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nah Feb 06. 2024

설거지에게 화를 냈다

다시 쓰는 시

쟁그랑 거리는 부딪힘이 소란스럽고

해야 하는 일은 기다리지 않음에

더 소란스럽게 맨 손을 컵에 욱여넣었다

들어가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손이 큰 것을 탓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컵이 작은 것도 탓할 수 없는 것이었고

다만, 맞지 않는다는 것만 다시금 알 뿐이었다

소란이 가중되는 그 작은 세상 안에서

나는 있지 않는 것을 찾고 탓해 선 안 되는 것을 탓했다

그러나 시간이 간다는 것은 신기하게도

소란을 멈추어 준다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은

더는 공허가 아니라 순결한 것이 된다

자리를 찾지 못하던 것은 제 자리를 찾고

얼룩은 남지 않았으며

빛 나는 그릇을 든 마음도 반짝인다

화는 이렇게 내는 거구나.

해야 할 일로 시간이 간다

시간은 할 일과 함께 등을 만든다

그렇게나 양파를 썰던 엄마처럼

나는 오늘도 설거지의 등에 숨어

소란스럽게 어깨를 들썩인다



처음 이 시를 썼을 때에 나는 많이 억울했다. 이까짓 설거지가 뭐라고 하지 않으면 나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는 것일까 하고. 뒤에서 앙앙 거리는 아가의 목덜미 냄새를 맡으며 마치 향수 냄새라도 되는 듯 깊이 들이마셨더랬다. 그러나 소란스럽게 어깨를 들썩이던 저 시간들이 나는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한참을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다가 그대로 두었다. 다시 쓴다고 해도 그대로 인 것은 시간의 등에 기대어 살아보니 역시 시간이 약이라는 어른들의 맞았기 때문이다. 다 지나갈 것이다. 밤은 길지만, 소란스럽지 않다. 내면의 소란을 끄고, 잠잠히 밤을 나자.

이전 01화 밤과 낮의 길이는 같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