야.

나: 요새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가? 학교에서 다른 아줌마들이랑 일하면서 스트레스받을 것도 없을 텐데 왜 그럴까. 요즘 뭐 힘든 일 있어?

엄마: 딱히 그런 것 같진 않은데. 다른 병원에 가봐야 하나.

나: 그게 좋겠다. 좀 더 큰 병원 가서 검사받아 봐.


소화불량이야 누구나 일상적으로 겪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약 먹으면 금방 나을 거란 생각에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별일 없이 한 주가 지나고 다음에 엄마에게 다시 전화가 왔을 때는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엄마: 내가 다른 병원 가서 진찰받았는데 의사가 나를 보고 초음파를 보자고 하면서 검사하더니 뭘 써주면서 큰 병원을 가라고 하더라? 근데 종이에 온통 영어로 써 있어서 나는 잘 모르겠으니까, 네가 좀 무슨 말인지 찾아봐.

나: 큰 병원을 가라고 했다고? 뭐가 많이 안 좋대?

엄마: 나도 잘은 모르고 뭐가 보인다는 거 같아. 내가 병원에서 받은 종이 사진 찍어 보낼 테니까 한 번 봐.

나: (소견서에는 온통 의학 용어라 모르는 단어뿐이어서 사전으로 열심히 검색해 보았다) 엄마, 담낭인가에 뭐가 보인다는 것 같긴 한데 의사들이 쓰는 용어라 무슨 말인지 잘은 모르겠어. 암튼 뭔가 담낭에 있다는 말 같아.

엄마: 뭐가 있다는 거지? 나쁜 건 아니겠지?

나: 큰 병원 가면 알 수 있겠지. 오늘은 주말이니까 월요일 되면 일단 거기 G대학병원이나, C병원 가보셔.

엄마: 별건 아니겠지...?

나: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조금 걱정은 했지만, ‘큰일은 아니겠지’ 하고 생각한 건 나의 엄청난 착각이었다.

병원에 간 엄마는 바로 입원했고, CT를 찍었다.

수요일쯤 학교에 엄마가 아프시다는 이야기를 하고 병원으로 갔다.

거기서 청천벽력 같은 말을 의사로부터 들었다.

“암으로 보입니다. 여기저기 전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수술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눈물은 나는데 엄마 앞에서는 울면 안 될 것 같고, 당장 어떻게 해야 하나 눈앞이 캄캄했다.

지역의 대학병원이었지만,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서는 조직검사가 어려워 서울로 가야 한다고 했다.

담낭이 어디인지, 왜 이 병원에선 간단해 보이는 조직검사도 안 되는지.

모르는 것도 많고 답답하기만 한데 뭔가 빨리 조치해야 할 것 같아 마음만 급했다.

일단 그 구린 병원에서 탈출해 좋은 병원을 알아봐야 할 것 같고,

수술이 어렵다면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도 알아봐야 하고,

엄마가 암이란 걸 알면 충격을 받을 텐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엄두도 안 나고...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 갔다가 나는 패닉에 빠졌다.

주저앉고 싶었는데 다음날 출근은 해야 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겨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암 선고를 들은 다음 날,

엄마는 입원했던 병원과 같은 재단의 서울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바로 조직검사 일정을 잡았다고 했다.

나는 그 재단의 병원도 마뜩잖았지만, 새로운 병원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한 채라 어쩔 수 없었다.

조직검사는 옆구리에 피부를 절개하고 관을 넣어 간에 있는 담도에서 조직을 떼어 확인하는 방식이었는데

어쩐지 검사가 잘되지 않아 두 번 만에 겨우 마칠 수 있었다.

나는 잘 몰랐는데 처음 입원했던 지역의 대학병원에서는 초음파 검사 결과가 적힌 소견서와

엄마의 얼굴에 노란 황달기를 보고는 피검사를 했고,

황달을 판별하는 빌리루빈 수치가 높아 바로 조치가 필요했다고 한다.

‘빌리루빈은 노화된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이 분해되면서 생성되는 황색 담즙 색소로, 간에서 처리되어 담즙을 통해 배설된다. 빌리루빈 농도가 높아지면 황달 증상이 나타나며, 간 질환, 담도 질환, 용혈성 질환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 Google 검색 결과

간에서 만든 쓸개즙을 쓸개로 보내는 길인 담도가 암 덩어리들 때문에 좁아져

쓸개즙이 고이고 황달이 온 것이다.

빨리 쓸개즙을 몸 밖으로 빼내는 시술이 필요해 급하게 전원하게 되었다.

평소에 감기도 잘 안 걸리던 엄마가 입원했다는 이야기에 놀라선지,

엄마 얼굴을 자주 안 봐서 둔감해진 탓인지 황달이 왔는데도 몰랐던 게 미안했다.

내가 그동안 엄마를 너무 외면하고 모른 채 살았던 것이,

흔한 대학병원 종합 건강검진 한 번 해보자 안 한 것이,

내가 엄마를 속상하게 했던 것들이... 끝없이 나열되는 후회와 죄스러운 것들 때문에 미안했다.

