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마티스 치유과정기
5월의 마지막 날이다. 2주 전, 잠복결핵 검사를 하고 일주일 후, 검사 결과를 보러 병원에 방문했다. 선생님은 손가락을 보자고 하셨고, 나의 손가락을 보시더니 붓기가 많이 가라앉아 보인다고 하셨다. 한 달 전 초음파를 보면서 가운뎃손가락과 네 번째 손가락과 연결된 중간 마디에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었는데 다행히 그 부위는 더 이상 붓지 않고 그대로 가라앉았다. 예전의 나의 손가락으로 돌아왔다.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손가락이 다시 가늘어졌다. 하지만, 아직 오른쪽 두 번째 손가락은 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있으며, 오른쪽 다리오금 쪽은 오래 앉았다가 일어날 때면 통증이 있다. 물론 스트레칭을 하거나 조금 걷다 보면 풀어지지만, 이런 상태로 봐선 아직도 염증이 내 몸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달 전에 스테로이드 반 알을 다시 먹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조절되는 느낌이다. 1월에 끊었던 스테로이드제 반알이 문제였던 것 같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사람이 몸이 아프다 보면, 어느 한 부위가 조금 더 아파져도 온몸에 나쁜 병이 퍼진 것 같은 우울한 생각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속이 조금만 아파도 위암인 것 같고, 장트러블이 있어도 대장암에 걸린 것 같고, 복부가 조금만 불편해도 간 쪽에 이상이 있을 것만 같다. 정말 못난 생각이다.
난 이미 건강에선 약자가 되어 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기도를 할 때도 '무병장수'라는 말이 나에겐 멀어져 버린 느낌이다. 다만, 이 질병이 잘 치료되면서 지금보다 더 건강하게 살아내길 바랄 뿐이다. 내 나이 또래 아는 사람들이 건강검진을 하고, 재검이 나왔다고 다시 병원을 찾는다. 나 또한 올해는 정말 오랜만에 건강검진을 제대로 해 봐야 할 것 같다. 자신은 정말 없지만, 불안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비록 10년 전 갑상선암을 진단받고 숯가마도 열심히 다니고, 음식도 신경 써서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며 지내면서 건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작년 류마티스 진단을 받고 나니 내가 건강하지 못했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면서 지금부터라도 잘 살피면서 건강을 유지해야 가족들 곁에 더 오래 머물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하는데, 이렇게 내 몸 자체만으로도 자신감을 잃어버리니 때로는 내 마음 하나 세우는 일도 버거울 때가 있다. 즐거운 생각을 하고, 실컷 웃으면 몸도 회복력을 지닐 수 있다는데 요즘 나를 되돌아보면, 감정이 메마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지난 진료 때, 기차 시간이 남아 남편과 연극을 보러 갔는데, 연극이 끝날 무렵 내 주변에서 사람들이 울기 시작했다. 남편도 눈물을 닦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슬픈 감정은 일어났지만,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생각했다.
'내 감정 상태가 지금 너무 곤두박질 쳐져 있는 것일까? 그래서 내가 보고 있는 연극보다 내 처지가 더 힘들어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름 괜찮다고,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내 내면은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의심스러웠다.
벚꽃이 사라진 이후, 계절이 너무 빨리 흐르고 있다. 벌써 5월의 끝이니 말이다. 너무나 푸른 나뭇잎들을 보면서 낙엽이 되어 떨어질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도 든다. 이러니 못난 마음이라는 것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2025년의 푸르름을 충분히 만끽해도 부족할 상황에 떨어질 낙엽을 걱정하니 말이다.
지금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면, 아무리 먼 미래 내 삶이 완벽한 조건을 갖췄더라도 허공만을 헤매고 다닐 것이다.
'지금 행복해야지. 아니 지금 행복하고 싶다.'
오늘은 딸과 함께 도서관을 찾았다. 딸은 학습실에서 공부를 하고, 난 책 약국 앞에서 글을 쓴다. 책을 처방해 준다는 약국인데, 참 재미있는 것 같다. 물론 이 약은 효과가 금방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마치 류마티스 약처럼. 하지만, 류마티스 약처럼 부작용을 겁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확신이 든다.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중략)
어느새 나는 머리 희끗한 노파가 되고
버스가 저 모퉁이를 돌아서 내 앞에 멈추면
여섯 살배기가 뛰어내려 안기는 게 아니라
훤칠한 청년 하나 내게로 걸어올 것만 같다
내가 늙은 만큼 너는 자라서
서로의 삶을 맞바꾼 듯 마주보겠지
기다림 하나로도 깜박 지나가 버릴 생
(하략)
나희덕/오분간
도서관에 걸려 있는 시가 오늘 내 맘에 들어온다. 나의 이번 생이 왠지 빠르게 흘러가 버릴 것만 같다. 점점 속도가 붙어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나갈 것 같다.
지금, 난 괜찮다. 충분히 웃을 수 있고, 즐거울 준비가 되어 있다. 가끔 두려움이 밀려오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덜 두려울 것이다. 순간의 쉼을 발견하고, 의미를 찾고, 책을 읽고, 맨발걷기를 할 것이니까. 그리고 맛있는 사과를 먹고, 빨갛게 익은 토마토로 내 몸을 물들일 것이므로.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고, 해는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오면, 참 책이 많은데 난 어쩌면 책을 쓴다는 헛된 꿈을 꾸고 살았나 싶기도 하다.
지난 진료 때, 선생님은 두 달 치 약을 처방해 주셨다. 그전에라도 아프면 빨리 오라고 하셨다. 한 달 전보다 스테로이드제를 쓴 덕분에 증상이 줄어 약은 바꾸지 않기로 했다. 두 달 후면, 류마티스를 진단받은 지, 1년이 지난 시간이 될 것이다. 어느새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아프고, 치유되고, 위로하고, 힘들었지만 참 많이 나에 대해 생각했다.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이 참 적당하다. 이 햇살을 덮고 한숨 푹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느낌을 기억해 두었다가 오늘 밤 먼 산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들으며 잠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