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던 한 주가 지나갔다. 평범한 일상인 듯했지만, 아이들은 마음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늘 마주 보고 얘기할 때도 편하게 이야기를 해 주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속마음을 절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다. 이런 경우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지난주, 금요일까지 아이들 사이에서 미묘한 감정싸움이 있었고, 그것을 해결해 보려고 해도 잘 풀어지지 않았다. 결국 방과 후에 아이들도 답답했는지 서로 만나 해결하려다가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헤어졌다는 사실을 금요일 아침 학생 부모님을 통해서 들었다.
결국, 해당 학생 부모님들과 학교에서 면담을 했고, 아이들과의 상담도 이루어졌다. 다행히 부모님들은 서로를 이해하셨고, 주말 동안 아이들끼리 전화로 화해를 하고, 월요일에 아이들과의 자리를 따로 마련하기로 했다.
그렇게 금요일 오후가 지나고 집으로 돌아와 밥만 먹고 바로 누웠다. 명상음악을 틀고 크게 숨만 쉬었다. 주말이지만 여전히 6시 전에 눈이 떠져서 맨발 걷기를 하러 나갔다. 그냥 조금 더 누워 있으려고 하면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라 쓸데없는 고민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직 주변은 고요하고, 내 움직임 소리와 새소리만 들렸다. 새벽 공기가 내 폐로 가득 들어왔다.
맨발 걷기를 마치고, 감자껍질을 벗겨 반으로 자른 후 물을 넣고 삶았다. 계란도 씻어서 삶았다. 당근과 사과, 브로콜리 데쳐 놓은 것을 믹서기에 물을 넣고 간 후, 냄비에 넣고 미지근하게 데웠다. 텃밭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는 양상추를 씻어서 자른 후, 남편이 사 온 파인애플 소스를 곁들였다. 그리고 견과류를 으깬 후, 샐러드 위에 뿌렸더니 아삭하면서도 고소한 견과류가 가끔 씹히는 식감이 좋았다. 아침을 먹고 나니,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침 식사를 하니 새로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토요일은 남편과 함께, 오늘은 딸아이까지 셋이 함께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산을 산책했다. 왕복 2시간 거리지만 중간 지점에서 되돌아왔다. 급경사가 많지 않아서 걷기 좋았다. 옆에 계곡물이 계속 흘러서 답답한 마음이 씻기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돌로 탑을 많이 쌓아둔 모습이 보여서 딸아이와 계곡으로 내려가 돌탑을 쌓았다. 물이 참 깨끗하고 시원했다. 땅에 핀 예쁜 꽃도 봤는데 무슨 꽃인지 궁금했다. 다음에 가면 숲해설사분께 여쭤봐야겠다. 딸은 네 잎클로버를 두 개나 찾았고, 나는 더없이 상쾌한 공기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봄과 여름 경계에서 헤매던 나는, 오늘에서야 완전한 여름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봄과 여름의 경계처럼 우리의 감정도 확실히 구분 짓기 힘들고, 나와 타인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슬픔과 기쁨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이 모든 삶의 경계들을 명확히 구분하기 힘들다는 것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처지가 달라도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그 배려 속에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삶의 자세가 싹틀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운명적 사건을 겪었던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를 깨닫고 놀랐다는 말을 종종 했습니다. 이스탄불에서 만났던 시리아 출신 여섯 아이 엄마는, 세상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우며, 우리는 그것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말도 했습니다. 저는 이런 모순에 종종 맞닥뜨렸습니다.
<100 인생 그림책>, 하이케 팔러, 작가의 말
작가는 어려운 시절을 견딘 사람이 선한 것을 더 소중히 여긴다고 말했으며, 별 어려움 없이 살아온 사람들은 인생에 대해 기뻐하는 일을 더 힘들어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삶은 꽤 공정한 셈이며,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정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다. 류마티스의 고통에 젖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왼쪽 손이 예전처럼 아주 평범해진 기쁨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오른쪽 손은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곧 자연스럽게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1년 전에 잘 걷지 못하던 내가 물론 오른쪽 오금 쪽이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산을 오르내릴 정도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역으로 나 또한 타인의 행복을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며, 슬픔의 정도도 마찬가지다. 내 기준에 맞춰 타인을 평가하는 시선이 얼마나 불편한 것이며, 오만한 것인지 깨닫는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달리던 내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혹시 달리던 나를 보면서 상처를 받았던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원하게 달리는 누군가를 보면서 지금의 내가 한없이 부러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음 진료까지 36개의 약이 남아 있다. 한 달이 조금 지난 후에 나의 오론쪽 손가락과 오른쪽 다리오금이 부디 나아지기를 바란다. 아는 분께 블루베리를 샀는데, 엄청 싱싱하고 맛있는 블루베리와 보리수 열매까지 보내주셨다. 입안에 넣으면 이 세상의 맛이 얼마나 새콤하면서도 쌉싸름하기도 한지, 그러다가 얼마나 달콤한 지도 알 수 있게 된다. 늘 행복한 일 투성이면 좋겠지만, 가끔은 잘 풀어가야 하는 문제가 닥쳐오기도 한다. 그럴 때일수록 당황하지 말고, 숨을 크게 고르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오늘 mtx 6알을 먹었으니, 새로 시작하는 한 주 동안 다른 류마티스 약들을 잘 챙겨 먹으면서 가급적 몸에 염증이 생기지 않도록 음식 조절도 열심히 하고, 명상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잘 해소하면서 맨발 걷기도 즐겁게 해야겠다.
그게 바로 인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