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서서히 가라앉는 중입니다. 끝없이 깊은 곳을 향해
집에서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갖다가 다시 병원을 찾았다.
그래도 예전에는 본가에서 차로 15분쯤이면 금방 도착할 수 있는 C병원에 적을 두고 있어서
위급한 상황에 대해서는 안심할 수 있었지만,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옮기고 나서는 엄마가 갑자기 아픈 상황에 대한 불안이 높아졌다.
서울대병원에서는 입원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서 다른 협력병원으로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부근의 적십자병원이 그나마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의 광풍으로 인해 입원이 불가능했다.
우리는 서울대병원에서 소개해 준 중랑구의 N병원으로 갔다.
N병원은 내가 구독하던 잡지에서도 소개되어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직접 가보니 매우 작은 종합병원이었고, 생각보다 더 시설이 열악했다(내가 혐오하는 C병원보다 더 낙후된 환경에 맥이 빠졌다. 이런 병원이라도 서울대병원 가려면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서글펐다).
노동자들이 세운 병원이라는 자부심이 있는 병원이었지만, 가난한 노동자들만큼 가난한 병원이었다.
우리가 들어가게 된 6인실은 창문도 낡아 외풍이 심해서 실내인데도 한기가 느껴졌고,
식사도 엉망이라서 병이 오히려 생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오게 되었지만 있는 동안은 한시라도 편하게 지내는 게 좋겠다 싶어
엄마에게 다인실 말고 1인실로 가자 했더니 엄마는 여기도 괜찮다며 한사코 병실 옮기는 것을 거부했다.
큰언니가 빈궁하게 산다고 그렇게 뭐라 하던 사람이
당장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1인실 입원비가 많이 나올까 봐 걱정했을까.
왜 1인실로 안 가겠다고 한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아픈 환자도 아닌 나만 그 병실에서 죽상이었다.
그 무렵 코로나 감염 추세가 심해져서
보호자도 사전에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음성 판정이 나와야 있을 수 있었고, 당연히 보호자 교대도 되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내가 보호자로 있게 되었는데,
심각한 상태의 병원에서 엄마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게 가혹한 형벌처럼 느껴졌다.
병원이 그때만큼 감옥처럼 느껴졌던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사건이 터졌다.
2020년 12월 18일 오전 1:23
<사건 기록>
12/17(목) 11:30경
간호사가 환자 우측 연결된 배액관의 3-way-cock 및 관 세척을 위해 배액관 마개를 열던 중 연결 부위를 파손시키고 보호자에게 고지함. 마개 끝의 연결부 겉 부분만 깨진 것으로 알고, 기존 파손된 바일백 교체하려 했으나 병원에 맞는 바일백이 없어서 보호자가 교체 위한 바일백 구매하러 다녀옴
14:00경
보호자가 교체 필요한 바일백 구매하여 교체하려고 확인 중에 바일백 연결 부위가 내부에 끼인 채로 손상되어 바일백 교체가 불가능함을 확인. 처음 배액관 세척 하려다가 파손시킨 간호사가 아닌 다른 간호사가 와서 확인. 주치의에게 고지 필요하다고 말함
14:40경 주치의가 배액관 연결 부위 확인하고 상태 파악
16:00경
배에 연결된 배액관 전체를 교체해야 하는 것으로 확인 후 시술받은 서울대로 내원해 배액관 교체받도록 통보받음. 사과나 보상 등에 대한 이야기 없이 병원 원무 지침에 대해서만 보호자에게 설명함. 신포괄수가제 시행 중인 병원이라서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가는 경우 가퇴원 처리를 하고 다시 돌아올 경우 0:00 이후에 입원이 가능하다고 설명 들음.
