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요일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봄비라고 하기엔 조금 쌀쌀한 느낌이 들었다. 아침에 옷을 가볍게 입어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조금 추웠는데, 버스에서 집까지 약 10분 정도 걸어갈 생각을 하니 혹시 감기에 걸릴까 걱정이 되었다. 비 온다는 일기예보를 미리 챙기지 못해 우산도 챙기지 못했었다. 다행히 박 선생님이 우산을 빌려주셨다. 버스에서 바라보는 비 오는 날의 풍경은 예쁘기도 했다.
종점에 내려 우산을 펴고 걸어가는데, 역시 쌀쌀한 기운이 내 몸을 파고들었다. 잔뜩 웅크리고 걸어가고 있는데 반팔을 입고 비를 맞으면서 걸어가는 아이가 보였다.
"아줌마랑 우산 같이 쓰고 갈래?"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아이는 그러겠다고 했다.
"몇 학년이니?"
"중학교 1학년이요."
"아줌마는 여기서 조금 떨어져 있는 학교에 다녀."
그 아이는 나를 바라보면서 요즘 시험 기간이고, 오늘 국어, 사회, 영어 시험을 봤다고 했다.
"그래도 가장 쉬웠던 과목은 뭐야?"
"국어요."
"그래? 아줌마도 국어 선생님인데."
아이는 웃으면서 그나마 쉬웠지만, 아주 잘 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국어 과목 공부도 중요하지만, 책도 가끔은 읽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국어 내용도 쉽게 이해하게 되거든."
아이는 요즘 책을 읽지 않았는데, 읽어보겠다고 말했다. 나는 평소에 다니는 길보다 조금 더 가서 그 아이가 산다는 아파트 근처에서 헤어졌다.
"여기서는 금방 갈 수 있지?"
아이는 고맙다며, 빗속으로 뛰어갔다.
아이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서 내려 걸어오는 길이 전혀 춥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나 혼자 걸어왔다면 잔뜩 웅크려봐도 한기가 느껴져 발걸음을 재촉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낯선 그 아이의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나를 순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금요일에는 우리 학교 아이들과 독서 인문 여행을 가기 위해 바다로 떠났다. 바다도 보고 근처에 있는 유명한 책방도 들렀다. 아이들과 선생님들 다 같이 책을 골라서 자신이 이 책을 왜 골랐는지, 그리고 자기가 읽은 부분의 내용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간단히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이후 바다가 잘 보이는 장소에서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바다를 보러 나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많은 사진들을 찍었다. 비온 다음날이어서 그런지 하늘은 너무나 청명했고, 바다의 푸른빛도 너무나 예뻤다.
나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보니 온통 아이들 사진뿐이었다. 그래서 바다만 찍은 사진이 없었다. 위에 보이는 사진은 아이들 옆에 찍힌 바다를 편집한 것이다. 버스에 내려서 한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오늘 하루가 너무 짧아요."
아이들에게도 좋은 여행이었던 것 같다. 물론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동안 나는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비 오는 날 만났던 그 아이와의 시간, 그리고 우리 학교 아이들과 떠난 독서 인문 여행 동안 나는 나 자신을 잠시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렘이 반짝이 가루와 웃음 반짝이 가루란다. 가끔, 눈물을 많이 가졌지만, 기쁨이나 웃음은 가난하게 가진 사람에게 선물로 주는 거야."
눈가의 눈물을 훔치며,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아이가 말했다.
"실컷 웃었더니 기분이 좋아졌어요."
"한번은 병에 걸려 오래 누워 있었던 아주머니에게 깊게 가라앉은 슬픔의 눈물을 산 적이 있었지. 답례로 이 반짝이 가루를 사흘 밤 사흘 낮 동안 뿌려주었어. 그 마을을 떠날 때쯤, 아주머니는 언제 앓았냐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단다."
<눈물 상자>, 한강
아이들과 바다로 떠났던 여행길에 샀던, 한강 작가의 <눈물 상자>라는 동화에 나오는 구절처럼, 내 슬픔에 깊게 빠져 있는 것은 결코 이롭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활동하면서, 나도 모르게 나의 통증에서도 조금은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 자신을 오롯이 느끼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타인을 향해 있는 순간들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프고 난 후, 지나치게 나에게 빠져있느라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못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우리의 눈이 우리 내면이 아닌 밖으로 향해 있는 이유 또한 나 자신에게만 너무 몰두하지 말고 타인의 삶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다.
오늘은 햇살이 지나치게 뜨겁지 않고, 비가 오지 않아서 맨발 걷기에 좋은 날씨였다. 하늘을 바라보니 벌써 달은 마치 오늘 밤 하늘 공연에 대한 리허설을 하려는 듯이 희미하게 하늘에 떠올라 있다. 토마토의 노란 꽃도 열매를 맺기 위해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며, 부처님 오신 날이다.
내 마음 속 바람 잘 드나드는 곳에 나뭇잎 모양의 풍경을 달아야겠다. 내 삶에 지나치게 빠져들지 말고, 타인의 삶과 함께 어우러져 행복한 사진 같은 순간들을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쉬어 충전도 하면서 내 삶을 청량하게 만들고 싶다. 그것이 내 삶에 집중하지 않는 삶이며 무겁게 삶을 살아내지 않는 길이 아닐까 싶다. 그럴 때면 내 몸속 염증도 오늘처럼 한결 가벼워져 나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