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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h Oct 14. 2021

사실 그녀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녀가 걸어 들어온다. 나의 세계로 걸어 들어오는 그녀의 구두 소리가 또각 거리기를 멈추면, 나는 나도 모르게 마른 입술을 적신다. 그녀가 울리고 들어 온 종소리가 공기 중에 남아 허공을 두어 번 맴도는 동안, 나는 그녀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섰다. 그렇게 두 계절이 지났고, 이젠 종일 귓가에 종소리가 맴돌아, 오늘은 용기 내어 물었다.

‘따뜻한 거 드릴까요?’

더운 날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그녀였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고, 그 얼굴을 보는 것은 오늘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  


  나는 가끔 카페에 가서 글을 쓰면서, 이런 류의 이야기를 상상한다. 카페 사장님이 혹은 아르바이트생이 나를 궁금해하는 상상. 이런 공상은 카페가 내게 주는 또 다른 기쁨이다. 가끔 삶의 쓴 맛을 커피로 넘겨 버리고 싶을 때, 혹은 지금의 기쁨이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이유 모를 두려움에 휩싸일 때, 카페를 찾는 이유이다. 책은 내게 새로운 세계를 선사하지만, 카페는 내게 현실 안의 도피처를 선사한다. 책이 상상하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면, 카페는 내가 상상하는 모든 것을 쓰게 만든다. ‘카공족’이라는 말을 들어 봤을 것이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카페의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시선 아래서 공부하는 사람들. 그들은 카페에 커피가 아닌 공부를 만나러 온다. 그리고 나는 카페에 나만의 공간을 새로 차리고, 그 공간이 주는 자유를 만끽한다.  

  

  봉준호 감독은 주로 사람이 없는 카페에서 시나리오를 완성해서, 시나리오를 다 쓸 때쯤이면, 그 카페가 없어지곤 한다는 말을 했었다. 그도 일종의 카공족이고, 그의 세계 또한 카페에서 만들어졌다. 이를 공통점으로 꼽는 것이 웃기지만, 나 또한 사람이 없는 카페를 찾아다니게 되었고, 사람이 많아지면, 할 수없이 자리를 옮기곤 했다. 그렇게 사람이 없는 공간에서, 나는 나의 사람들을 채워나갔다. 때론 시끄럽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나의 캐릭터 들은 여전히 미완성이고, 다분히 불완전하지만, 그들이 내 노트북 안에서 빠져나와 카페를 채우면, 나는 어느새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다. 말을 걸고, 대답을 하고, 거침없이 살아 숨 쉬는 나의 사람들은 조용한 카페 안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써내려 갔고, 나는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았다.

  

  저마다 카페를 가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나는 글을 쓰러 가고, 그 글은 시끄러운 나의 마음을 재우고, 상상을 현실로 끄집어낸다. 지미 핸드릭스는 ‘There was music in my head and I tried to get it out(내 머릿속에는 늘 음악이 있었고, 전 그것을 끄집어내려고 노력했어요).’라는 말을 했었다. 그리고 죽어 사라질 뻔한 음악은 기타로 또 음악으로 현실에서 살아 숨 쉬게 되었을 것이다. 그저 유치한 상상으로만 남았을 뻔했던 나의 이야기들도 카페에서 글로 다시 살아 있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내가,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가지 않는 이유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지만, 카페를 가는 그녀의 이유와 같다.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것이 상상이든, 현실이든 간에 사람이 있는 곳에 가는 것. 도무지 풀리지 않는 저마다의 고민들을 들고 기웃거리는 곳. 그것이 카페고, 우리는 모두 그 안에서 저마다 다른 행복을 찾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그 세상에서 가장 작지만, 큰 공간으로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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