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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Nov 23. 2024

원수 사랑(6:20-36)

빼앗기지 않는 마음

예수가 제자들을 바라보다 말했다.


"너희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 나라가 너희 것이다."

"지금 굶주리고 있는 사람은 복이 있다. 너희가 배부를 것이다."

"지금 슬피 우는 사람은 복이 있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가난하고, 굶주리고, 우는 사람들. 예수를 따르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왜 예수를 찾아왔을까? 더 이상 가난해하고 싶지 않고, 굶주리고 싶지 않으며, 울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가 말했다. 


"너희는 나로 인해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욕을 먹고, 배척을 당하게 되겠지만 복이 있다."


예수는 이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었다. 기득권의 심기를 거슬렀으니, 배척을 당하고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게 그 미움이 따라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면 화를 입게 되는 건 누구일까? 당연히 예수와 제자들이 화를 입게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움은 거세질 것이고, 결국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갈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너희 부요한 사람은 화가 있다. 너희가 너희의 위안을 이미 받았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은 화가 있다. 너희가 굶주릴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웃는 사람은 화가 있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화를 입은 건 예수와 제자들이었다. 예수는 십자가를 지게 될 것이고,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는 거짓을 말하고 있는 걸까? 예수가 말한 하나님 나라, 배부름, 복은 무엇이었을까?


예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너희를 모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라."


그러니까 예수는 자기를 죽이려고 모의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헤롯당과 같은 무리를 사랑하자고 이야기하고 있는 거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가. 


사람을 괴롭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가난일까? 미움일까?


가난해서 맛있는 반찬을 먹을 수 없고, 학원도 제대로 다닐 수 없는 환경은 충분히 사람을 힘들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가족끼리 서로 미워하며 원망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다. 돈 문제로 늘 다투는 부모를 바라보며 아이가 괴로운 것은 가난 때문이 아니다.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이 아이를 더 괴롭게 만든다.


가난이 미움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난을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괴로운 것인지 아니면 가난 자체가 괴로운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가난을 지긋지긋해하던 사람이 자수성가해서 가난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가난을 미워하고 있다면 어떨까?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사람들은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부와 권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가난과 나약함이 많은 제약을 준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가난과 나약함 자체가 주는 제약보다는 마음의 제약이 훨씬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난과 나약함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태도로 인해 모욕을 당했던 그 기억이, 나를 더 괴롭게 만든다. 나를 모욕했던 사람들을 미워한다면 괴로움은 더 자라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린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괴로움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가난이 문제였을까? 시선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마음을 빼앗겼던 것일까? 


부와 권력이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전쟁, 재난, 질병, 불의의 사고 등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단단한 마음도 어느 순간은 깨져 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마음이 무너지는 걸 바라만 보아야 하나? 


사랑은 마음을 지키는 힘이다. 속절없이 무너지는 마음을 손으로 움켜쥔다고 해서 잡히는 게 아니다. 사랑하는 자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나를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줄 것이다.


대단한 사랑을 하자는 게 아니다. 내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사랑이 필요하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그럴 수도 있지'하는 마음. 마지못해 들어주기보다 기꺼이 은혜를 베푸는 마음을 가져보자. 


싸움을 피하고, 해야 할 말을 삼키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면 싸울 수도 있어야 한다. 미워하지 않기 위해 할 말을 해야 한다면 해야 한다. 중요한 건 미움을 키우지 않고, 사랑을 키워나가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 점이다.


더 이상 미움과 원망, 저주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지 말자. 나를 괴롭히는 원수들을 사랑해 보자. 


나, 가족, 가난, 과거, 환경 그 무엇이라도 사랑해 보자. 하나님의 나라가 당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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