몸안에서 원활하게 흐르지 못하고 어딘가에 막혀 고여있던 샛노란 담즙이 몸 밖으로 나오자

누렇던 엄마 얼굴이 약간 창백할 정도로 하얗게 변했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고, 나는 분주하게 다른 병원을 알아보며

엄마의 상태를 살피고, 예민해지기 쉬운 컨디션을 잘 살펴야 했고,

출근해야 하는 날이면 저녁 늦게 병원을 떠나 집에서 쪽잠을 자고 울다 부은 눈으로 학교에 갔다.

아빠가 엄마 곁을 살폈지만 내가 못 미더워 하기도 했고,

병원에서 뭔가 설명해 주면 그걸 듣고 관련된 정보를 알아보는 건 내 몫이었다.

내가 병원에서 엄마 보호자로 있는 날은 그래도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출근해서 아빠가 병원에 있는 날에는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1, 2주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일을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엄마를 구할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처럼.


하루하루가 초조했고, 매일매일 챙길 것도 많았지만 병원에서 보호자 생활도 며칠 하다 보니 적응되었다.

엄마는 병원 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입맛이 없다며 많이 남겼다.

그리고 항상 내가 먹는 밥을 걱정했다.

엄마 몫인 1인분의 밥을 나눠 먹었고,

내가 좀 배고프다 싶을 때는 밖에서 김밥을 사 오거나 편의점에서 대충 때우기도 했다.

엄마는 제대로 먹질 못하는데 나만 배가 고플 때면 그게 또 미안했다.

엄마도 잘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요리와는 담을 쌓고 살던 내가

엄마의 주문에 맞춰 집에서 멸치볶음이나 마늘종 볶음, 콩자반 같은 것을 만들어 오기도 했다(그것도 엄마 입맛에 맞는 타율이 낮은 편이라 애써 만든 나에게 속상할 때가 많았다).

여름이라 씻는 것도 조금 문제였다.

물론 병원 건물 안은 냉방을 잘해서 그리 덥지는 않지만,

그래도 샤워하고 싶을 때는 다른 층의 장애인 화장실에 가서 몰래 샤워를 하기도 하고,

샤워기가 있는 화장실에서 머리만 감기도 했다.

엄마는 배에 관을 넣는 시술을 받았기에 씻는 것이 더욱 큰일이었다.

대개는 머리만 며칠에 한 번씩 감았고, 샤워 대신에 수건을 물에 적셔 몸을 닦는 것만 했다.

입원실은 6인실이라 다른 환자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처음엔 어색했는데,

엄마는 나름 친화력(?)을 발휘해서 다른 환자들이나 보호자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했다.

병원에서 입원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조리실무사로 일하던 학교에 사정을 말했고 조금 난감해했다.

“얼른 치료가 끝나서 돌아가야 할 텐데.”라며.

밤이 오면 암 환우 카페 내용을 탐독하고, 정보를 검색하느라 바빴다.

그러다 엄마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있는 간이침대에 누워 마스크를 벗지 못한 채 잠을 잤다.

코로나 때문에 24시간 마스크는 내 피부처럼 항상 붙어 있었고 그것도 적응이 되는 게 신기했다.

마스크를 뚫고 내는 내 코골이 소리 때문에 엄마가 잠이 깼다고 하기에 민망했고,

코를 골지 않기 위해 그 불편한 침대 위에 바로 눕지도 못하고

모로 누워 자는 것도 익숙해진다는 것이 신기했다.

조직검사를 한 지 일주일 하고도 하루가 더 지나서 검사 결과가 나왔다.

엄마를 담당하는 주치의 선생님께 엄마가 암이란걸 아직 모르신다고 말씀드렸더니

결과를 어떻게 전해주는 게 좋을지 물었다.

나는 차마 내 입으로 말할 수는 없으니, 교수님이 엄마에게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교수님은 다정한 말투로 조심스럽게 엄마를 바라보며 검사 결과를 말씀해 주셨다.

엄마는 흠칫 놀라고 당황한 눈치였지만 생각보다는 담담했던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며, “나을 수 있는 거죠?” 되물었다.

교수님은 일단 침착하게 안심시키며 요즘은 약이 잘 나와서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고 했고

열심히 치료받으시면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주치의인 레지던트 선생님과 담당 교수님이 떠나시고는 둘이 조금 울었던 것 같다.


아마 그날은 엄마 인생에서 가장 가슴 철렁했던 날이었을 것이다.

비록 딸내미 앞에서는 티 내지 않으려고 애쓴 것인지, 너무 뜻밖의 일이라 당황해서인지,

아니면 며칠 전부터 주치의 선생님이 회진 때 흘린 말이나 차트에 적힌 것들을 보고

대충은 눈치챈 덕분인지 많이 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암’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섭고 두렵게 느껴졌을지

지금의 나는 헤아릴 수 없다.

다만 그날의 엄마는 내 눈엔 평소보다 기운 없었고,

그 탄탄해 보이던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고,

그래서 낯선 모습이 안타까워 내가 엄마 대신 숨어서 많이 울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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