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아니 이미 여름이 와 있는 것 같다. 낮에 햇살은 뜨겁다. 그래도 이 계절을 살아간다는 것이 나에겐 감사한 일이다. 삶이란 한없이 아름답고, 의미를 발견해낼 수 있는 창고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밤하늘을 많이 바라보진 못했지만, 이미 내 마음은 밤하늘의 별들로 가득하다. 충분한 경험은 생각만으로도 때로 그 경험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어느 책에선가 어린 시절 충분한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 힘으로 평생을 살아가고, 어린 시절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많은 시간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완벽한 삶은 없지만,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본다. 하지만, 이미 그 시간을 놓쳐 버렸다고 해서 겁먹지 말고, 지금이라도 충분히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가면 되는 일이다. 비록 그 과정이 다른 사람들보다 힘들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타인도 치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은 모두 아름답기 때문에 슬픔에 오래 머무를 필요가 없다.
올해의 봄날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아쉽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난 분명 열심히 살아냈고, 건강한 삶을 꿈꾸며 노력했다. 겨우내 하지 못했던 맨발걷기도 하고, 아침 시간에 운동장도 매일 두 바퀴씩 돌고, 햇살도 쬐었고, 밤하늘 별빛 아래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상쾌한 밤공기도 충분히 마셨다.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비록 염증수치가 올라 병원도 평소보다 자주 가고, 힘든 시간들이 있었지만, 오늘 명상 내용처럼 인생은 삶과 죽음 사이를 채우는 일이기 때문에 매일 기쁘기도 어렵고, 매일 힘들기도 어려운 일인 것이다. 오늘 조금 더 편안했다면, 삶의 에너지를 조금 더 받은 것이고, 유달리 힘들었다면 죽음의 기운을 더 받은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삶이 끝나지 않았다면 우리의 인생은 지속된다는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삶. 그 사이에서 더욱 겸손해지며, 삶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길인 것이다.
요즘은 매일 밤 잠들기 전에 리모컨을 잡고 노래를 부르고 잔다. 이승환의 <좋은 날>이다. 볼륨을 크게 올리고 아주 시끄럽게 노래를 부른다. 아주 오래된 노래지만, 매일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좋은 날이었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갖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이다. 옛날의 기억도 떠올라서 즐겁기도 하다. 딸은 이런 나를 보면서 엄마의 갱년기가 심하게 왔다면서 웃는다. 그러면서도 노래 부르는 것을 깜박하면 왜 부르지 않느냐고 묻는다. 주택이어서 다행이지 사람들이 혹시 듣는다면, 아마도 소음 민원이 들어왔을 것이다.
남편은 해외 출장을 일주일 간 떠났고, 딸과 나의 생일도 지났다. 이번 생일은 딸과 단둘이 보냈다. 마침 딸이 감기에 걸려서 생일 음식을 먹어도, 맛이 느껴지지 않아 안쓰러울 뿐이었다. 현충일부터 시작한 3일 동안 냉장고에 남아 있던 양배추와 무를 꺼내 딸이 먹고 싶다는 깍두기, 양배추와 무를 넣은 동치미, 그리고 양배추 김치까지 만들었다. 3일째인 오늘, 동치미 국물은 완벽하게 익어 시원했다. 밥통에 있는 밥 두 숟가락과 생강, 마늘을 믹서에 갈고, 천일염을 물로 헹군 뒤 섞어 만든 양념이 시간을 견디며 시원한 맛을 낸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계절이 흘러 봄에 텃밭에 심은 쌈 채소도 무럭무럭 자랐고, 토마토도 빨갛게 익어가길 기다리고 있다. 5년 전 같이 근무하시던 선생님이 주신 한 뼘 정도이던 앵두 모종도 처음의 크기보다 여섯 배는 더 커져 어엿한 앵두나무의 자태를 뽐내며, 빨갛게 익은 귀여운 앵두를 내어 주었다.
자연에서 내어 주는 음식들로 감사한 나날들이다. 쌈 채소를 씻어 3년 묵은 된장에 싸 먹으니 꿀맛이 따로 없다. 요즘은 아침에 찐 감자와 당근, 사과, 토마토, 블루베리 등을 넣어서 만든 주스 한 잔, 그리고 삶은 계란을 먹는다. 매일 똑같이 먹지는 않고, 때로는 미역국을 먹기도 한다. 몸이 아프다 보면, 여러 가지 정보에 약해지게 마련이어서 내 몸이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지금 나의 상태와 맞지 않는다면, 이롭게 작용할리 없다. 그래서 한 가지 음식을 장복하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일주일 단위로 바꿔가면서 내 몸이 말하는 것에 귀 기울여 보기로 했다.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음식이 내게 미치는 영향도 긍정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지나치지 않게 가볍게 먹기. 어느 날은 서리태 밥을 먹고, 다른 날은 미역국에 두부를 넣어 먹는다. 요즘 예전보다 자주 먹는 것은 미역국이다. 미역국이 독소 배출에 좋다고 해서 일주일에 3번 정도 먹는다. 가급적 기름기가 많은 고기는 피하고, 단백질은 콩이나 생선, 그리고 소고기나 닭고기 삶은 것을 먹는다.
오늘은 역시 mtx 6알을 먹었고, 매치론정 반알, 저녁엔 타크로스 캡슐도 먹었다. 이 외에도 두 개 정도 더 먹는다. 물도 자주 마시고, 명상과 복식호흡도 했다. 음악도 들었고, 딸과 마주 보고 웃었다. 실내 자전거를 타면서 본 드라마를 덕분에 엄청 크게 웃었다. 손을 씻으면서 나를 보고 미소 짓고, 오늘을 살아낼 수 있는 용기를 주신 것에 감사했다.
맨발걷기를 하면서 귀여운 꽃 사진도 찍었다. 한 올 한 올 얼마나 정성스럽게 피었는지 함부로 꺾을 수도 없었다. 올해 봄, 너무나 예쁜 꽃들과 학교에 핀 라일락 꽃잎 하나도 꺾을 수가 없게 되었다.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눈부시게 예쁘게 핀 꽃들의 삶을 내 의지대로 꺾는다는 것이 너무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눈부시다. 그러기에 나의 삶과 타인의 삶도 소중하게 지켜내야 한다. 오늘도 내 생에 참 소중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