17:00에 원무과 업무가 종료되므로 그전에 수납하라고 안내받음 → 수납 거부, 주치의 또는 관련자와 이야기하고 싶다는 의사 밝힘
16:30경
주치의 면담. 배액관에 3-way-cock 연결하는 건 반드시 해야 하는 조치가 아님에도 시행한 것 아니냐고 말하자 주치의가 배액관 세척은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주장. 세척을 위해 바일백 연결 부위를 풀려고 했다 하더라도 실수로 파손되어 튜브 교체하게 된 상황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는 것 아닌지, 사과나 보상 조치가 없는 것에 대해 항의하자 논의 후 알려주겠다고 함
17:00경
원무 처리상 가퇴원이 필요하다고 안내받고 퇴원 처리, 원무과 팀장과 익일 오전 면담 가능하다고 안내받음
17:30경
원무과 팀장이나 주치의로부터 직접 병원 책임에 대한 확인받고 싶었으나 퇴근하여 만날 수 없다고 안내받음
19:00경 가퇴원 처리로 수납하고 주치의 소견서 받아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내원 안내받음
21:00에 구급차로 출발하여 22:30경에 시술받을 수 있다고 안내받음
21:00 사설 구급차로 서울대병원 응급실행
21:30경 서울대병원 응급실 도착 후 접수, 응급실 내원 상황 담당 주치의에게 설명한 후 당일 배액관 튜브 교체 불가능하다고 안내받음
12월의 난데없는 ‘의료사고’는 정말 작은 일에서 시작되었다.
간호사가 엄마의 담즙이 나오는 관을 세척한다고
몸 밖의 담즙관과 담즙 주머니(바일백)를 연결하는 플라스틱 3방향 전환 마개(가스레인지 중간 밸브와 비슷하게 생겼다)를 열다가 마개가 부러졌다.
망가진 부분만 교체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예 몸속에 연결된 부분부터 전부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그 작은 병원에서는 불가능한 시술이었다.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려도 모자랄 판에
서울대 응급실로 가려면 퇴원 처리를 하고 가야 하니 병원비 수납하고 가라는 말을 듣고 나자
‘꼭지가 돌아버렸다.’
주치의한테 따지고 원무과에 가서도 난리를 쳤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넓은 마음으로 사람이 하는 일이니,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해할 순 있어도
병원의 나 몰라라 하는 태도에 정말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동생에게 상황을 설명해서 의료사고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고
(중요한 일에는 아버지가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을 급히 휴대전화 메모 앱에 기록했다.
어두운 밤, 응급차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내 머릿속은 슬픔과 분노와 불안과 온갖 감정이 뒤섞여 터질 것만 같았다.
응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차선을 재빠르게 바꿔가며 병원으로 달려가느라 덜컹거렸고
그때마다 엄마가 낮게 앓는 소리를 냈다.
나는 앞자리 조수석에 앉아 난생처음 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면서 내내 괴로웠지만 울지도 못했다.
응급실에 도착해 코로나 감염 확인 절차를 거치고 여러 사람과 함께 진료 차례를 기다렸다.
자정 무렵에나 의사가 엄마를 살펴봐 주었고,
당장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응급실 빈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전부였다.
엄마는 까무룩 잠이 들고 나는 계속 뿔이 난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잠잘 곳도 없고, 잘 수도 없고, 오직 병원 기계음과 실내등 불빛만 가득한 긴긴밤이었다.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시술을 받고 저녁 무렵 퇴원해 다시 N병원으로 돌아갔다.
성질 같아서는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고 정말 ‘진상짓’을 하고 싶었지만, 엄마가 한사코 말리고 있었고
무엇보다 엄마가 환자라는 볼모로 붙잡혀 있다 보니 화를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
시술을 받으면서 고통스러워했을 엄마를 생각하면 참담한 심정이었는데,
미안하다는 말도 없다는 게 더욱 기막힌 일이었다.
문제의 원무과 과장을 만나 결국 미안하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것 외에 다른 소득은 없었다.
열악한 병원 재정 탓에 직원들 월급도 밀려 있다는 신세 한탄을 들으며
실수는 인정하지만, 특별히 보상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억울하고 분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동시에 허탈하고 무력해짐을 느꼈다.
