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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 Oct 05. 2024

오늘을 견디다가 잊어버리곤 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가
내게 아직 여력이 있는 늙은 노모가 있는 게 또 얼마나 다행인가
어머니의 찌개는 짜다가 싱겁다가 널을 뛰지만 내 끼니를 잊지 않는 것에 감사하기만 하다
힘겨운 일상에도 어렵사리 펜을 들 때면 소리 없이 내려앉는 감정들을 적어 내려가고 싶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 말로는 어머니는 눈이 크고 작고 왜소 아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곧잘 웃기도 하였다고.

외할머니가 남의 집 밭일을 나가면서 고구마 한소쿠리를 해놓으면 그것을 다 집어 먹은 배불둑이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반기었다고.

그게 그렇게나 우스웠던외할머니는 지금에 와서도 종종 어린 딸회상하곤 했다
낭랑한 목소리로 찬송가를 곧잘 불러서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외할머니를 기쁘게 하는 딸이었


하지만 어머니는 아직 어린 나이에 결혼을 서두르면서 외할머니를 크게 실망시켰다
아들 둘을 낳고 금이야 옥이야 길렀지만 외할머니의 예견처럼 우리 가정은 온전치 않았어머니의 시름은 나날이 깊어만 갔다
건강상의 이유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 없는 그녀였지만 타고난 부지런함과 총기로 없는 집안 살림을 이끌었고 우리를 어떻게든 먹이었고 해 입혔다
덕분에 두 아들은 어머니를 보호할 수 있을 만큼 장성했지만 벌써부터 우리에게 의지하는 모습은 보이기 싫은 눈치이다


어느 것에도 후회를 남길 분은 아니었지만 지난 호시절에 어찌 아쉬움 없었겠는가
어머니의 주름진 크고 까만 눈을 바라다보면 외할머니도 외할아버지도 어머니의 그 젊음도 내 머릿속에서 피어난다
얼굴 음성 고유의 냄새까지도 몽글몽글 피어난다
지나와보면 괴로움일랑 남지 않고 그저 좋았던 더 좋을 수 있었던 아쉬움만 짙다
이 섭리가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좋은 일로 각색되고 회상되는.
길고 긴 애증의 끝 우리 가족들도 서로에게 문득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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