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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 모드'에서 '사색하는 매뉴얼 모드'로

데이터 인문학

언젠가부터 우리는 '편리함'이라는 이름의 조수석에 앉아있는 듯합니다.


과거, 발바닥의 미세한 감각으로 클러치를 조작하며 기어를 넣던 1톤 트럭마저 '오토(Auto)' 모드를 채택했습니다. 저 역시 1종 보통 면허로 운전을 배웠지만, 막상 운전대를 잡으면 망설임 없이 'D(드라이브)'로 기어를 옮기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와, 너무 편하다"는 감탄과 함께 말입니다.


기업이 추구하는 '생산적 가치 논리'는 그렇게 세상을 움직여왔습니다. '오토'를 넘어 '크루즈 모드'로, 우리는 점점 더 운전이라는 행위에서 멀어지고, 자동차는 스스로 달립니다.


최근 우리 곁에 다가온 인공지능(AI) 역시 꼭 닮아있습니다.


AI로 문제를 내고, 방대한 자료를 요약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시험문제를 풀며, 감미로운 노래와 아름다운 그림을 만듭니다. 심지어 지친 하루의 끝에 나의 감정을 묻고 그 답에 위로를 얻기도 합니다. 처음 가졌던 일말의 의심은 즉각적인 편리함 앞에서 눈 녹듯 사라집니다.


그렇게 우리의 판단력은 '오토 모드'에서 '크루즈 모드'로, 그리고 마침내는 깊은 '수면 모드'로 전환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여기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만약, '전기가 끊어지면? 서버가 다운되거나, 소스코드 하나가 꼬여 시스템이 마비된다면?'


그저 '오토 모드'의 편리함에 안주하던 우리는, 그 자체로 'STOP' 되어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종이를 손에 쥐고, 침을 발라 책장을 넘기며, 내 눈으로 보고 내 뇌로 분석하고 사유하며 결과를 도출해야 합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 말입니다. 과연 우리는, 능숙하게 '매뉴얼 모드'로 다시 기어를 바꿀 수 있을까요?


많은 석학이 경고하는 '인류의 종말'이라는 다소 거창한 비약 속에는, 어쩌면 '인간 뇌의 사유 정지'라는 소박하지만 치명적인 근본이 숨어있을지 모릅니다.


매뉴얼 모드가 없는 자동차가 고장 났을 때, 혹은 자동항법장치(오토파일럿)로만 훈련받은 조종사가 비상 상황을 만났을 때를 상상해 봅니다. AI의 구독 연장을 못 해 시험을 망치는 학생, 혹은 AI의 도움 없이는 말문이 막혀버리는 유능했던 '일잘러'의 모습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분별없는 기대와 지나친 믿음.' 이는 인간관계든, 기술과의 관계든, 이 세상 모든 관계에서 결국 우리 자신을 고립시키는 독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소중한 이들의 전화번호를 잊어버렸듯, AI의 시대에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강력한 '오토 모드'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저는 '데이터 인문학'의 관점에서, '매뉴얼 모드'를 단순히 비상시를 대비한 '대항마'나 '백업'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AI가 제공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인간 고유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융합'하는 '적극적인 방법론'으로 삼아야 합니다.


AI를 사용하면서, 우리의 뇌는 AI보다 적어도 30%는 더 활발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AI에게 '요약해 줘'라고 명령하는 대신, '네가 요약한 내용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해?'라고 되물어야 합니다. AI가 그려준 그림을 보며 감탄하는 대신, '이 그림이 왜 나에게 이런 감정을 불러일으킬까?'라며 사색해야 합니다.


AI는 훌륭한 '데이터 처리 장치'이지만, '의미'와 '지혜'를 발견하는 것은 오롯이 '매뉴얼 모드'를 켠 인간의 몫입니다.


'독서와 운동과 인간 교류와 사색, 그리고 행복감을 주는 모든 인간적 매뉴얼 활동'입니다.

이 활동들은 AI의 자동화에 맞서는 방어기제가 아니라, AI가 제공하는 데이터를 '인간의 지혜'로 승화시키는 가장 고귀한 행위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매뉴얼 모드'로 운전할 때만 느낄 수 있는, 노면의 질감과 엔진의 고동을 직접 느끼는 '살아있음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F1이 왜 인기가 있을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뇌에 '수면 모드' 대신, 기분 좋은 '사색의 매뉴얼 모드'를 다시 바로 켜야 할 때입니다. 미루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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