한겨울에 차디찬 얼음을 맨손으로 만진 채 버텨야만 하는 벌을 서는 것처럼,
그때 세상은 내게 너무도 모질고 매섭게 느껴졌다.
시린 겨울이 찾아와 몸도 마음도 얼어붙게 만들었다.
엄마가 나을 수 있다는 희망도 그렇게 얼어붙은 채 깨질 것만 같았다.
2020년 12월 18일 오전 3:17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비보는 충격과 고통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3주가 넘는 입원 기간 동안 뱃속을 관통하는 관을 4번 교체했다. 뱃속을 들여다보기 위해 꺼리던 CT를 두 번 찍었고, 입과 식도, 위장을 지나 담도로 역행해 들어가는 내시경을 두 번이나 한끝에 조금 황달이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품고 퇴원해 닷새쯤 집에서 쉴 수 있었다. 짧지만 집이라서 좋았고, 쉬면서 다시 무엇을 해볼 수 있을 거란 작은 소망을 품을 수 있어서 두근거렸다. 얼굴과 눈이 노랗게 보이는 것도 조금씩 옅은 빛으로 변해간다며 서로를 다독이던 보낸 나날이었다.
외래 진료 보는 날 병원으로 진입하는 길에 차가 밀린 것도, 점심을 먹고 진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도 괜찮았다. 뜻밖에 황달 수치가 걷잡을 수 없이,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정도로 올랐다는 소식에는 괜찮을 수 없었다. 급히 응급실에 가서 또 한 번 관을 교체하는 시술을 받고 퇴원, 늦은 밤이 되어서야 겨우 집에 도착해서는 다시 안도할 수 있었다. 사흘 뒤 다시 외래 진료받기까지 조금이라도 나으리라는 희망이 있었으므로.
한참 기다려 담당 교수님 외래 진료를 보았을 때, 다시금 황달 수치가 최고치를 넘어섰다는 걸 확인하고 낙담하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응급실 진료도 어려운 상황에 열이 나 코로나 검사를 하고 속절없이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었다. 응급실에서 밤을 새울 수 없어 급히 항생제만 처방받고 집으로 향한 길엔 어둠이 더욱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피로와 함께 절망도 몰려왔다. 표현할 수 없고 덜어낼 수도 없는 절망이었다. 바닥을 모르고 아래로만 가라앉는데 내려갈수록 커지는 압력을 견뎌낼 힘이 없어 쪼그라들고 끝내는 흔적도 없이 바스러질 것만 같은 참담함이었다.
나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다음날 일정은 동생과 아버지가 맡기로 하고 나는 잠시 물러나 있기로 했다. 몸은 조금 편했으나 마음은 달랠 길이 없었다.
병원에서 잘 치료받을 수 있기를 기도하고, 나아지기를 빌며 토요일이 지났다. 새벽에 내린 눈으로 어김없이 겨울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음을 실감할 때, 눈처럼 하얗던 엄마의 피부가 제빛을 찾는 날도 올 수 있을지 생각하니 눈물이 흘렀다. 창밖을 바라보며 함께 우리 동네 익숙한 겨울 풍경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에 또 슬펐다. 크리스마스에는, 새해를 맞이하는 시간에는 집에서 함께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12월은 서울대병원 외래 진료를 위해 N병원에 입원했다가 요양이 필요하면 퇴원하기를 반복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게 안타까워 가까운 시장에서 뭐라도 사 오려고 한참 돌아다니던 기억이 난다.
그때 한창 유행하던 골목의 식당을 개선해 주는 TV 프로그램에 나와 이름난 만둣집에 가서
만두를 사 온 적도 있었는데 그것도 까다로운 엄마 입맛에 맞지는 않았다.
하루는 집에서 엄마가 예전에 먹던 두부찌개가 생각나서 끓여보라기에 열심히 끓였는데
양파를 넣어 들큼해진 맛이 문제였다.
엄마는 짜증을 내며, 서 있기도 힘든 몸으로 두부와 고춧가루, 새우젓만으로 찌개를 끓였는데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이게 엄마가 원하는 맛이었구나.’ 감탄하며 먹는데 엄마는 몇 술 뜨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내 입맛이 변했구나.” 그렇게 기운 하나 없이 너무도 처량한 목소리로.
담즙을 빼는 관을 두 개나 달아서 주머니 역시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달아 놓았지만,
엄마의 얼굴은 황달로 점점 노랗게 변해갔다.
크리스마스 무렵에도 병원 신세를 벗어날 수 없었다(그래도 내가 우겨서 1인실로 간 것이 그나마 다행).
가족과 함께 보내는 즐거운 크리스마스에도 여전히 아픈 사람들이 있고,
환자를 간호하는 보호자도 있고,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었다.
2020년 12월 24일 오후 11:43
노란 얼굴, 노란 눈동자의 우리 엄마
두 손 모아 기도한다.
불안한 희망 속에 잠긴 나는 엄마를 그저 침묵하며 바라본다.
깊은 잠에 빠진 엄마의 숨소리가 병실 안을 채우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밤도 깊어 간다.
올해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엄마와 오붓하게 저녁을 먹다가(비록 병원 밥이 맛없어 고만고만한 반찬가게 반찬을 사다 겨우 한 끼를 때웠지만) 뜬금없이 정전되어 어둠을 스마트폰 플래시로 밝혀가며 일용할 양식을 마저 먹었더랬지. 이마저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되겠지.
내년 크리스마스에도 엄마랑 아웅다웅하며 오붓하게 밥 먹을 수 있음 참 좋겠다.
“이래서 내가 이 병원은 아니랬잖아.”
“그럼 다른 병원 어딜 가.”
“어디든 갔겠지. 하려고 마음먹고 방법을 찾으면 어떻게든 할 수는 있어. 서울대도 그렇게 갔잖아.”
“......”
오늘도 엄마에게 훈계와 잔소리를 늘어놓곤 또 후회한다. 하느님, 부디 이 죄인을 용서하세요.
어떻게 하면 엄마가 조금 더 편해질 수 있을까요.
지금의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갈 용기와 지혜와 힘을 주소서.
2020년 12월 27일 오후 10:38
이름도 참 예쁜 N병원. 내게는 제일 긴 시간 동안 엄마와 함께했던 병원이 되었는데... 이곳에선 여러 가지로 시달리고 신경 쓰고 마음이 가장 불편했던 최악의 병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일주일을 어떻게 보내나 싶었는데 어찌어찌 일주일이 지나가서 내일이면 퇴원. 이제 이곳과는 손절.
앞으로는 또다시 어찌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는 지금... 너무 막막하고 외롭다. 아버지라는 사람도, 동생이란 놈도... 집에서 한가하게 여유 부리며 쉬고 있겠지. 그들과도 손절할 예정. 인생은 원래 이다지도 고독한 것인가. 엄마를 돌보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인가. 내 속은 문드러져 가는데 어찌 달래야 할까. 괴롭다.
내일 서울대 진료를 보면서 무슨 이야기를 듣게 될지... 어쨌든 항암은 힘들 거고, 그나마 다행인 건 엄마에게 통증이 거의 없다는 것. 아직 또렷한 정신으로 거동이 가능하고 삶의 의지도 강하다는 것.
관장도 시작해 보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겠지.
그전에 나 며칠만 쉬고 싶은데... 괜찮을까?
오늘따라 침대에 걸터앉아 수액 걸이에 매달린 영양제와 수액을 구슬프게 바라보는 엄마의 눈망울이 가슴에 맺힌다. 여태껏 보았던 엄마의 눈빛과는 다르게 유달리 슬퍼 보여 마음이 아프다. 그저 미안하다…. 낫게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서 답답하고 마음 한편이 또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